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다시 읽기: 코로나19 시대의 불평등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임채경
chaekyung95@kaist.ac.kr


존 C. 머터, 장상미 번역 (2016),『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이게만 가혹할까』, 동녁. [John C. Mutter (2015), The Disaster Profiteers: How Natural Disasters Make the Rich Richer and the Poor Even Poorer, St. Martin’s Press.]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풍경이 달라졌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사이버 강의를 듣게 되었다. 또, 재택근무가 장려되어 새로운 근무 형태가 생겨났다. 동시에 코로나19는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을 마주하게 했다. 누군가는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수백 장씩 구매할 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네 약국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컴퓨터가 없는 저소득층 어린이는 사이버 강의를 듣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벽에는 여의도 증권가에 녹즙을 배달하고, 콜센터에 출근하는 확진자의 동선에선 생계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못하는 노동 취약계층의 고단함이 드러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급작스럽게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 장애인, 독거노인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바이러스는 나이, 성별, 인종, 계층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의 삶이다. 같은 재난이라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 가혹하다.

<재난 불평등 –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이하 <재난 불평등>)는 코로나19 사태처럼 재난 상황에서 발견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다룬다.[i] 이 책의 저자인 존.C.머터 (John C. Mutter)는 “재난의 피해 규모는 재난의 물리적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격차, 기존의 부조리, 불평등이 그 크기를 결정한다”(8쪽)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사회 지배층이 재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이익을 추구하는지를 상세히 다루면서 재난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난을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자연 그 자체보다 인간이라는 것이다. [ii]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지진학자인 저자는 사회과학 분야를 탐구하고, 파인만경계[iii]에 서서 재난을 바라본다. 특히 재난 그 자체보다 재난 전후 일어나는 사건을 분석하여 재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회의 특징을 짚어낸다. 부유한 나라보다는 가난한 나라가, 한 나라 안에서도 사회 지배층보다는 가난한 시민이 재난에 더 취약하다고 밝힌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아이티 지진, 미얀마의 태풍 등 빈곤한 나라의 사례뿐만 아니라, 미국의 카트리나, 일본의 지진 등 선진국의 자연재해 사례도 비교 분석한다. 저자의 주장은 지진, 쓰나미, 태풍 등의 사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의 상황에도 유효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재난 대응에 있어서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부유한 나라는 재난을 기회 삼아 더 나은 사회를 재건하기도 한다. 건설업 등의 부흥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는 경우도 있다.[iv] 그러나 가난한 나라에서는 이러한 일이 불가능하다. 가난한 나라는 무너진 시설을 더 좋은 설비로 대체할 여력이 없다. 이렇게 재난 이후 제대로 사회를 재건하지 못하면 다른 재난에 또다시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커지고, 사회의 발전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진다. 재난 때문에 가난한 나라는 더욱더 가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부와 지위에 따라 재난에 대한 취약성이 달라진다. 그 때문에 저자는 불평등과 부패가 심할 나라일수록 재난의 결과가 처참하다는 것을 아이티, 미얀마, 칠레 등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보여준다. 극소수의 지배층이 나라의 모든 부를 지닌 아이티의 경우 대부분의 지진 피해는 가난한 아이티 국민의 몫이었다. 실제로 “20만 채 이상의 주택이 무너지거나 심각하게 파괴됐는데, 대부분 가난한 사람의 집이었” (111쪽)으며, 많은 사람이 건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지진이 일어난 포르토프랭스의 대다수 건물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적절한 건축 규정을 적용할 제도적 역량이 없었고, 가난한 사람은 저렴한 자재로 허술하게 지어진 건물에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재난의 피해를 키운 것이다[v]. 반면 부유한 백인계 지배층이 살았던 페티옹빌의 저택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아이티에서는 가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무관심, 강력한 정부의 부재 때문에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사람들이 깔려서 죽어 나갔다”(123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회 지배층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재난은 법과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혼란의 상황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내에 있던 불평등을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틈을 제공하기도 한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다. 이때 뉴올리언스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속해 있음에도 개발도상국 못지않은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 역시 부패와 불평등 때문이다. 뉴올리언스에서 돋보였던 것은 인종차별에 기반한 불평등이었다. 언론 보도에서는 재난 이후 약탈과 강간 등 많은 범죄가 일어났고, 이는 모두 흑인이 만들어 낸 사회불안이라고 전했다.[vi] 그러나 극단적인 보도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 상황에서 가장 폭력적이었던 것은 뉴올리언스 경찰과 백인 자경단이었다. 저자는 “그들은 혼란 속에서 경찰이 부족한 상황과 흑인이 약탈 또는 무법천지의 행동을 할 것이라는 부당한 공포를 악용해, 오랫동안 흑인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던 경멸을 살상 무기와 함께 드러냈다”(228쪽)고 말한다.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인종차별의 문제가 혼란의 상황에서 뚜렷하게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재난 이후 재건의 상황에서도 두드러진다. 카트리나 이후 인구조사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거주자 중 흑인은 10만 명이나 줄어든 반면 백인은 1만 5000만 명만이 줄어들었다.[vii] 원래 다수의 흑인이 거주했던 뉴올리언스의 인종 구성이 카트리나 전후로 바뀐 것이다. 저자는 “뉴올리언스의 복귀 주민 구성에서 인종적 불균형이 나타난 것은 지배층이 소수 집단에 유리한 조건을 강화하고 확대해서 사회적 이득을 취하게 했”(257쪽)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렇듯 재난 이후에 재난을 기회 삼아 이익을 취하는 자들로 인해 불평등이 심해진다.

태풍,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빠르게 사회를 할퀴고 지나간다면,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서서히 침몰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나라 혹은 시민이 더욱더 재난에 취약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더욱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은 이미 의료 인력 및 의료기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 추세를 보여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viii] 단순히 바이러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엔 식량 계획(WFP)은 작년 보다 두 배 이상인 2억6500만 명의 사람이 굶주림의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ix] 세계적 경기침체와 봉쇄조치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굶주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저소득층 대다수가 관광업, 요식업 등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조치에 크게 영향을 받는 영역에 고용되어 있거나, 임시직 혹은 일용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빈곤한 나라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실제로 2019년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소득이 1억 원 이상인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고용불안을 겪은 비율이 15.6%에 그쳤으나 소득이 1천만 원 이하거나, 수입이 없는 경우 각각 51.6%, 54.3%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x] 누군가에게 코로나19가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불편함,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 정도로 다가온다면 누군가에게는 삶을 뒤흔드는 위협이 된다는 차이가 저자의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한다.

미국에서는 뿌리 깊은 사회적 불평등이 코로나19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미국 내에서 흑인의 코로나19 감염비율은 다른 인종의 감염비율보다 높다. 실제로 시카고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인데 비해 감염자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나 된다.[xi] 흑인이 보건 의료 체계에 접근하는데 인종 간 경제적, 구조적 불평등이 어려움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조지 플루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인종차별반대 시위가 촉발되기도 했다. 미국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 폭동이 일어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주도 세력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며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이러한 미국의 상황은 저자가 묘사한 카트리나 당시의 뉴올리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난이라는 혼란의 상황에서 뿌리 깊은 사회적 불평등이 수면위로 올라오고, 사회 불안이 심화되는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재난 불평등을 극복해야 할까?

저자는 재난 불평등을 해결할 첫 발걸음으로 “재난이 자연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속성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272쪽)을 꼽는다. 재난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재난을 자연과 사회구조의 상호작용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규모가 재난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하고, 자연현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재난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사실이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더 나아가 저자는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의 경계를 허물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단절로 인해 과학스러움으로 가득 차거나 악용될 수 있는 빈공간이 형성된다.” (102쪽)는 점을 지적하고, “빈공간에는 정치적 목적이나 그 밖의 특정한 입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보들이 들어간다.”(39쪽) 고 밝히면서 학자들이 파인만 경계를 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재난을 틈타 발생하는 정치적 부도덕을 예방하고, 재난으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재난 불평등>에서 그러한 시도를 했고, 파인만 경계에서 재난을 들여다봄으로써 재난이 어떻게 사회에 내재된 불평등을 끌어내는지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재난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재난과 불평등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의미 있다.

<재난 불평등>은 재난과 불평등에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책의 중간중간, 특히 2장에서는 자연과학적 내용과 사회과학적 내용이 제대로 융화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지진예보는 어렵지만, 태풍 경로 예측이 비교적 쉬운 이유’[xii]와 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과학적 내용을 서술하여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번에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지점은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를 탐구하고, 이해하고, 글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아쉬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원서와 번역서의 제목이 전달하는 바가 달라 아쉽다. 원서에서는 “Profiteers”라는 단어를 써서 재난을 기회로 삼아 사회 지배층이 더 많은 이익을 취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번역서에서는 이 단어를 “불평등”으로 대체하여 그러한 저자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Profiteers라는 단어를 대체할 한국어가 없다는 점과 불평등이라는 단어가 책이 전반적인 내용을 적절하게 담아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수긍이 가는 번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는 재난을 마주한 지금, <재난 불평등>은 읽어 볼 만하다. 재난이 자연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의 상호작용이라는 저자의 관점이 우리가 마주한 코로나19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자가격리로 인해 생명권을 침해받는 중증 장애인의 어려움, 복지회관에 가지 못해 식사하지 못하는 독거노인의 어려움, 전자기기가 없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학생의 어려움은 바이러스에 대해서만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재난 상황에서의 복지서비스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콜센터와 물류센터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과 요양, 관광, 요식업 등 서비스업 분야의 두드러진 실업률 증가는 단순히 코로나19의 습격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해 고용체계의 취약성과 불평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어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고, 여러 형태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재난 불평등>은 지금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재난의 불평등한 결과에 질문을 던지며 책을 시작한다. “카트리나로 인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왜 대부분의 사망자가 빈민이었을까? 노인이 그렇게 많이 희생된 이유는 무엇일까?”(12쪽) 저자는 경제지표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피해를, 아픔을, 삶을 탐구했다. 그리하여 재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방법을 제시했다. 사회의 변화는 이러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과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때문에 우리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러한 어려움은 과연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의 불평등 때문인지, 어떠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고민해야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i] 이하 쪽수만 표시한 인용문은 해당 책에서 발췌

[ii] 같은 책, 12쪽

[iii] 유명한 과학자였던 리처드 파인만은 “신은 실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과학적 방법으로는 신이 존재 여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질문이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대답했다. 저자는 자연재해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인만이 말한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과학 분야를 함께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핵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이름을 따서 파인만 경계라고 정의했다.

[iv] 같은 책, 23쪽

[v] 같은 책 118쪽

[vi] 같은 책, 221쪽

[vii] 같은 책, 250쪽

[viii] BBC news 코리아(2020.06.29), 「코로나19 확산이 급증하는 나라와 감소하는 나라」,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3217496

[ix] 연합뉴스TV(2020.04.26), 「세계인구 2억6천명 굶주린다”…코로나로 급증 관측」, 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0426001000038

[x] 연합뉴스(2020.05.27), 「”코로나 19, 경제적 불평등 심화 가능성 커”(종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527061951005

[xi] 연합뉴스(2020.04.08), 「”미 시카고 코로나19 사망 70%가 흑인”…사회경제적 요인 ‘복합’」, https://www.yna.co.kr/view/AKR20200408002000071

[xii] 같은 책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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