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궁수처럼 글쓰기

미리 정해진 환경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글을 쓸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글쓰기는 마감이 촉박하고 여러 이유로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토할 수 없다. 글을 쓰는 도중에 주제와 관련된 새로운 사건이 터지거나, 글 외적으로 개인적인 상황이 변화하기도 한다. 전장에서 궁수들이 뛰고 달리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주변 환경에 대처하며 어떻게든 화살을 쏘아내는 것처럼, 글쓰기 또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달갑지 않은 환경에 대처하며 어떻게든 글을 써내는 일이다.

How university rankings came to disrupt academia

순위 제도는 암묵적인 방식으로 학계 및 고등 교육 관계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대학이 순위 상으로 더욱 “활약”하기 위해 전체적인 학업 및 행정 구조를 재편했는데, 학계의 이러한 내부적인 반응은 더욱 광범위한 “순위 현상”을 구성한다. 고등 교육의 국제화나 시장화와 같은 요인을 바탕으로 순위 현상을 해석 할 수도 있지만, 순위가 관중에게 유도하는 반응도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이 글은 이를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누가 먼저 밀려나는가? 조선산업의 물량 순환 주기에 대한 믿음이 불황 중에 하청 노동자에게 준 영향

건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숙련 기술자들이 필요한가. 불황을 가장 경제적으로 보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 조선산업계가 던진 질문이었다. 산업계와 정부는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을 정하며 대답했다. 여전히 대답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호황이 왔을 때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호황이 오는가? 호황이 올지, 얼마나 그 파고(波高)가 높을지 알 수 없다면, 분명 하청 구조를 통해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태풍 앞에선 선장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밖으로 던지는 것처럼. 그러나 이대로는 불황에서 배울 수 없다.

일상을 연구하는 참여관찰러를 위한 안내서

참여관찰 진행 전과 진행 중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이 ‘출제 범위 밖’의 상황이었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를 떠나서 이 상황 자체가 처음에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것들이 마냥 큰 고통이었던 것은 아니고, 모두 사람을 관찰하는 연구에서 내가 주지해야 할 교훈이 되었다.

곰과기린의 영화뒤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맞아요, 이런 현상은 아마 코믹스라는 제한적인 매체에서 스크린이라는 훨씬 더 범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옮겨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죠.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MCU의 엄청난 대중성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 시대에 영향을 미치겠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학관은 살아있다 : 오사카 시립 과학관 관찰기

오사카의 과학관은 확실히 살아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지르는 함성과 같은 짜릿한 생동감은 아니었으나, 전시와 관람객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학관에서는 생태(生態)의 느낌이 났다. 사람이 과학관의 커다란 구성요소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과학관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했다. 결국 이 작고 낡은 과학관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사람’ 때문이었으리라.

탈(脫)원전 정책을 겪는 원자력공학도의 소고

지금까지 원자력은 주로 국책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단어의 어감과 학문의 진입장벽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통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공론조사와 더불어 에너지정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6월 이후 끊임없이 보도되면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사회와의 소통을 몰아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원자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언급되는 지금 이 기회가 다시금 대중과 원자력계 간의 신뢰와 소통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본다.

한국 “과학영재”의 기원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꿈을 쏘아 올렸다.” 경기과학고등학교와 KIT의 1기 졸업생이자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주인공 중 한 명인 김형신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가 말했던 과학을 향한 꿈은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모든 과학영재가 공유하는 꿈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꿈은 과학영재라는 호칭을 받은 학생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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