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어린이회관과 천체투영관(Planetarium): 시대를 투영하다

김하정 (서울대학교 과학사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

hajeong.kim@snu.ac.kr 


 

그림1

<그림 1> 구 남산어린이회관의 전경

서울 남산의 서쪽에는 독특하게 생긴 하얀색 건물이 있다. 18층 정도의 고층 건물이 산 위에 서 있는데다 새하얀 외벽에 원반형의 꼭대기 구조물까지, 멀리서도 그 존재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함과 위치에 비해 이 건물에 대해 알거나 건물을 직접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50여 년 전 남산 언덕에 세워진 이 건물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림2

<그림 2> 육영수의 이름이 적혀 있는 머릿돌

남산을 순환하는 02번 버스를 타고 교육연구정보원 정류장에 내리면 정문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보인다.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던 돔 형태의 건물이 4층 정도 높이로 보이고, 그 옆의 다소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본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건물에 대한 힌트는 정문 옆의 머릿돌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머릿돌에는 1970년 5월 5일이라는 날짜와 함께 육영수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오늘날 서울특별시 교육청 교육정보연구원과 과학전시관 남산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육영수가 설립한 육영재단이 어린이회관 용도로 세웠던 곳이다. 50년이 흐른 지금에도 당시 어린이회관의 흔적과 함께 한국 과학문화사(科學文化史)의 흥미로운 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남산에 세워지게 된 어린이회관

남산은 오래 전부터 정치 권력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표출하던 장소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신궁이, 해방 후 허물어진 조선신궁 터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졌다. 1960년대의 남산은 국가 권력의 상징이자 반공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장소였다. 장면 정부는 남산에 중앙정보연구위원회를 세웠고, 이 기구는 5·16쿠데타 이후 ‘중앙정보부’라는 이름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단체로 편입되어 많은 사람에게 정치공작과 고문을 떠올리게 하는 공포의 장소가 되었다.[1] 1964년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공산주의 침략을 막는 자유정신”을 건축에 담은 “자유센터”를 짓기도 했다.[2] 자유센터는 “반공 이념의 신전”이라는 수식어처럼1950년대까지의 원초적 반공 의식을 “이념화된 반공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건축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3]

각종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던 남산에는 1960년대 후반을 거치며 ‘어린이’라는 상징성이 새롭게 더해진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1967)>를 창간하고, 어린이 대상의 복지 사업을 진행하는 ‘육영재단’을 설립하는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4] 1969년 4월 24일 설립 인가를 받은 육영재단은 어린이회관 건설을 중요한 사업으로 추진했다.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지원한 회관의 건설은 빠르게 진행되어 이듬해인 1970년 7월 25일 문을 열었다.[5]

 

성공적이었던 어린이회관의 과학 활동

이렇게 지어진 어린이회관에서 ‘과학’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단어였다. 천체과학관과 천체투영관을 비롯해 과학 전시실, 과학 실험실, 과학 공작실, 과학 오락실, 천문기상실 등이 건물 내부에 있었고, 이러한 장소에서는 학교 수업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체험 위주의 활동이 이뤄졌다. 영재교육을 한국에 소개했던 서울대 정연태 교수는 ‘과학수재아교실’을 설치해 실험을 통한 자주적인 학습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6] 어린이회관의 인기 순위 조사에서도 과학과 관련된 전시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어린이회관에서 이뤄졌던 과학 활동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7]

하지만 본래 어린이회관은 ‘청소년에 대한 반공정신의 앙양, 과학지식의 보급, 건전한 민족정신의 함양 및 고취, 청소년의 복지증진을 위한 체위의 보양과 정서의 순화’라는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었다.[8] 어린이를 위한 과학 활동이 다채롭게 이뤄지는 만큼 반공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전시물도 많았다. 입구에서 한 층 내려가 천체과학관에 진입하기 전에는 종합전시실을 지나쳐야만 했다. 그 곳에는 이승복 동상과 무장공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반복 상영되는 승공관이 별도로 있었다.[9] 박정희 대통령 역시 어린이회관을 방문할 때마다 승공관 앞에서 사진을 남기곤 했다. 이렇게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들이 순수하게 과학을 즐기는 놀이터였다기보다는, 정부가 길러내고자 했던 어린이의 상(像)을 투영하는 곳이었다.

 

광화문에서 남산으로 옮겨진 천체투영기

종합전시실 안쪽에는 천체과학관과 함께 천체투영관이 있었다. 어린이회관 건립 당시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천체투영관의 목적으로 지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계속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림3

<그림 3> 어린이회관 건립에 대한 보고서 속 천체과학관[10]

천체투영관(Plantarium)은 돔 형태의 스크린에 천체투영기가 천체의 영상을 투영하는 구조물로, 관객들은 의자에 누워 천장에 비춰지는 영상을 감상하게 된다. 상영을 위한 돔 구조의 전용 공간을 필요로 하며, 디지털 방식의 기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용되던 기계식 천체투영기가 상당히 고가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과학 기구를 도입하고 설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와 함께 실린 예산안에서는 천체과학관과 천체투영관 건설을 위한 비용만 책정되어 있을 뿐, 천체투영기를 구입하기 위한 예산이 책정되어있지 않았다. 공간 구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천체투영기는 일본 고토(五藤)사의 제품으로, 원래 광화문 전화국 옥상의 천체과학관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광화문 전화국 옥상의 천체투영기는 어떻게 남산의 어린이회관으로 옮겨오게 된 것일까?

그림3-2

<그림 4> 어린이회관 건립 개관무렵 전경[11]

천체투영기, 기증품에서 하사품으로 변모하다

 “별들의 움직임을 한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천체(天體)과학관이 서울 世宗路에 자리 잡은 光化門전화국 옥상에 세워지게 됐다. (중략) 이 과학관에 재일교포 李鉉琇(不二貿易 사장)씨가 기증한 「프라메타륨」(日貨 8백만 원 정도)이라는 기계가 설치되면 반달형으로 된 실내에 천체의 운행상황이 그대로 영사된다. (후략)[12]

1967년 2월 21일의 신문에서 광화문 전화국의 천체과학관 건립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있다. 이 기사에서는 재일교포이면서 ‘불이무역’이라는 회사 사장인 이현수씨가 기증한 ‘프라메타륨’이 광화문 전화국 옥상에 설치될 예정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당시 천체과학관 건립에 사용된 돈이 약 2천만 원이었으나 천체투영기 가격만 일화(日貨)로 800만 원, 당시 환율로 천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기증이 천체과학관 개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림4

<그림 5> 1967년 4월 29일 광화문 전화국 천체과학관 개관식[16]

하지만 천체과학관 개관식 사진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하신’ 이라는 점을 내세워 천체과학관을 홍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체과학관을 운영하던 체신부[13]의 월간지 <체신문화>에서도 대통령이 하사한 점을 강조하고 감사를 표하는 등, 고가의 천체투영기는 한 사업가의 기증품에서 대통령의 하사품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14]

대통령의 하사품이 된 이상 영부인이 추진하던 어린이회관으로 천체투영기가 옮겨지게 된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광화문 전화국의 천체과학관이 사라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어린이회관 건설 계획에서부터 천체투영관의 존재를 예정하고 있었으며, 예산안에는 천체투영기 구입 금액이 책정되지 않았다는 점으로 처음부터 이 기기를 옮겨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천체투영관은 새로이 개관한 어린이회관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회관의 입장료는 어린이 30원, 어른 100원이었는데, 천체과학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추가로 어린이 30원, 중고등학생 50원, 어른 100원을 내야 했다. 그럼에도 전체 전시실을 대상으로 한 인기 순위 조사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장소였다.[15]

광화문의 천체과학관은 체신부의 정책 홍보 일환으로 사용되었고, 남산으로 옮겨진 천체투영관은 어린이들의 반공 정신과 과학 지식을 고취하겠다는 어린이회관의 목적에 맞게 설치되었다. 기업가의 기증품에서 대통령의 하사품으로 자신의 수식어를 바꾸면서도 천체투영관은 과학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오늘날의 어린이회관과 천체투영관

머릿돌을 지나쳐 건물로 들어가면 로비 건너편의 과학 전시실로 입장할 수 있다. 전시실이 시작되는 지하 1층까지 가는 길에는 과학관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푸코의 진자’는 물론, 경사로 양쪽에서 우리나라의 과학 문화재와 유명한 과학자를 소개하는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느껴지는 그림이나 설명은 그다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과학전시실의 구색을 갖추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종합전시실과 승공관으로 사용되었던 전시실은 오늘날 세부 분야로 구분된 과학 전시실로 사용된다. 표본이나 영상 매체를 이용한 전시물은 물론 관람객이 직접 작동시켜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한 기구 등 다양한 체험이 이뤄지는 장소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2020년을 앞둔 오늘날에는 이미 한참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과학기술’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시대감을 잃은 것이 많고, 오래된 전시품 위에 새로운 설명을 덧붙인 흔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래되어 잘 작동하지 않는 화면, ‘대한뉴스’를 듣는 듯한 내레이션도 미래의 과학기술을 체험하는 장소라기 보다는 ‘과거의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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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 과학전시관 남산분관의 천체투영기

여러 변화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천체투영관은 여전히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내부의 전시품을 바꿀 수 있는 일반 전시실과는 달리, 돔 형태의 구조물로 건축되었기에 다른 용도로 바꾸기에는 아까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반공 교육이 사라지게 되면서 승공관이 있었던 장소는 평범한 과학전시실이 되었지만 그 안의 천체투영관은 계속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상영 시간에 맞춰 천체투영관으로 진입하면, 실제로 상영되는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중앙에 놓여있는 천체투영기가 고토사의 제품이 아닌 것으로 보아 1970년에 어린이회관으로 옮겨졌던 그 기계와는 다른 모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꽤나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의 기기와는 다른 기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돔의 크기나 형태 등은 당시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새로 지어진 다른 천체투영관과 비교하면 다소 좁은 듯한 이 공간에서 여전히 50년 전에 어린이들이 경험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천체투영관에서 상영되던 영상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사계절 별자리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는 영상은 초등학생 정도를 대상으로 하는 듯했다. 견우와 직녀가 등장해 은하수의 유래를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은 천체투영기만으로는 상영이 불가능해 일반 빔프로젝터를 동원해야 했다. 천체투영기에서 투영되는 영상에서도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기계에서 비춰지는 별과 밤하늘의 풍경이 충분히 밝지 않아 영상물에 완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남산 어린이회관의 화려했던 영광은 그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었다. 개관 1년 만에 76만 명의 사람이 방문했던 과거는 잊히고, 요즘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방문객이 거의 없어 보였다. 어린이회관이 광진구의 현 위치로 옮겨지고, 과학 전시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국립과학관이 개관했으며, 보다 좋은 설비를 갖춘 천체투영관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는 상황에서 남산에 남은 이 건물은 상대적으로 매력을 점점 잃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서울 한가운데 남산 언덕의 매력적인 건물 지하에서 시대감을 잃은 과학 전시물 사이를 돌아다니는 경험은 쉽게 겪기는 힘든 독특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천체투영관도 그렇다. 비록 같은 기계로 같은 영상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의 용도를 잃지 않은 (혹은 잃지 못한) 그 공간에서 여전히 50년 전의 사람들과 비슷한 감각으로 한낮의 밤하늘을 체험할 수 있다. 당시 느낄 수 있었던 스펙터클은 빛을 잃어 2019년의 우리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겠지만, 시간을 쌓아온 과거의 스펙터클은 또 다른 매력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읽을거리

 

(읽을거리1) Theaters of Time and Space

 

Jordan Marché (2005), Theaters of Time and Space, New BrunswickRutgers University Press. 

이 글의 기반이 되었던 기말 보고서를 쓰면서 참조했던 책입니다. 표지에 실린 기계적 스펙터클을 선사하는 칼 자이스사의 거대한 천체투영기가 인상적입니다. 당시 시간이 없어 발췌해 읽었던 게 아쉬워서 꼭 다시 제대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읽을거리2) 만국박람회 환상요시미 슌야, 이종욱 역(2007), <만국박람회 환상전후 정치의 주술과 시민의식>논형. 

저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과학문화, 과학의 각종 스펙터클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책에서는 일본에서 이뤄졌던 박람회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1985년의 츠쿠바 엑스포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워서 고르게 되었습니다. 몇 년 간 대전에서 살면서 1993년의 대전엑스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차후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1]주간경향(2015. 05. 05), “[광복 70년 역사르포] (10) 남산 중앙정보부… 무소불위의 공작과고문의 흔적”.

[2]중앙일보(2015. 11. 25), “ JP “자유 냄새 물씬 나게” 남산에 자유센터 건축 구상 … 김수근“태평양 향해 힘차게 나가는 배, 시대정신 형상화””.

[3]한겨레21(2013. 12. 23), “반공의 이념 앞에 헌정된 정치적 신전”.

[4]육영재단 어린이회관재단소개: 설립자 육영수 여사님”,http://www.yookyoung.org/site/yookyoung/page/introduce.jsp.

[5]이해수(2014), “남산의 재구성: 박정희 정권의 어린이 보건ᆞ복지 정책과 남산의 변화”,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6쪽.

[6]동아일보(1973. 01. 15), “어린이회관 學習現場을 찾아”.

[7]경향신문(1970. 07. 23), “25일 개관 앞둔 어린이 회관”.

[8]이해수(2014), 같은 논문, 60쪽; 어린이회관(1972), <어린이회관요람>.

[9]이해수(2014), 같은 논문, 47쪽.

[10]“어린이회관 건립에 관한 보고(1969)”,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49286217

[11]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200053864&dsid=000000000002&gubun=search#1

[12]동아일보(1967. 02. 21), “天體科學館 세우기로”.

[13](편집자 주) 과거 통신과 우편을 담당했던 정부 부처. 1994년 정보통신부로 개편되었고, 현재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체신부를 계승하고 있다.

[14]체신부(1967), “천체과학관 드디어 개관”, <체신문화> 127호, 80쪽.

[15]경향신문(1970. 07. 23), “25일 개관 앞둔 어린이 회관”.

[16]“천체과학관 개관식(1967)”,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4928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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