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관찰 진행 전과 진행 중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이 ‘출제 범위 밖’의 상황이었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를 떠나서 이 상황 자체가 처음에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것들이 마냥 큰 고통이었던 것은 아니고, 모두 사람을 관찰하는 연구에서 내가 주지해야 할 교훈이 되었다.
곰과기린의 영화뒤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맞아요, 이런 현상은 아마 코믹스라는 제한적인 매체에서 스크린이라는 훨씬 더 범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옮겨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죠.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MCU의 엄청난 대중성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 시대에 영향을 미치겠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학관은 살아있다 : 오사카 시립 과학관 관찰기
오사카의 과학관은 확실히 살아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지르는 함성과 같은 짜릿한 생동감은 아니었으나, 전시와 관람객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학관에서는 생태(生態)의 느낌이 났다. 사람이 과학관의 커다란 구성요소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과학관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했다. 결국 이 작고 낡은 과학관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사람’ 때문이었으리라.
탈(脫)원전 정책을 겪는 원자력공학도의 소고
지금까지 원자력은 주로 국책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단어의 어감과 학문의 진입장벽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통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공론조사와 더불어 에너지정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6월 이후 끊임없이 보도되면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사회와의 소통을 몰아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자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언급되는 지금 이 기회가 다시금 대중과 원자력계 간의 신뢰와 소통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본다.
한국 “과학영재”의 기원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꿈을 쏘아 올렸다.” 경기과학고등학교와 KIT의 1기 졸업생이자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주인공 중 한 명인 김형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가 말했던 과학을 향한 꿈은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모든 과학영재가 공유하는 꿈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꿈은 과학영재라는 호칭을 받은 학생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은 아니었을까?
미래학의 골든에이지와 21세기의 퓨처라마
미래 담론의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열기와는 별개로 미래 담론의 방향성에 관한 의문 부호도 또한 끊이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학문적으로 미래를 탐구하는 미래학의 황금기를 거슬러 살펴보며 21세기 한국의 미래 담론에 기대하고자 하는 바를 짚어본다.
Technology, the Double-edged Sword in Classrooms
The focus of this piece is on the effect of the use of technology in undergraduate and graduate classes on the students, the teaching assistants (TA), and the professors. The piece focuses on the context of the core mechanical engineering classes where math and accompanying drawings (such as free body diagrams) constitute a sizeable part of the lectures, homework (whether graded or not), and the open or closed book exams. These courses include solving mathematical problems most of the time and the structure of these courses affect the ability to employ different types of gadgets and software packages as easily as in other disciplines and contexts.
게이 데이팅 앱, 그 이후의 삶
성소수자에게 데이팅 앱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은 그러한 섹슈얼리티가 형성되기 위하여 특정 공간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공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 매개되는 데이팅 앱과 같은 가상 공간은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하나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며, 그들이 조금 더 안전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성소수자와 데이팅 앱의 관계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 서비스와 사용자와 같이 단편적으로 독해될 수 없다. 나는 아래의 글에서 데이팅 앱을 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을 순차적으로 기술하며, 데이팅 앱이 게이로서의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나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마이 노마딕 라이프
졸업과 함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몸이 되었다. 독립연구자, 혹은 백수가 된 것이다. 백수가 되어 조금 신났다.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이라면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해왔던 일은 어느 멋진 도시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말하자면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보는 것이었다.
노버트 위너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내용 변화를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개정판은 자신의 이론이나 생각에 변화가 생겼거나 수정해야 하는 내용이 있을 때 발간된다. 개정판이 단기간에 발표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이론이 급속도로 발전했거나, 책을 고칠 수밖에 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글은 위너의 책에 등장하는 학문적 이론과 비유, 그리고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는 위너의 주장과 서술 방식이 4년 만에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다룰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초판과 개정판의 서술을 비교·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1950년부터 1954년 사이에 고조되었던 반공주의나 ‘매카시즘’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