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벨은 울리나

청각 산업은 농아를 배제했다. 무선통신과 디스크 축음기가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음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뉴욕에선 1910년 이미 공영 오페라 중계가 진행되었다. 청각 산업이 농아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수백만이 방송 오케스트라와 야구장의 홈런을 듣기 위해 거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청각 기술의 침공을 고고하게 버티던 활동사진, 즉 영화조차 1920년대가 지나기 전에 소비자의 요구에 굴복했고, 이 모든 변화에서 농아는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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