생리대 선택의 정치학: 한국 탐폰 도입 사례를 중심으로

그러나 이 새로운 종류의 생리대는 한국에서는 그다지 보급되지 못했다...이러한 인식은 월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생산한 의학 및 교육 전문가와 대중매체, 국가 주도의 성교육에 힘입어 형성된 것이었다. 즉, 한국의 저조한 탐폰 점유율은 탐폰이라는 기술을 만들고 사용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 기술이 다루고 있는 월경하는 몸에 대해 규정하는 이들, 그리고 이러한 규정을 실어나르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행위자들 간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었다.

등굣길 166.5km, 여행길 삼 년.

대전에서 166.5km. 유성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두 시간 십오 분, 지하철로 다시 이십 분.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십 분. 지난 학기,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던 등굣길이다.

I. QR. U: 전문연구요원, 출석, 그리고 신뢰 시스템

한 발 밖에서 보면 QR코드는 전문연 제도가 내포한 다층적 논의를 복무 관리의 신뢰도라는 지엽적 논의로 환원시켰다. 어느새 복무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문연 제도 전체의 신뢰를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되었다. QR코드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전문연구요원의 “출석”이라는 개념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대신, QR코드가 잘 작동하는지, 이것을 통해 전문연구요원의 존재를 증명해낼 수 있는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사랑으로 기술(記述)하기: 나는 왜 만년필을 쓰나

만년필을 쓰는 것은 필기구의 준비와 관리를 스스로 더 감당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만년필을 쓰면서 글쓰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쓰기가 단지 머릿속 생각을 종이에 옮기는 일이라기보다는, 필기구와 손이 함께하는 행위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쓰기는 단지 생각을 글자로 적는 일이 아니라 만년필과 잉크, 종이를 잘 준비하는 일까지 포함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고 준비했기 때문에 쓰는 일이 즐거워졌다.

로봇의 자리: [너도 인간이니?]를 통해 본 로봇과 인간의 만남

로봇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24] 의 줄거리 역시 그러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 꾸준한 상호작용이 필요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로봇이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지, 얼마나 인간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 지만으로 로봇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이유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은 훨씬 더 복잡하다.

대학원에 상식을 묻다: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뒤켠의 고민들

교문 안 다른 상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만을 강구한다면 그 해결책은 겉돌기만 하거나 예상치 못한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효과적인 정책을 도출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어진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재정의하며 다른 문제로 치환하기도 하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미봉책이 아닌 개혁을 이룰 정책을 논할 수 있다.

연구자의 척도: 연구 업적 평가에서 정량분석과 SCI급 강조의 제도적 배경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대학들이 경쟁력을 높여 빠른 추격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하나의 부작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한국어 사용자가 5000여만 명에 불과한 상태에서 온전한 평가 기준을 지닌 연구 공동체로 성립하기 위한 향후 조건을 갖출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SCI급 논문의 정량적 척도에 따른 평가 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이는 데만 집중하고자 한다.

체험 삶의 현장: 치킨 배달원의 일기

공대에서 공학을 배우면서, 연구를 하는 것만이 ‘과학을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연구재단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내가 여태까지 알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알아가고, 해 나가고 있다.

젊은 날의 불안한 초상

자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공황장애가 맞을까. 혹시 처음 진료한 의사가 오진한 것은 아닐까. 행정상의 어디에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기록은 없었다. 공황장애 검색결과가 쌓여가는 인터넷 방문기록만이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보통이 아닌’ 시민으로서 사회 속에 포섭되기를 희망하는 건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식탁에는 심장이나 신경에 좋다는 각종 식재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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