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된 상상력: SCP 재단과 대중의 상상력에 대하여

SCP 재단은 상상력이 “과학적 프로세스와 격리”라는 테마와 공동 창작 절차를 통해 발현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SCP 재단의 개성은 과학 이론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확장하는 SF의 모습이 아닌, 문화 속에 분포된 상상들을 “확보”하고, “격리”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SCP 재단은 주제나 소재의 과학적 가능성으로 정의되는 SF가 아닌, 이질적일 수 있는 소재들을 ‘활동으로서의 과학’의 색채를 부여하는 틀에 담는 집단 창작물이다. 어찌 보면 유사 공상과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SCP 재단은 ‘설명하는 과학’이 아닌, ‘수집하는 과학’을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연구실 뒤켠의 과학기술인: 과학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으로, 글 쓰는 사람이 글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는 하는데, 과학기술인이 세부 전공 영역의 업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과학과 공학 지식체계 고유의 속성 탓으로 돌리기에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 정책과 제도들이—특히,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부터 충당한다는 현실—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종속된 정체성으로 생각해왔다면, 목소리를 듣는 입장의 누군가에게 있어 ‘연구실 뒤켠의 연구자’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문학에서나 허용되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연구소와 연구실, 랩코트와 논문이 과학기술인의 전부가 아니라면 이들은 연구실 밖에서도 오롯이 과학기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Deus Ex Cultura

“이 문제들은 다 문화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회의장이나 토론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토론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동의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어 보이는 말. “이것은 모두 문화 때문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과학문화’를 찾아서: Mapping Science Culture

우리들은 대부분 한 때 ‘호기심 천국’을 보고, 과학관에 가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어린아이였다. 더 커서는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간단한 실험을 해 보기도 하고, 영화관에 가서 ‘인터스텔라’를 보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고객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중 무엇을 “과학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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