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여담

윤여정 (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학사과정)

journeyinapril@gmail.com


 

대전에서 태어나고 친가 외가까지 모두 대전인 대전 토박이가 울산으로 대학을 가고 연구하러 스위스에 다녀왔다. 외국에서 가족과 떨어져보니 ‘언제 다시 대전에서 가족과 꾸준히 지내보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이스트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울산보다 대전이, 유니스트보다 카이스트에서 문화생활을 더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동안 보지 못한 내가 사랑한 나의 고교의 찬란한 봄 벚꽃을 보고 싶었다.

6개월간의 휴학과 6개월간의 스위스 연구소 생활을 마치고 저녁이 있는 삶에서 저녁에 과제가 있는 삶이 되었다. 교환학기로 7개의 수업을 들었지만, 카이스트를 바라보고 그것을 사진으로 담는 여유를 가지려 한 2018년 봄과 여름의 카이스트.

카이스트는 매번 나를 우와-하고 눈을 크게 뜨게 했다. 그래서 보여주고 싶다. 보면서 ‘나도 이거 봤는데’라고 생각하며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여러분의 1학기, 카이스트는 어땠나요?

 

그림 1

2018.03.28. 촬영

디즈니의 영화가 시작하는 듯, 당장에라도 불꽃이 성 위에 호를 그리고 지나갈 것만 같은 이 홍보물을 보며 감탄을 아낄 수 없었다.

사진을 찍은 시각은 아침 10시 32분. 교수님 죄송해요. 늦었어도 이건 지금 찍어야겠어요.

 

그림 2

2018.04.04. 촬영

학술문화관 창문 밖에서부터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고 들어왔다. 사진을 찍으며 저 가방을 메고 다닐 이의 모습을 생각했다.

아니, 풍선 하나로 이렇게 사랑스러워질 수 있어?

 

그림 3

2018.05.23. 촬영

내가 좋아하는 열람실 자리에 앉으면 보이는 모습.

 

그림 4

2018.04.19. 촬영

사람들 마음속엔 참 겹이 많거든요.

-박완서 <빨갱이바이러스>

마음에 겹이 많다는 건 무슨 말일까.

마음의 벽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봤지만, 마음의 겹이란 말은 여기서 처음 읽었다.

벽은 인위적으로 세운 느낌이라면 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긴 게 아닐까.

그렇다면 겹이 많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소중한 게 많아서 기억하는 게 많고 사연이 많은 사람이 아닐까.

처음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E.T. 그걸 언니랑 보러 갔는데 그게 너무 슬퍼서 많이 울었고 그래서 슬픈 영화는 같이 보러 가주지 않는 언니를 가진 친구라든지.

당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어 읽는 모든 책에 표지를 씌우는 우리 어머니라든지.

“많이 좋아해서 온종일 그 얘기만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꾹 잘 참을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친구라든지.

겹이 없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만발한 왕겹벚꽃을 만났다. 왕겹벚꽃은 다른 벚꽃보다 늦게 핀다.

 

그림 5

2018.05.23. 촬영

카이마루.

카이스트 학생들은 모두 북측식당이라 불러서 카이마루라고 하면 “아 북측?”이라는 물음이 돌아오는 카이마루.

그 카이마루 가는 길에 세워져 있던 노랗고 둥근 등받이를 가진 스쿠터.

내가 본 세상에서 제일 가는 귀여움을 가진 스쿠터다.

나는 노란색을 좋아한다. 나랑 잘 어울리는 색이라. 노란색이 좋아서 노란색의 보색인 보라색도 좋아한다.

반색이 아니라 보색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그림 6

2018.05.24. 촬영

여러 이유로 카이스트에 왔지만, 많은 과제로 인해 가족과 만족할 만큼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벚꽃 피는 날들이 시험기간인 건 마찬가지라 고교의 벚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문화생활은 제대로 했다. 나는 이곳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유니스트에선 버스 정류장에 빠르게 가기 위해 질러가야해서 싫었던 운동장이 카이스트에선 좋아졌다. 이제 유니스트에 돌아가도 대운동장이 좋아질 것 같다.

 

그림 71

2018.05.30. 촬영

카이스트에 있으면서 손으로 꼽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 카이스트에는 고양이가 많다. 최고야. 둔산동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나에게 우아하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내 맘대로 레오라고 이름 붙였다. 성은 오. 오레오 음료를 떠올리게 하는 털을 가지고 있어서. 정신을 놓고 놀다가 둔산동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놓칠 뻔했다. 그 이후엔 레오를 만나지 못했다. (그때 놓쳤어야 했나 생각한다.)

카이스트를 거닐다 보면 고양이를 만나는 일이 자주 있다. 그 중 제일 묘연한 일을 소개해보자 한다. 기숙사 창문 밖에서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가 나서 내려다본 일이 있었다. 내려다 본 그곳에는 나를 포함한 7명의 사람이 멈추고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까지 사람의 시선을 끄는가 의아했다. 그러고 곧 이유를 약간은 알게 되었다. 자연과학동 궁리정원 근처 가스통을 보관하는 곳에 고양이 사료통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림 8

2018.05.30. 촬영

푸-하

 

그림 9

2018.06.04. 촬영

괜히 든든한 나무.

 

그림 10

2018.06.05. 촬영

한국소설다시읽기 강의는 여러모로 나에게 특별한 수업이었다. 내가 대학에 와서 처음 수강한 한국어 수업이다. 그 수업에서 종강 이라는 말을 듣고 인문사회건물을 나오던 길이었다. 나를 향해 쭉 뻗은 무지개를 만났다. 무지개는 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바티칸 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입장 줄을 한참 서 있다가 앞에서 끊겼다. 허탕을 치고 뒤돌아 선 순간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와- 그대로 들어갔다면 못 봤겠지. 아쉬웠지만 이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이렇게 무지개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실 난 무지개에 대한 소중한 기억들이 조금 많다. 두 시간 반 러닝타임 중 두 시간을 운 뮤지컬이 있다. 그 뮤지컬에서 주연 배우의 극중 이름이 몽골어로 무지개인 솔롱고이다. 몽골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 대한민국이 몽골어로 솔롱고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월에 만난 뉴욕은 무지개로 가득했다. 무지개 깃발을 달아두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 같았다.

또다시 유월이다. 어딘가는 거리가 무지갯빛으로 물들 것이다. 주변을 무심하게 바라보거나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무지개를 놓칠지 모른다. 무지개가 있음을, 그곳에는 혐오가 없음을 알기를 그리고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읽을거리

읽을거리_보슈 8호

「BOSHU」

“언제나 싫은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으로부터 말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내가 삶 앞에서 뒷짐을 지거나 심드렁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BOSHU」 9호 <at>

대전 청년들이 모여 만드는 잡지로, 청년이 관심 가질 만한 내용을 다룬다. 이번 학기에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잡지 발간뿐 아니라 여성 축구, 주짓수, 그리고 여성주의 관점으로 글 쓰는 강연도 운영한다.


 

교환학생 여담”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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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여정님처럼 마음 한켠의 여유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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