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오성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ohsung@kaist.ac.kr
Long Policy Review에서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이면서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있는 안오성 연구원이 근 1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온 이른바 ‘전환기(transition)’ 논의에 대해 리뷰한다. 홍성주 연구위원과 이정원 부원장이 책임연구자로, 엄미정 외 3명의 STEPI 내부 연구자와 박상욱 외 3명의 외부 교수진이 참여한 STEPI 정책연구 보고서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시스템』(2015.12, 이하 보고서)을 중심으로 필자가 관련 주제를 다룬 여러 토론회와 관련 인사들의 언론 인터뷰를 종합하여 보다 심도 있게 해당 문제를 검토했다.
산업화 성공 이후 우리만의 발전경로를 모색해야 하는 전환기의 어려움은 과학기술혁신 시스템의 정책방향 설정에서도 동일하다. 국가과학기술전략부재 문제와 국가 리더십 실패에 대한 지적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이고 깊이 있는 정책 연구와 그에 근거하는 새로운 정책선택의 가능성 모색은 매우 한정된 범위에서 논의되어 왔다. 즉, 현재 논의되는 정책 대안의 선결조건과 한계, 이미 시도된 정책 대안의 성공-실패 요인에 대한 성찰 등이 결여된 채 이전 정책대안 담론과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어 왔다.
예를 들어, 예산구조와 흐름의 문제, 과학기술 전담부처 혹은 출연연 통폐합 등과 관련한 거버넌스 체제의 개편, PBS체제와 풀뿌리 연구의 균형적 운영, 질적평가, 컨설팅형 평가, 무빙타켓, 혁신도약형 연구의 확대를 위한 제도 개편, 산학연 협력 강화를 위한 파견/평가연동/융합연구 등에제도 등 많은 정책이 쏟아졌지만, 이러한 제도를 뛰어 넘는, 혹은 이러한 제도들이 무력한 이유에 관한 근본적 성찰에서 길어진 전환적 관제는 다뤄진 사례가 드물다.
보고서는 제목 그대로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있어서 ‘전환적’ 이슈, 최상위 이슈가 무엇인지를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탐색한 자료로써, 한국과학기술 정책사에 이정표가 될 만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는 전환적 과학기술혁신의 정책 아젠다를 NIS 맥락에서 접근하여 찾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위기를 진단한다. : “글로벌 경제의 변동과 국내 산업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투자 정당성의 위기.” 그리고 한국 NIS의 핵심 개혁 3대 이슈를 갈라파고스화, 코리안 패러독스,[1] 전략부재로 응축했다.
NIS는 국가혁신시스템의 준말로써 보고서에서는 과학기술혁신시스템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OECD의 ‘NIS’ 보고서에서는 NIS 측정에 근거한 회원국가의 과학기술투자의 효율성 측정이 자신들의 3대 핵심 미션 중 첫째 미션인 ‘회원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용, 삶의 질의 향상’에 잘 부합한다고 말하고 있다.[2] NIS의 출발은 R&D 공급 수준에 관한 지표들이 한 국가의 혁신성을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반성에서 출발한다. 즉 국가 혁신 시스템의 주체인 산업들의 클러스터 형성에 의한 ‘규모의 경제’, ‘규모의 R&D’ 형성과 산업-대학-정부의 연결 관계의 질 – 생성된 지식의 흐름과 공유체제 (“knowledge distribution power”)와 산업간의 클러스터 형성과 전문가 네트워크에 기반한 혁신적 지식·기술의 수용역량 (“adoption capability”) – 을 중요한 요인으로 판단하고 지표화 하고 있다.
NIS 연구의 지향점은 경제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한 국가내의 연구, 산업, 정부활동의 효율적 지식생산과 활용 및 협력의 질적 특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의 연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제 즉, “전환기”에 놓인 한국현실에서 과학기술혁신이 국가현안의 해결과 국가“혁신”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연구 동기로 예측 또는 기대해 볼 수 있다.[3]
실제로 보고서는 한국 NIS의 위기 진단을, ‘경제사회적 조건’ 진단 등 다층위에서 문제 진단을 접근하고 있다. <표 1>에 보고서가 제시한 우리나라 NIS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들을 정리했다.
<표 1> 한국 NIS 위기 극복을 위한 보고서의 제언
한편, 이러한 보고서가 제시한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 전에 필요한 것은, “전환기의 한국”이 처한 산업위기의 다양한 측면과 산업전략의 전환적 과제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다양한 컨텍스트에서의 산업분야 전환적 과제는 <표 2>에 정리하였다.
<표 2> 한국 산업분야의 전환기 과제
하지만 보고서 리뷰에 있어서 이러한 국가 운영체제에 관한 다양한 전환과제와의 상관성을 다루는 것은, 본 보고서의 작성 의도와도 맞지 않다. 하지만, 과학기술혁신 시스템의 전환적 과제는 국가 운영체제의 전환적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본 보고서의 리뷰 관점 설정부터 어려운 숙제가 된다.
왜 이러한 고민이 필요한가? 정책문건 리뷰는 해당 정책서가 다룬 주요 분석내용과 전달하고자 하는 결론적 제언, 그 결론에 이르게 된 논거를 분석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본 리뷰 대상이 다룬 ‘전환 과제’는 전환과 관련한 문제인식의 범위와 전환이 지향하는 목표 자체가 중요한 토론 주제이다.
즉, 과학기술 정책의 전환적 과제 탐색의 출발점은 보고서에서도 식별된 거시적 문제점 – “대개의 구조개혁 시도가 미봉책에 그치고..”(요약, 9) – 과 관계된 사회적 기저 요인, 즉 ‘한국사회가 직면한 체제전환 수준의 개혁과제’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거시적 관점의 문제인식은, 보고서 내용에도 포함되어 있다. : “부처별로 파편화된 과제 기획과 운영 시스템” ; “개발 시대와 같은 공급자(정부) 중심의 개혁의 시도로 창조의 주체인 시장의 자율성과 생명력 소홀” ; “과학기술계와의 절차적 합의 과정 누락 또는 최소 형식화로 정부의 창조적 전략에 대한 신뢰와 동의를 확보하기 어려움” ; “추격형 이후 국가차원의 대안전략 부재와 탁상적 대안의 재탕” ; “사람에 체화되는 지식자본의 축적 체제 부실” (요약, 10-11).
따라서, 본 리뷰는 ‘메타리뷰’의 형태, 즉 ‘전환적 과학기술혁신과제‘라는 주제 자체와 이 주제의 중요성과 전환의 시의성,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전환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분석했다. 또한, 보고서와 인터뷰의 핵심 주장인 “우리나라 과학기술 행정체제에서 형성된 강력한 수직결합구조의 해체와 수평적 정책거버넌스의 육성 필요”를 검토해보았다. 이에 근거하여 최근에 두 차례에 걸쳐 발표된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의 관련 내용을 검토해 보았으며,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보다 확장된 관점에서의 전환적 과학기술정책 과제를 간략히 탐색하였으며, 향후 입체적 접근의 필요를 짚어보았다.
방법론 리뷰
보고서는 과학기술혁신 관련 6대 중분류, 94개 항목에 대한 정량 평가 및 30,000 단어 분량의 정성평가 의견의 분석에 근거한다. 94개 정량평가 항목에 대해 50인의 ‘과학기술혁신 전문가’ 집단(산/학/연/관 고르게 분포)과 대조군으로 30명의 STEPI 정책연구자(박사급) 집단에 대한 조사 결과의 비교결과 표준편차 1 내외의 균질한 평가 결과로써 심층 의견조사의 신뢰도를 확보하였다.
조사방법론에서 우선 관심을 가진 것은 본 연구가 최상위적 문제인식, 즉 한국 경제 및 산업의 위기를 불러오는 글로벌 경쟁력 하락의 문제, 저성장에 대응하는 공공개혁 이슈의 부상, 저출산/고령화/양극화와 같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사회문제를 한국 NIS가 직면한 위기의 근거로 상정하고 이와 관련된 구체적 개혁이슈를 3대 주제 18개 항목에 걸쳐 광범위하게 조사한 때문이다. 아래에 재인용한 18개 항목은 그 자체로서 매우 의미 있는 다양한 정책전문인의 시각을 잘 요약해준 결과로 생각된다.
<표 3> 한국 NIS 개혁 3대 이슈 (보고서 p.9 인용)
국가 운영체제의 전환적 과제 관점에서의 NIS 개혁 의제
위 도표에 인용된 과기정책의 전환적 이슈들이 ‘현상’이라면 그 배경인 국가운영체제적 문제는 무엇인지 먼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는 달성했다고 치더라도 공화정치를 해왔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즉, 헌법이 규정한 공화국 즉 ‘공공의 나라’ 또는 ‘공중의 복리를 중요시하는 나라’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으로 진단한 것이다.[5]
조순의 인터뷰는 NIS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따옴표와 괄호 내용은 필자 표현)
첫째, ‘경로 의존성 탈피’ – 계획주도형 국가혁신은 오래 전에 수명을 다했지만, (NIS)경제체제전환보다는 대기업 의존을 통해 용도 폐기된 체제를 지속하면서 성장과 고용 분배가 어긋났다.
둘째, ‘단기 경제성과가 아닌 연구자 중심의 연구’ – 경제적 성과를 GDP 만이 아닌 사람에 두어야 한다. 사람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다. (혁신 주체인 전문인 역량 육성과 그들의 네트워크 강화)
셋째, ‘상생·협력형의 인재상’ – 경쟁과 1등 우선이 아닌 협력과 공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교육가치의 중심에 둬야 한다. (교육만 아니라 상생·협력 지향의 연구경영리더십과 연구문화의 수준)
넷째, ‘우리 고유의 NIS 전략’ – 저성장 시대의 도래를 받아들이고, (과학기술정책모델을 포함하여) 선진국이나 패권국 추종형이 아닌 우리 고유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조순의 지적 중, 대전제사항인 ‘공공의 복리’를 위한 공화정치 경험의 부재는 ‘국가 R&D 정책’의 행정 독점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특정 부처 영역이라는 경계가 모호한 R&D영역에서, 종종 각 행정부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공공복리라는 본질과 거리가 먼 예산확대 실적경쟁과 산하기관 늘리기를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기제가 발달되었다.[6] 이런 경쟁환경에서, 국가 공공복리의 향상은 부처별 R&D 사업경쟁의 명분으로 ‘활용’될 유인은 커지고, 그 명분의 실현에 관한 책임을 분산하는 기제는 강화된다. 국가 R&D 투입비율은 GDP 대비 최대이지만 효율성(투입대비 기술료 기준)은 최하위이고, 부처별 수평적 정책조정과 협력은 오래도록 구호에 그치고 있는 현상의 이면에는 이런 기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활동조차 이러한 기제의 유지·확대의 도구로 소비되는 것은 현재의 정보소통 구조 속에서는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공공복리 공화정치 경험 부재만 아니라, 정부주도 계획경제의 성공에서 형성된 정부와 과학기술인들의 강화된 수직결합도 한 원인이다. 홍성주는 국가 R&D 부실의 근본원인을 바로 이 수직결합에서 찾았다.
“정부 부처별로 수직 라인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라인 간 경쟁이 연구개발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드론 개발 사업이 한 해에만 수백 개로 나뉘어 수행되는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정책과 투자, 연구개발 기획, 연구개발 수행과 성과(평가)까지 연구개발 과정의 전 주기에서 권한과 책임이 수직 라인을 따라 분산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연구개발 수행자가 산출한 성과는 에이전시의 성과로, 또 정부 관료의 성과로 취급된다. 책임 또한 수직 라인 전체로 분산되기 때문에, 정부와 에이전시는 연구개발 수행 과정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관리할 수밖에 없다.” (IT뉴스. 8.15특집 인터뷰 기사. “한국과학기술의 문제와 대안”)
여기에 더하여 자기결정권이란 측면에서 보면, 강력한 갑-을 관계에서 기인하는 연구집단의 ‘학습된 무기력’과 ‘학습된 무관심’도 상당한 원인이 된다.[7] 즉, 자기결정권이 줄어들면서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공공복리를 주도적으로 고민하는 범위와 깊이도 줄어든 것이 또 하나의 경로를 형성한다. 이런 관점에서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출연연의 정책기능부족’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지적한 것일 뿐 그 원인에 대한 일차적 진단조차 생략된 피상적인 것이었다. 현장을 잘 모르거나 현장의 문제가 알려지더라도 다양한 층위로 복잡성을 띌 경우, 피상적 정책대안이 지배하게 되고 기존 경로는 유지된다. 즉, 빠른 문제 해결을 주문하는 인센티브는 강화되고,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전환적 대안에 관한 제도적 접근 등의 정책리더십이 발휘될 인센티브는 약화된다. 따라서 본 연구가 지향한 바, 현장의 과학기술전문인들의 일치된 문제의식을 수렴하고 분석한 점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유용하다 할 수 있다.
행정부처의 ‘경쟁적 예산확대’에 있어서 공공복리와 연결하기 가장 좋은 대의명분이 바로 ‘R&D 투자’이고 그 중에서도 인프라 투자는 단기적 성과로 안정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그 활용 문제가 불거지는 위험을 내포한 투자 대상이다. 특히 조선일보 ‘신화가 저문다’ 기획기사의 “정치가 망치는 R&D사업”에 거론된 바와 같이 지역구에 분원을 강제하는 정치인들의 압력이 어떠한 수준인지와, 이러한 ‘反공공성 정책’이 허용-거래되는 매커니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형 R&D 사업의 실질적인 사업성 점검을 위해 수행되는 선행연구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대형사업에 있어 선행기획연구가 수행되지만, 해당 사업을 ‘보내고’ 싶어 하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명분확보용으로 ‘소비’되곤 한다. 이것은 단순히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으로 심각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특정 대형 R&D 사업이 공공의 복리나 국가 장기전략(이것이 취약한 현실이지만)과 부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기획연구과정에서 그러한 위험이 감지되었다 하더라도) 특정 사업을 ‘보내기’위한 논리만을 강화하는 선행연구로 추진된다면, 이것은 실상은 국익에 반하는 것을 도모하기 위해 국가 재원을 투입하는 이중 모순을 갖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이중모순이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는 기저에는, 우리만의 NIS 전략 컨텍스트에서 국가R&D의 상위적 기준을 거론할만한 경제·사회학적 근거 – 합의와 조정의 상위적 근거 – 의 부재가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으로부터 더 많은 자원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는 각 부문별 리더들에게 국가의식과 사명감을 거론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는 또 하나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생태계의 기술수용 역량의 취약성에 대한 진단과, 추격형 제품혁신구조, 대기업 의존 생태계 등에 대한 진단 없이 “출연연의 중소기업 전진기지화”등의 대안 또한 전환적 정책부재를 출연연 정책으로 축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국가 R&D 발굴-기획-선정과정은 이 문제를 견제하기에 충분한가? KISTEP 등 전문기관을 통한 견제구조의 절차성과 전문성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외부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와 의견 개진은 제한되어 있는 구조이며, 이러한 특징은 몇몇 특정 사업의 사례와 같이 ‘정치적 의지’가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견제구조를 강제할 수 없는 정황과 관계된다. 그 정치적 의지는 대부분 단임 정권의 정치적 목적, 혹은 실력 있는 국회의원의 지역구 실적과 관계되고 그 의도를 ‘감히’ 견제할 장치는 체제, 문화, 관행, 견제 기구의 리더십 모든 면에서 부재하다. 바로 이 지점이다. 국회, 행정부를 통해 과학기술 정책의 확고한 리더십이나 우리 고유의 NIS 전략에 부합하는 전략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인 현실이며, 과학기술인 스스로 과학기술정책의 하수인이 아닌 주체로서 성장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가 도출되는 지점이다.
‘폴리페서와 폴리서처가 활개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위에서 열거한 상위적 정책 거버넌스의 부실에서 연역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PBS 체제하에서 과제 수주 경쟁에 내어 몰린 일반 연구자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면, 연구자가 특정 연구과제의 ‘수주’와 성공적 마무리 외에 공공복리에 대한 변혁의 주체로 나서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고서가 수집한 한 전문가의 답변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난 연구문화의 퇴행은 이런 맥락 위에서 해석해야 한다.
“한국 과학기술계가 자율과 책임 기반의 연구개발 활동에 몰두하며 지속적인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 공동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점차 일반적인 생계형 노동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p.41)
즉, 이러한 ‘현상’을 ‘연구자의 공공의식 부재, 사명감의 문제’와 같은 개인의 윤리문제로 축소(권위주의적 문화에서는 항상 개인윤리가 강조되는 특징을 갖는다)하기보다는, 바로 국가 과학기술혁신체제의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비대해진 행정중심의 연구문화에 연구자들이 적응한 결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출연연의 자체 거버넌스 체제가 너무나 취약하며, 홍성주가 지적한 강력한 수직 연결구조 문제와 연구현장에서 실력주의가 우선순위로 작동하지 않는 기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필자는 연구가 공공복리 정책으로 연결되는 역량의 성장은 연구자들에게 자율성이 보장되는 연구문화가 전제되는 교육훈련과 연구경영 리더십 육성의 문제이지, 결코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이나 사명감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보고서와 조순의 공통된 지적처럼 전환적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정책 마인드, NIS에 입각한 전략적 연구기획 마인드 부족을 비판하고 변화를 종용하는 것은 연구자들을 정책 ‘수단’으로 취급하던 시절의 접근방법이다. 연구자들에게 이런 역량을 증진하도록 돕는 ‘연구발전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하는 조직과 제도’ (요약, 27)가 가장 열악한 것으로 파악된 조사결과를 통해, 연구지원 환경의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읽을 수 있다.
결론 – 전환적 정책 담론의 장애물 : 기존경로에의 ‘의존’과 혁신담론의 ‘축소’
혁신담론의 축소
모든 변화는 기성질서의 관성과 이익집단으로부터 커다란 저항에 직면하지만, 전환적 과제에 직면하여서는 이해관계로만 바로 볼 수 없는 문제의 복잡성과 다층적 측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관성이나 이익집단과의 관계 설정이 새로워지는 과정은 조순의 지적과 같이 그 자체가 하나의 민족사적 도전이다. 더욱이, 날로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과 지정학적 조건상 경제·안보 위협의 긴박함은 정부로 하여금 지원자가 아닌 ‘주도적’ 문제해결사로 더욱더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강화시켜주고, 이를 존중해야 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요한 점은 대안 세력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기존 경로가 유지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측면, 즉 ‘대안 부재’[8]의 문제이다. 더욱이 과학기술정책의 실패를 정부와 행정부처에서만 찾는다면 국회와 과학기술인들, 정책인들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고 전환은 늦춰질 것이다.
소수의 행정 엘리트, 그리고 이들과 연결된 소수의 전문가 집단(폴리페서, 폴리서처)으로 이뤄진 폐쇄적·비민주적 의사결정의 이해관계자들이 ‘강력한 수직 라인’을 형성하여 기존 경로를 견고하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해체한 이후, 대안적 모델의 예상되는 문제점은 정책 담론에서 충분히 다뤄지고 있는가? 어떤 경로와 장(場), 모티브를 통해 이들의 단계적·체계적 성장을 흔들어대지 않고 지속하게 할 것인가? 반대로 지금 이러한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서 시급히 제거해야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연구개발 혁신은 대단히 큰 틀에서의 구조 변화를 필요로 한다. 이는 한 두 사람이 추진해서 될 일도 아니고,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개혁의 방향을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는 새로운 엘리트 세대를 필요로 한다. 정치 지도자를 비롯하여, 정부 개혁을 주도할 공무원 사회의 새로운 리더 그룹, 과학기술 분야의 새로운 리더 그룹이 연합할 때에만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조선일보, 위와 같은 홍성주 인터뷰)
기획재정부 입장에서 행정엘리트와 전문가 집단의 수직결합을 견제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예비타당성 조사 체계를 통해 기술성/사업성/정책성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는 등(단기성과 지향이 아닌 미래가치 중심으로) 국가 미래전략에 더 부합하는 과제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조처의 실효성은 전환적 정책과제의 비중을 대신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오히려 본질적 변화를 유예시킨다고 볼 수 있다. 기존경로에의 의존 강화와 혁신 담론의 축소 현상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5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이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회의 자료 기준으로, 과학기술 정책관련 근본 문제는 4가지로 파악되었다. 이런 문제들이 최상위의 공론의 장에서 행정엘리트에 의해 적나라하게 ‘자인’될 만큼 상태의 심각성이 감지된 건 늦은 감이 있어도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은 상당부분 축소되었다. 문제 진단의 온도차를 보자.
<표 4>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와 관련 주제에 대한 정책전문인과의 토론결과 정리
위와 같이 정리해 본 이유는 전환기 정책 담론의 축소현상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개혁이 지연될수록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만, 문제의 심각성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 진단은 좀처럼 테이블 위로 올라오지 않을뿐더러, 올라오더라도 위의 사례와 같이 구조적 진단을 비켜가게 된다. 그 결과 정책 담론은 전환적 변화에 관한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기존 경로에 의존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기존 경로의 이해관계자들이 이렇게 혁신담론을 축소하는 동안, 정책 현장에서 거리가 있는 과학기술계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그 축소 현상을 감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강력한 수직연결구조에서 전문인들의 모든 지원을 받고 있는 정부행정 관료로서는 굳이 기존경로를 바꾸어야 할 유인은 사라지고, 기존경로 이해관계자들의 활동 공간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 확대되는 역설을 보인다.
실제로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는 다수의 연구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행정부 스스로 그동안 거론하지 않던 문제(불합리한 관료주의, 과학기술정책 부재 등)를 테이블 위에 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제의 인식이 제시된 대안과 연결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필자와 여러 정책 전문인들의 판단은, 문제인식은 축소되었고, 결론적으로 제시된 대안은 그나마 어렵사리 테이블 위에 올라온 문제인식과 괴리된 채 9개의 톱-다운식 대행 전략과제 발굴 추진으로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정책전문인들 사이에서는 ‘과학기술정책의 부재’와 ‘거버넌스 취약(독점, 부재)’이라는 거대 문제의 진단은 생략한 채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라는 기구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 담론이 축소되어도 견제되지 않는 현재의 과학기술혁신에 관한 정책소통 시장의 협소함, 정책소통경로의 경직성, 정책대안의 다양성 부재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존 경로에의 ‘의존’
조순의 진단과 같이 정부주도의 계획경제 성장모델이 효력을 발휘하는 단계가 오래 전에 지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 영역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정책 주변인’들(연구자들, 정책전문기관인들)이 변방에서 중앙의 문제를 대신하기 위한 가능성을 열어감으로써 정책대안의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견실한 준비작업이 필요하다. 기존의 경로에 의존하여 행정부가 더 전문성을 갖고 잘하기를 기대하는 ‘훈수 놀이’는 이제 충분하다. 정책형성 과정 자체의 개방성과 민주화뿐만 아니라, 정책 주체의 다변화에 근거한 분권과 견제 체제를 방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패권국인 미국의 과기정책 발전과정에서도 이러한 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감사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미국의 GAO는 국회에 속하여 대통령의 간섭을 받지도 않고, 재정감사만이 아니라 정책감사를 그 주요 임무로 수행하고 있고 보고서는 공개되고 있다.
또한,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가 현재의 전환적 과기정책 과제인 것처럼 거론되지만, 이러한 변화 하나가 가져올 영향은 전환적 과기정책과제의 요구에 비견할 때 미미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 직속 과학기술정책자문기구 SAB(Science Advisory Board)가 출발했다. 하지만 SAB는 그 이전에 행정부 외부에 존재했던 독립적 학술자문회의 NAS(National Academy of Science)가 직면한 동일한 형태의 비효율성 문제로 그 기능이 축소 폐지되는 단계에 이른다(1935년). 다름 아닌 과학기술계 원로들의 관료화, 권위주의화 문제 등과 관계된다.[9] 과학기술인들을 행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10]는 대명제 하에 대통령 직속의 NDRC(1940~1947)가 장기적 ‘연구’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정책 총지휘 기관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효율성에 문제가 제기되어, 국가 핵심 연구개발 기능은 새로운 조직인 OSRD(1941 ~1947, 국회 예산 심의)로 넘어가는 진통을 겪는다.
대통령에게 행정부와 별도의 자문과 실적성과를 내는 과학기술인 집단의 존재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면서 그 이후 여러 조직형태(SAC, PSAC, OSTP)로 변천되어 갔지만 정책적 견제와 균형 관점에서 구조적 취약성이 공론화되어 거버넌스 체제가 바뀌게 된 특정 사건과 그 후속 처리 결과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즉 대륙간 탄도탄과 성층권 비행체 개발 영향에 대한 과학기술인들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닉슨 대통령/행정부에만 보고된 내용이 비밀로 관리되었고, 두 개의 사업을 모두 ‘보내고’ 싶어한 닉슨 정부는 과학기술인들의 발언을 제한했다. 국회는 청문회를 열자 과학기술인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도록 압력이 가해지고, 진실을 말한 댓가로 PSAC는 해체(1973)된다. 국회가 견제해야 할 힘의 균형이 깨어지고 권력집중으로 인한 ‘정부독단’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이 인지된 것이다. 이로 인해 과학기술인들이 행정부에 자문하는 모든 회의는 충분한 사전여유를 두고 공지할 것과, 회의록의 완전 공유, 그리고 회의체 참여 전문인 구성의 균형을 골자로 하는 법이 1972년 통과되었다(FACA Act).
결과적으로, 이미 짜여진 정책에 대한 견제·심의(우리의 현실)가 아닌, 정책형성과정에 대한 공정성, 개방성, 공유성, 견제와 균형 체제를 지향하며 발전해온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읽어야 할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국(지금은 모든 국가가 그러하다)에게 있어서 ‘과학기술정책’ 자체가 공공재로 인식되었다는 점과, ‘과학적 객관성의 위력’(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객관성의 위력 : 편향성의 위험이 존재한다.)과 ‘국익관련 정책인들의 다면적 판단력’(정부에 위임된 권력이며, 불확실성과 다면적 가치의 충돌 속에서 적시에 결정해야 하는 책무 : 위험회피적 의사결정 유인이 작용한다.)이 충돌하는 현상의 복잡성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과학적 전문성과 국정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연결하는 전문연결조직[11] 개념이 등장하게 되고, 실제적으로 이를 지원하는 민간싱크탱크들이 정책형성의 중심으로 약진하여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미국의 과학기술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배울 교훈은 제도와 운영의 성숙, 그리고 과기계의 리더십 성숙과 민주적 소통문화 없이는, 어떤 강력한 기구 하나로 나아질 것은 미미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전문인이 아닌, 전문연결조직의 필요성으로 수렴되었다. 미국이 수십 년 운영을 통해 인지한 것은 과학기술인들과 행정부의 수직구조 형성을 차단하되 국회 견제의 제도화와 정책형성과정부터 균형과 개방성을 지향할 필요에 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 기능이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전문연결조직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1차(5/12), 2차(8/10) 과학기술전략회의를 돌아보면, 전환적 정책담론은 축소되었고 핵심적으로 제시된 대안은, 행정부 주도로 미래 먹거리에 ‘집중’ 투자할 과제발굴로 한정되었다.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발굴을 언급한 1차 회의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차 회의에서 인공지능/가상증강현실/자율주행차/경량소재/스마트시티/정밀의료/바이오신약/탄소자원화/초미세먼지 등 9개 과제에 향후 1조6천억원 투자 계획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 행정부처들과 이를 지원하는 전문가 집단의 기민함과 일사불란함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과연 제1차 회의에서 거론된 전환적 과기정책 과제(정책 및 운영체제 문제, 산학연 협력 문제, 연구효율 문제, 연구환경 문제)가 이러한 9개 과제 추진과 무슨 상관인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특히, 축소된 문제인식이 아닌 근본적·구조적 문제진단에서 출발하여 대조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즉, “그동안 잘 발달된 과학기술부분의 투자대상 발굴-기획-선정에 관한 수직 경로를 통해 ‘탁월한’ 업무성과로써 과학기술혁신 체제에 관한 깊은 성찰과 대안발굴의 빈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기존경로에 의존할수록 전환적 과제는 멀어지고 전환 이후 직면할 도전에 대한 준비에 투입되어야 할 기회비용은 소진되어 결국 위기만 키우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전환’의 전제가 될 국가 비전과 전략의 새로운 설정, 공감대 형성 등의 과정을 이끌어갈 핵심 인재들은 이러한 현상을 직시하고는 낙심하고 흩어지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KDI에 왜 인재들이 사라지겠는가? 지방이기 때문일까?[12] 왜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소와 산업현장을 이탈하여 공무원, 교수직 아니면 해외로 달아나겠는가?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숨이 턱 끝에 닿은 국가적 위기의 전조로 느껴야 한다. 기존 경로에 의존한 정책 담론을 속히 벗어나는 것이 바로 첫 과제이다.
현재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특정 주체에 의존하거나 강력한 조처가 아닌, 여러 층위의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큰 틀의 개혁의 방향을 공유하고 이에 필요한 제도와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직 계열화된 구조의 해체를 고민해야 한다. 비효율의 근원이 정무적 영역과 전문적 영역의 강한 결합에 있으므로 반드시 양자를 분리해야 한다. 일단 정무적 영역이 수직 라인을 형성할 동기를 약화시켜야 한다. 이는 정부업무평가 제도, 공무원 사회의 인사 적체 문제, 공무원의 성과평가 및 보상제도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한 고민이 깊은 지도자가 나와야만 풀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개발 영역이 정부와 정치권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단, 연구개발에서의 자율성은 연구개발 조직이 실력주의 체제로 작동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가능하다. 연구소가 정부기관처럼 운영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자율성 확보가 더 좋은 성과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 (IT뉴스, 위와 같은 홍성주 인터뷰)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 시스템은, 기존경로에 의존한 해법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오히려 왜곡될 위험이 크다는 것과, 잃어버리게 될 기회비용의 심각성, 한국 산업이 처한 위기, 혁신역량 및 혁신수용역량 관련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소프트파워’에 관한 도전과 위기 등을 공유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초연구의 강화’, ‘연구 몰입환경 조성’, ‘PBS 철폐 혹은 완화(인건비 70% 출연보장 등)’, ‘기관장 임기 연장’, ‘평가 간소화’, ‘질적 평가’, ‘무빙타겟’, ‘컨설팅형 평가’ 등과 같은 부분적 논리에 천착하는 것도 전환기 정책과제를 축소· 왜곡하는 요인이라 판단된다. 기존에 형성된 수직 라인의 이해관계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과학기술계 모두가 익숙한 사고, 익숙한 대안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대안과 가능성을 열어가는 정책전문인 집단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시장의 힘은 분명 기존 경로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고, 대안 모델을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고뇌와 결집이 없다면 전환기의 험준한 산맥을 넘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본 리뷰에서 전환적 과학기술혁신 정책담론의 축소와 경로의존성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개념으로 행정부의 정책실패와 리더십 한계를 분석한 점은, 그 자체적으로 한계가 있다. 일정한 범주의 집단에 초점을 두고 전환기의 난맥상을 진단하는 것은 또 다른 부실을 양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리뷰에서 다룬 강력한 수직연결구조와 대척점에 있는 상위적 문제들을 간략히 언급하고 리뷰를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
행정부 외에 중장기 관점에서 과학기술정책을 독립적으로 고민하고 ‘지원 및 견제’하는 체제 즉 Shooter – Spotter 개념[13]의 정책협력체제 도입의 필요성, Local Context 관점에서 중장기적 국가 NIS 전략의 공백, 정책실패의 ‘분노’를 정책하위에서 일하는 연구자에게 쏟아 붓는 ‘Whipping Boy’ 현상과 이를 보상하는 ‘당근’현상, 해외선진기술도입의존 추격형 혁신경로로 고착화된 산업전략으로 인해 열악한 산-연 연계 선행기술개발 추진기반, 열악한 강소형 기술중심 중견기업 생태계로 인하여 발생하는 산업수요연계 R&D 기반의 취약성, 기관별 장기적 핵심임무와 이에 연역한 R&R의 모호성으로 인한 질적 평가기준의 취약성, 국방 공공수요 등 공공획득 연계 혁신유도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이를 장려하는 관련 제도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문제, 실력주의와 연구경영리더십의 성장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조직내부정치와 연구현장의 권위주의문화, 자발적 리스크 테이킹을 유인하는 리스크 케어링 체제의 부재, 평가관리체제의 복잡성 증가와 연구경영리더십/연구문화 후퇴의 상관관계, 혁신역량의 외부유출(핵심인재의 유출)과 국내혁신생태계의 ‘혁신지식 수용역량’의 취약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인용한 홍성주의 진단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 두 사람이 추진해서 될 일도 아니고,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IT뉴스, 위와 같은 홍성주 인터뷰)
위에서 열거한 사안 외에도, 전술한 바와 같이 글로벌 컨텍스트, 국가 고유의 산업체질 컨텍스트, 국방·공공부문 효율화 컨텍스트, 국내 연구문화와 인적·제도적 컨텍스트에서 우리가 직면한 정책이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기초연구 투자강화를 정책기조로 한 스웨덴의 국가 R&D정책 결과가 산업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문제를 제스위디시 패러독스’라 함. 이와 반대로, 한국의 경우 응용연구지향/산업중심 연구투자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성이 높은 문제를 말함.
[2] OECD, 1997, National Innovation System
[3] OECD는 NIS 지표연구에서 동기에서 기국가별로 혁신을 방해하는 요인의 발견”라 하고 있다.
[4] 대학의 석박과정생의 출연연 파견, 출연연 연구자의 기업파견, 대학-산업 협력 연구에 따른 사업정보의 보호와 경쟁사업화를 지향한 교수 창업 방지 제도 등
[5] 한겨레 기획인터뷰, 2014.9.10., A사람을 소외시킨 경제가 오히려 성장을 막고 있다”
[6]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부처 연계협력 사업이 장려되기도 하지만, 예산의 수직라인은 그대로 유지되어 실제적 하부의 연구개발 추진 체계에서는 ‘무늬만 융합’ 현상을 보여왔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전환적 개선으로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주관의 융합연구단 사업(참여 연구원에 대한 파격적 대우와 더불어 On-site 결집을 강조한)이 출범되기도 하였다.
[7] 최근 조선일보, ‘신화가 저문다’ 연재기사 중, ‘정치가 망치는 R&D 사업’이란 기사내용이 이러한 문제의 좋은 사례이다. 출연연의 경우 공공의 복리와 위배된 투자인줄 알면서도 아무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구조이며, 때로는 연구원의 사례와 같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기관장의 뜻에 막혀 자발적인 동조인 양 포장되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8] 정책현장에서 ‘대안부재’는 가장 나중, 혹은 아예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대안이 제한된 열악한 상태에서라도 대안탐색은 중요하다. 또한, 장기적으로 다양한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9] 연구를 위한 연구, 나눠먹기 이해관계의 충돌, 학계의 계보가 아닌 실력자들의 등용 관련 갈등 등
[10] Douglas heather E. 2009, Science, Policy and the Value-Free Ideal. page 30 : “Douglas heather E. 2009, Science, Policy and the Value-Free Ideal. page 3pport to nongovernment scientists in a way that would not threaten the autonomy so valued by the scientists.
[11] 예를 들어, Guston이 2000년 제기한 ‘boundary organization’ 개념이나, Pielke & Roger가 2007년에 소개한 ‘honest broker’가 있겠다.
[12] 한국경제, 2016.8.21. e국가전략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에서, 경제 관료들은 자신들의 후배가 과거 패턴대로 턴붕어빵’어정책만 찍어내는 단순 기술자로 전락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리고 국가 전략을 뒷받침하는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의 싱크 탱크들이 쪼그라드는 현상을 고발했다. 그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파악을 못하고 있다. 지방이전 여부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다만 그 현상을 통해 더 잘 드러났을 뿐이라고 판단한다.
[13] 미국 군사교범에 의하면 저격수(스나이퍼)는 단일로 운영되기 보다, 팀을 이뤄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즉 저격하는 shooter와 그를 돕고 지원하는 spotter / flanker 의 역할이 그것이다. spotter는 sniper를 도와 타켓 관련 적진 상황을 보다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바람과 기후의 변화 등을 고려한 조준조정 정보의 제공, shooter의 안전 및 후방지원과 관련한 보조를 담당하고 flanker는 보다 shooter – spotter 팀과 떨어져 보다 광대역의 정보 제공과 후방지원에 관한 역할을 담당한다. 즉, 과학기술거버넌스의 분산과 수평통합을 견제와 균형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shooter – spotter 개념으로 서로 상보하고 시야를 넓히는 팀웍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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