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여담

카이스트는 매번 나를 우와-하고 눈을 크게 뜨게 했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다. 보면서 ‘나도 이거 봤는데’라고 생각하며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1학기, 카이스트는 어땠나요?

한국 “과학영재”의 기원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꿈을 쏘아 올렸다.” 경기과학고등학교와 KIT의 1기 졸업생이자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주인공 중 한 명인 김형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가 말했던 과학을 향한 꿈은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모든 과학영재가 공유하는 꿈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꿈은 과학영재라는 호칭을 받은 학생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은 아니었을까?

POSTECH에서 KAIST로 교환가기

나는 STP(과학기술정책학) 수업을 듣기 위해 지난 2017학년도 1학기 동안 KAIST에 머물렀다. 이 글은 POSTECH 화학과 졸업반인 내가 KAIST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시작부터 그 끝까지의 경험을 담은 후기이다. 생생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중간 중간에 당시 썼던 페이스북 일기를 첨부하였다

실험동물 위령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험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특별히 우리 연구실은 뇌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생된 쥐의 뇌를 바로 추출하여 샘플로 사용한다. 쥐를 케이지에서 꺼내고 내 손에 뇌가 들려 있었을 때까지 들었던 오묘한 기분은 글로 옮기기 힘들다. 그래봤자 작은 실험용 쥐이고, 연구에 필요하다는 당위성까지 있었지만, 무언가 죽인다는 불쾌함과 망설임, 죄책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죽여온 많은 생명들은 단단한 외피가 있거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의 형태를 가지지 않았다. 털과 척추와 눈이 있는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 그 숨이 끊어지는 찰나를 내 손 위에서 본다는 것은 머리로나 마음으로나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창업 열풍을 통해 바라본 KAIST의 미래

KAIST의 설립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그리고 앞으로는 가늠해보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국의 엔지니어란 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최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과거 헝그리정신으로, 밤낮없이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의 과학기술자들과 달리, 오늘날의 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가치의 충돌을 KAIST의 창업 관련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는 조국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산업 역군’의 영광을 누렸던 오늘날 엔지니어는 어떤 가치를 바라보고 나아갈 것인가?

구성된 침묵: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본 대학원생 정책

정책이란,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힘 없는 대학원생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겐 이 세 가지 모두 참 어려운 과정이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서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잘 들리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학교와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사람을 만나도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카이스트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대학원생들, 즉 미래 과학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단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공부 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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