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의 꽃과 나무를 떠나며

윤기준

ifimtiny@gmail.com

안녕하세요. 09학번 윤기준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무만 보이면 뭔지 물어보시고, 모르면 그것도 모르냐고 하시며 수종을 친절히 알려주시던 어머니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캠퍼스에 있는 나무와 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 환경자치단체 G-inK에서 나무에 팻말을 잘 걸어주셔서 10년 정도 학교에 있으면서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는 대강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못 본 것도 있을 수 있고, 기억에 의존해서 작성한 글이라 평범한 학생이 느낀 캠퍼스는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틀린 점이 있으면 다양한 경로로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이스트 본원 캠퍼스는 공대가 풍기는 이미지와 목욕탕 타일을 붙인 것 같은 건물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단조롭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 해 동안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의 다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 다채로움은 식물들이 만들어 낸다. 80년대에 캠퍼스를 세우기 전부터 있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부터 2010년대 대전 도시녹화사업의 일환으로 새로 심은 나무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풀과 꽃까지. 카이스트에는 수령(樹齡)과 수종(樹種)이 다양한 식물들이 있다. 이런 다채로움은 워낙 일상적이고 천천히 나타나기 때문에 잘 눈치채기 어렵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눈이 즐겁고 사랑스럽다.

한 해 중 가장 첫 번째로 볼 수 있는 꽃은 아마도 산수유와 매화일 것이다. 산수유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붉은 산수유 열매의 바로 그 나무이다. 학교 나무에서는 붉은 열매를 그렇게 눈여겨본 적은 없지만, 늦겨울부터 피는 노란 꽃이 꽤 인상적이다. 산수유는 학교에 몇 안 되는 완전 노란 꽃이다. 작은 꽃들이 여럿 모여있는 형태로 피는데, 색이 꽤 예쁘다. 산수유는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교육지원동이랑 본관 사이에 몇 그루, 자연과학동 근처에도 몇 그루 있다.

산수유나무가 오래되면 가지가 꽤 웅장하게 뻗어 나가서 꽃이 달린 모습이 큰 은행나무처럼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데, 학교에 있는 산수유나무들은 그렇게 크지도, 가지가 많이 뻗지도 않아서 꽤 귀엽고 친근한 느낌이다. 꽃이 두어 달 정도는 피어있는데, 빨리 지지도 않아서 그냥 그 자리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점도 좋다. 볼 때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을 생각나게 하는 반가운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매화나무는 중앙기계실 옆에 몇 그루가 모여 있고, 대강당에서 동문으로 가는 길에 가로수처럼 쭉 늘어서 있다. 다른 곳에는 한두 그루씩만 있는 것 같다. 아마 학교에 매화가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도 꽤 많을 것 같다. 매화는 벚꽃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살구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 매화, 살구꽃, 벚꽃은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벚꽃은 꽃대가 있어서 그나마 구분하기 쉽지만, 매화와 살구꽃은 둘 다 꽃대가 없다. 꽃받침 생긴 모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은 멀리서 보면 똑같다는 뜻이다. (중앙기계동 옆에 벚나무와 매화나무가 함께 있고, N4와 N5 사이에 있는 CC 동산에 벚나무와 살구나무가 있으니, 차이를 비교해보고 싶으면 가보자)

살구나무는 그나마 나무 생긴 모양이 조금 다르다. CC 동산에는 어느 정도 큰 살구나무 5그루가 줄을 서 있는데, 굵은 기둥이 있고 가지들이 한꺼번에 뻗어 나오는 모습이 가지가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나뉘는 벚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이것도 나무마다 다르지만, 일단 학교에 있는 살구나무는 이렇다) 색도 벚나무보다 좀 더 거무튀튀하다. 그런데 매화나무는 나무 모양으로 구분하기도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서 그것으로 구분하면 된다. 매화는 보통 3월 초·중순부터 피기 시작하고, 살구꽃이 그것보다 1주일 정도 늦게 피고, 벚꽃은 그보다 1~2주 정도 늦게 핀다. 그런데 가끔 애매한 나무들도 있다. 예를 들면 정문술 빌딩 옆 경사로에 있는 벚나무들은 매화라고 하기엔 너무 늦게 피고, 벚나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찍 핀다.

그림1. 살구꽃과 살구 열매

목련도 매화나 살구와 비슷한 시기에 개화한다. 조금 다른 점은 목련은 꽃봉오리가 커서 피기 전부터 뭔가 기대감을 준다. 이제 봄이 오는구나, 하는 느낌을 준달까? 목련은 역시 어은동산 아래 목련 동산이 제일 볼 만하다. 여긴 낮에도 예쁘지만 흰 LED 가로등이 빛을 발하는 밤에 보는 게 더 좋다. 흰 목련잎이 흰빛을 받아서 빛나는데, 가까이서도 예쁘고 멀리서 봐도 예쁘다. (학교 조명이 노란 가로등이었을 때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목련 동산 말고도 목련은 캠퍼스 여기저기 있지만 내가 익숙한 곳은 인문사회과학동과 산업디자인학과동 사이, 상에 동산에 있는 백목련과 자목련이다. 목련 동산은 많은 백목련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점이, 상에 동산에서는 자목련과 백목련을 같이 볼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카이스트의 벚나무는 꽃이 피는 기간에 수많은 대전시민이 캠퍼스를 찾을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한다. 벚꽃이 멋진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산업디자인학과동에서 아름관 앞까지 난 길은 길이가 상당해서 꽤 걸어도 계속 벚꽃이 나와서 예쁘고, 또 나무 크기도 제법 커서 꽃잎이 휘날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동문창업관에서 유레카관으로 가는 내리막길도 마찬가지 느낌인데, 여기는 좀 더 트인 공간이라 바람이 잘 불어서 그런지 꽃잎이 더 예쁘게 날린다. 기계동에서 노천극장을 거쳐 어은동산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방문객이 많은 캠퍼스에서 그나마 한산한 장소이다. 여기는 벚나무들이 좀 더 오래되어서 나무가 다른 곳보다 더 크고, 오르막이라 다니기 쉽지는 않지만 그만큼 더 천천히 걸을 수 있어서 여유롭게 걷기 좋다. 벚나무 말고 다른 나무들도 많아서 봄 특유의 연두색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림2. 아름관 앞의 벚나무

그림3. 인문사회과학동 뒤의 벚꽃

 벚나무 하면 그냥 일반적인(?) 나무 모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수양벚나무라고 해서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위에서 유려하게 떨어지는 종류의 벚나무도 있다. 나는 오리연못 어은동산 쪽 방향에 있는 수양벚나무를 학교에서 두 번째로 좋아한다. 학부 1학년 때부터 이 벚나무가 핀 모습을 보고 매우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양버드나무가 학교에 그렇게 많지는 않다. 어은동산에 몇 그루 있고, 학부 운동장 앞에 두어 그루 있다. 내가 또 좋아하는 벚나무는 인문사회과학동 뒤편 넓은 공터 가운데에 3m 조금 안 되는 작은 벚나무이다. 몇 년 전까지는 작은 크기에 꽃이 빽빽하게 피어서 정말 예뻤는데, 최근에는 가지가 자라나면서 성긴 부분이 생겨서 예전 같은 모습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벚꽃이 질 때쯤 되면 철쭉이 올라온다. 철쭉은 오리연못 쪽 어은동산에 크게 한 군집이 있다. 철쭉이 빽빽하게 피어서 그 위용이 대단했는데 아쉽게도 최근 몇 년 동안 가지를 많이 걷어내서 예전 같은 모습은 사라졌다. 무성한 가지 아래에서 숨고 나오는 고양이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도 보기가 어려워졌다. 동문으로 들어와서 바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도 한 군집이 있었는데 아예 밀어버리고 다른 나무로 대체된 모양이라 많이 아쉽다. 예전에는 동문으로 들어오면 철쭉이 활짝 피어있어서 반겨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좀 심심하다. 철쭉이 질 때쯤이면 꽤 덥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이제 봄이 지난 것이다.

7월 부터는 배롱나무꽃이 핀다. 배롱나무꽃은 100일 동안 피어서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한해살이풀 백일홍이랑 이름이 같아서 헷갈리지만, 아무튼 이 식물은 나무다. 배롱나무는 학교 여기저기에 있다. 본관이랑 중앙도서관 근처에도 몇 그루 있고, 산업디자인학과동 앞에도 몇 그루 있다. 산수유처럼 배롱나무도 나이가 들수록 장관이다. 특히 수평으로 가지가 뻗어 나가는데, 오래된 배롱나무들은 신기할 만큼 이 수평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게 멋지다. (물론 이것도 나무마다 달라서 아닌 배롱나무들도 많다) 학교에 있는 배롱나무들은 수령이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그래도 가지가 다른 나무들보다 색이 밝고 매끈해서 확실히 눈에 띈다. 꽃이 쨍한 분홍색이라 짙어지는 여름의 녹색과 잘 대비되어서 더 그렇다. 한 친구는 오죽헌에서 600년 된 배롱나무를 보고 와서 학교에는 왜 배롱나무가 없냐고 했지만 여러 군데에 잘 있었다. 건물 앞에 있다고 알려줘도 그 친구는 한사코 배롱나무는 이렇지 않다며 그 존재를 부정했지만, 내 눈에는 학교 배롱나무들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림 4. 상애동산의 배롱나무. 조금 늦게 꽃이 피기 시작했다.

지금 학교에는 배롱나무 말고는 여름에 눈에 띄는 꽃이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창의관에서 대강당 올라가는 산길 초입에 달맞이꽃이 빽빽했다. 봄까지는 모습을 숨기다가 늦봄부터 굉장히 빠르게 자라서 초여름이 되면 꽃을 피우는데 그 모양이 참 예뻤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계속 달맞이꽃을 없애버렸다. 2~3년 정도는 그냥 베어서 없앴던 것 같은데 그래도 다음 해가 되면 어김없이 자라나니까 땅을 갈아엎고 다른 식물을 심어서 달맞이꽃밭을 아예 없애버렸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렇게 많은 달맞이꽃을 볼 기회가 흔치 않아서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가을에는 꽃보다는 단풍이 든다. 카이스트가 단풍이 장관인 캠퍼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나름 괜찮은 단풍나무들이 있다. 내가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바로 인문사회과학동 뒤에 있는 작은 단풍나무이다. 아까 위에서 빽빽하게 피어서 예쁘다고 했던 벚나무와 이 단풍나무가 같이 있는데, 그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린다. 학부 때는 CC 동산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몰랐다가 인문사회과학동에 있는 대학원에 가게 되면서 이 나무들을 처음 봤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벚나무가 더 크긴 한데 뭔가 가지 뻗은 모습이 비슷해서 같이 있는 모습이 은근히 자연스럽고, 특히 단풍나무가 크기는 작은데 가지보다 기둥이 두꺼워서 굉장히 탄탄하고 굳건히 서 있는 느낌을 준다. 잎이 풍성한 편은 아닌데 가을에 단풍이 들면 오히려 그런 모습이 굵은 기둥과 대비되어서 마치 바위에 작은 풀이 나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여러모로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단풍과는 다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상이 내가 지난 11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보아왔던 캠퍼스와 식물들의 모습이다. 11년, 적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달맞이꽃이 피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조그맣던 벚나무는 어느새 키를 키웠다. 누군가는 지겹겠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 학교를 떠나고 이 글을 쓰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캠퍼스에 있는 나무와 꽃들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서 한순간도 같지 않았음을, 시간과 계절에 따라서 변하면서 나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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