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기술이 당연하게 자본과 결합하고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고 발전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비산업적-상업적인 방식으로 다루거나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기술과 자본의 결합의 결과물인 산업을 통해 대규모의 수요와 결합하고 자본이익을 내는 모든 것들은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도 정당화되어 실로 유의미한 것인지, 혹시 허섭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면제받게 된다. 이미 과학기술정책은 높은 정도로 산학 협력을 지향하고 있고, 주요 대학의 공과대학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함께 가르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기술과 자본(산업)은 분리불가능한 통합적 일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창업 열풍을 통해 바라본 KAIST의 미래
KAIST의 설립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그리고 앞으로는 가늠해보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국의 엔지니어란 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최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과거 헝그리정신으로, 밤낮없이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의 과학기술자들과 달리, 오늘날의 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가치의 충돌을 KAIST의 창업 관련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는 조국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산업 역군’의 영광을 누렸던 오늘날 엔지니어는 어떤 가치를 바라보고 나아갈 것인가?
업(業)을 만들라, KAIST의 새로운 시도
배운다는 것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닌데, 우리는 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젠가부터 학교가 업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전사(戰士)들을 키우는 전장(戰場)의 역할을 공동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업의 시대는 냉혹하다. 뒤처지면 낙오한다. 교육과 업의 만남을 주제로 한 KAIST K-School의 탄생과 발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Long Policy Review: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시스템』 리뷰 (vol. 1)
이 글은 근 1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온 이른바 ‘전환기(transition)’ 논의에 대해 리뷰한다. 홍성주 연구위원과 이정원 부원장이 책임연구자로, 엄미정 외 3명의 STEPI 내부 연구자와 박상욱 외 3명의 외부 교수진이 참여한 STEPI 정책연구 보고서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시스템』(2015.12, 이하 보고서)을 중심으로 필자가 관련 주제를 다룬 여러 토론회와 관련 인사들의 언론 인터뷰를 종합하여 보다 심도 있게 해당 문제를 검토했다.
Short Policy Review: 경기도 혁신클러스터 성과지표 개발 연구/ 기초연구 지원 동향 및 시사점 (II): 주요 강소국 사례/ 과학기술인력 양성 을 위한 교육 및 R&D 연계 촉진방안 리뷰 (vol. 1)
며칠 사이에도 수많이 열리는 정책토론회, 쏟아져 나오는 정책 보고서 및 연구결과… 결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나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지는 않다. 다만 그 자리들과 자료들이 충분히 피드백을 받아 선순환적 정책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깊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연구실 뒤켠의 과학기술인: 과학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으로, 글 쓰는 사람이 글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는 하는데, 과학기술인이 세부 전공 영역의 업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과학과 공학 지식체계 고유의 속성 탓으로 돌리기에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 정책과 제도들이—특히,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부터 충당한다는 현실—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종속된 정체성으로 생각해왔다면, 목소리를 듣는 입장의 누군가에게 있어 ‘연구실 뒤켠의 연구자’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문학에서나 허용되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연구소와 연구실, 랩코트와 논문이 과학기술인의 전부가 아니라면 이들은 연구실 밖에서도 오롯이 과학기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이프 오브 유알피
아득한 수평선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 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마치 URP라는 작은 배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문득 언젠가 보았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처럼 작은 배 안에는 제대로 놀지 못해 말라 죽어가는 나와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벵갈 호랑이같은 연구 주제만이 남겨져 있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내게 URP연구 그 자체이자 동시에 소셜벤처였다. 멍하게 빛나는 구글 스칼라 검색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연구가 끝났을 때 살아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어쨌거나 리차드 파커, 아니 URP연구는 앙상한 뼈만 남긴 채 나를 뭍에 닿게 할 것이라고.
절대빈곤상태 체험: 72시간, 칼로리, 그리고 식의주(食衣住)에 대하여
실험은 10월 20일(목) 00시에 개시되어 22일(토) 23시 59분에 종료되어, 정확히 72시간이 소요되었다. 실험은 72시간 동안 연속되기만 하면 어떤 날을 택해도 상관없었으나, 2일의 평일과 1일의 주말을 넣음으로써 실제 주5일제와 비슷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현금과 체크카드를 동시에 사용하였지만, 모든 지출에서 즉시 금액을 기록하였기에 72시간 동안 계산 실수는 없었다. 또한 실험 전에 구입한 커피믹스와 비타민의 가격도 개당 단가를 따져 합산하였고, 하루에 4,000원 이하의 소비를 원칙으로 하여 첫날의 충동구매로 인해 2일차, 3일차에 굶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구성된 침묵: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본 대학원생 정책
정책이란,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힘 없는 대학원생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겐 이 세 가지 모두 참 어려운 과정이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서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잘 들리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학교와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사람을 만나도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카이스트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대학원생들, 즉 미래 과학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단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공부 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시력을 잃었다.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비롯하여,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 사고 등 크고 작은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화학 물질 사고는 어느 특정한 공간과 계층에 한정하여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의 화학 물질에 대한 의존성에서 기인한다. 화학 물질은 그 용도의 다양함으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발전해왔고, 근래에 들어와서 더욱 넓은 범위에서, 더욱 많은 숫자가 유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