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영재고 여학생의 증언

카이스트 새내기과정학부
이윤지
eyz@kaist.ac.kr

교육열의 동네 목동은 나의 고향이다. 거의 기억이 시작될 무렵부터 목동에 살았으니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다. 종종 목동에 들러서 다녔던 중학교부터 천천히 가로수길을 따라가다가 파리공원을 한 바퀴 돌고 교보문고까지 걸으면 어디에든 즐비한 학원과 식당들, 그리고 가방 메고 바닥 보며 걷는 학생들이 기괴한 동시에 묘하게 익숙해서 편안하다.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똑똑하다는 칭찬을 기다리는 데에 전부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동에서 듣는 ‘똑똑하다’는 말은 어딘가 날카로운 동시에 몹시 쾌감을 준다. 나는 이 말을 꽤 자주 듣는 축에 속했다. 타고난 능력도 일부 있겠다만 공부하기 아주 편한 환경에서 자라난 덕이 크다. 부모님의 지원도 적극적이었고 학교와 학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다. 목동 같은 곳에서 똑똑하다는 이미지를 가지는 건 정말 편하고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대부분의 과목을 평균 이상으로 잘했지만 그 중에서 수/과학을 가장 좋아했다. 학문적인 매력보다는 과학이 가진 이미지를 선망했다. 국어나 영어를 잘하는 사람보다 수학이나 물리를 잘하는 사람이 더 첨예한 사고 능력을 갖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더불어 여학생이 수학을 잘하면 반전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월함으로 고정관념을 깬다’고 생각하며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

목동에서 수/과학 학원을 다니면서 남학생이 더 많다는 걸 인지하게 된 건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같이 학원에 다니다가 외고나 자사고를 준비하러 학원을 옮기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 갔다. 그러나 그저 알아두기만 했을 뿐 굳이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되려 조금은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학생으로서 정체성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에 간 후의 이야기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나는 영재고 입시 전문 학원에 다녔는데, 이때부터의 기억을 훑어보고자 한다. 여학생으로서 느꼈던 점들을 말하려 노력했지만 관련 없는 부분도 있다. 따라서 일부는 지루할 수도 있고, 일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모든 부분에 모두가 공감하기를 바라면서 쓴 글은 아니니 저예산 인디 영화를 볼 때처럼,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부분은 과감히 넘기면서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미지 제목: 

(이미지를 조금 잘랐습니다.)

과학영재고 지원하기

5월 무렵 서류전형 시즌이 되면 학원의 학생들은 지원할 학교를 결정하기 시작한다. 어디에 가고 싶은지 확고한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공부한 게 아까워서 붙을 만한 학교를 고른다. 이 정도 성적이면 여기는 가겠다 싶은 곳에 지원한다. 남학생들은 그랬다. 이때 여학생들만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일부 영재고는 여학생을 거의 안 뽑았다. 어떤 학교는 한 학년에 여학생이 3명 뽑힌 적도 있었다는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점차 느는 추세라 하지만 현재에도 여학생이 전체 중 1/4을 넘는 학교는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뿐이다(새로 생긴 과학’예술’영재학교에 여학생이 많이 지원하는 이유도 생각해볼 만하다). 아무리 잘해도 나를 뽑지 않을 학교는 선택지로 여길 수 없었다.

 내가 지원한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여자 비율이 꽤 높은 학교였다. 한 학년에 한국인 여학생이 못해도 12명은 되었다. 국제 학생까지 합하면 보통 20명은 넘었다. 물론 단체에 여자가 적다는 것의 의미를 중학생 시절에는 몰랐기 때문에 이것이 내 선택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여학생들보다 잘하면 뽑힌다(이제 와서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틀린 말이지만)고 믿었다. 게다가 이 학교는 성비를 빼고 봐도 한국 첫 영재고라는 유일성과 자유로운 분위기, 우수한 교육 환경 덕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당시 나는 오히려 사회적 여성성이 열등하다고 믿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종의 기쁨도 느꼈다. 남자가 많은 곳으로 가는 게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걔도 페미야?”

 입학 후 설렘 가득하던 2018년 한국은 마침 20대~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된 지 2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인터넷 어디를 가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종종 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동기 여학생 중 절반 정도 이 단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단어를 들어봤을 뿐 그 주제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SNS에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 말 중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고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 정도가 전부였다.

 당시 페이스북에는 ‘대나무숲’이라는 익명 게시판이 유행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들을 위한 ‘KSA 대나무숲’ 게시판도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대나무숲처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익명으로라도 속 시원하게 하라는 뜻에서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었겠지만, 의도와는 달리 총인원 400명 안팎 소박한 단체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대나무숲’에 익명이 보장되기란 사실상 어려웠고, 민감한 주제가 업로드되기도 쉬웠다. 나는 페이스북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세한 정황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나는 점은 이 ‘대나무숲’을 둘러싼 다툼이 너무 가열되어 게시판이 사라져 버리기 전까지 이곳에는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글과 공격적인 댓글이 하루에 적어도 몇 개씩 달렸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은 자주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물론 생산적인 논의는 아니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법한 인신공격이 대부분이었다.

기억나는 게시글 중 하나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숨어있지도 않은 대대적인 페미니스트 여러분/페미니스트는 평등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닌 여성 우월을 추구하는 단체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불법 촬영 규탄 시위가 어째서 몰상식한 행위인지, 여성이 어째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강자인지를 설명하고, 남성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은 성차별이기 때문에 여성 징병이나 국방세 납부를 해야 하며, 지능이 높아서 영재고에 왔으면서 페미니즘을 하는 건 멍청한 짓임을 주장하는 글이었다. 댓글에는 근거 없이 페미니스트를 비꼬는 말이 달렸고 실명으로 달리는 경우도 많았다. 실명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다. 익명 댓글 기능도 우리 학교 남학생이 익명으로 대신 올려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사용하기를 꺼렸다. 몇 선배들이 페이스북 부계정을 만들어 댓글을 달기도 했지만 그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드는 일이었고 과도한 공격도 많이 받았다. 

비단 SNS에서의 일은 아니었다. 남학생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것 같은 여자애들이 누구인지 늘 궁금해했다. 끊임없이 수군거렸고 낙인을 찍었다. 나의 경우 1학년 국어 시간에 성차별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글을 썼고 그 사실을 우연히 알아낸 남학생이 ‘걔도 그런 애다’ 식의 소문을 퍼뜨렸던 기억이 난다. 그걸 남자 기숙사에서 엿들은 친구는 걱정이 된다는 듯 ‘네 이야기가 들렸는데 앞으로는 아이들이 네 행동을 좀 더 볼 테니 직접적인 단어 언급을 자제해 보라’는 조언을 했다. 구체적으로 뭘 자제해야 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알겠다고 했다. 아직 동기들과 친해지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누가 누가 알게 되었을 지 불안했다. 웬만한 애들은 다 알겠지 싶어서 무서운 날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빨리 싫어할 수 있지는 않을 것 같아서 안심하는 날도 있었다. 중학생 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많고 인간관계에 자신이 있는 편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떤 글을 썼다는 이유 하나로 낙인을 찍는 사회에서 살면서 그런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건 너무 어려웠다. 

머리를 잘라도 될까

‘탈코르셋’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던 2019년 무렵 학교에 머리 자르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한두 명이 짧은 머리로 학교에 나타났을 때 여학생들은 분명 영향을 받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탈코르셋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가진 친구도 있었겠지만 나는 숏컷이 누구에게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무슨 소리를 들을 줄 모르니 겁이 났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나게 되고 이 단백질 터럭이 고작 몇 센티미터 짧아지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남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았다. 2학년쯤 되니 서로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도 꽤 강해졌지만 여전히 그런 행동을 하려면 용기가 일정량 필요했다. 고민 끝에 숏컷으로 머리를 잘랐던 계기는 의외로 내가 양성애적 성적 지향성을 깨달은 것과 관련 있었다. 2학년 여름방학에 내가 여자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후로 몇 개월간 ‘퀴어(성소수자)’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관련 문화를 찾아보고 학교 밖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를 생각하니 내 머리 하나 짧아지는 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주변에 다정하고 강한 친구를 많이 둔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이 친구들만 주변에 있으면 밖에서 무슨 소리를 듣든 대충 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용실에 가서 상고머리를 했다. 확실히 별일 없었다. 친구는 한 명도 사라지지 않았고 입시는 여전히 힘들었으며 주변에서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잘랐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많은 일을 거치고 난 후 마음속에서 괜찮아졌다고 받아들였을 때 마침내 머리를 자른 게 아닌가 싶다. 

페미니즘을 가르쳐 주세요

이런 문화에 대한 선생님들의 이해도는 전반적으로 낮았다. 특히 자연과학부 선생님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전공 분야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문학부라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일부 인문학부 여자 선생님들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거나 수업 주제에 페미니즘을 가져오는 등 실제로 변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이 수업을 집중해서 들어야 할 학생들은 여자 선생님이 가르치는 인문학 과목에 에너지를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선생님들은 분위기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했다 해도 교육 방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인문학부 소속 남자 선생님 중 유독 페미니즘에 대한 학문적 이해도가 높았던 선생님이 있었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과학기술과 사회’, 총 두 개의 과목을 담당했는데, 각각 과학사/과학철학과 과학기술사회학을 얕게 다루는 과목이었다. 특이하게도 두 수업 모두 학생들이 책 한 권을 읽고 서로 대화하는 토론 수업이다. 선생님의 역할은 중간중간 토론의 방향을 잡아주거나 참고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정도다. 수강생 전원이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만큼 모든 주제에 관해 한 번씩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토론 주제에는 ‘과학기술과 여성’이 반드시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 수업은 선생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많은 남학생에게 페미니즘 입문 강의가 되었다(슬픈 여담인데 아마도 이 선생님이 고학력 중년 남성이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학문적 가치를 인정하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많았다). 수강 시스템상 필수이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이 수업을 꼭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 안티-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학생조차 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두 수업 중에서 더욱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수업은 ‘과학기술과 사회’였다. ‘과학의 역사와 철학’ 수업에서 과학이 사회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화했는지 살폈다면, ‘과학기술과 사회’에서는 가까운 과거와 현재 과학기술계의 모습에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만큼 과학기술계 속 차별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기술과 여성을 비롯하여 연구노동자 인권, 과학기술계 윤리, 과학기술정책 등에 관해 매주 토론했다. 고등학생들이 책에서 읽은 내용 하나에 의존해 의미 있는 논의를 펼치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에 관한 자신의 의견에 근거를 들어서 말하는 경험 자체가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줬다. 가령 나는 과학적 올바름을 위해 과학계에 다양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기술의 개발이 언뜻 보기에는 가치 중립적인 것 같아도 사실은 극도로 정치적인 행위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 밖에도 여성 할당제 등 구체적인 정책들에 관해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언젠가는 이 두 수업이 필수 과목이 되기를 바란다. 

호명되지 않는 똑똑한 여학생들

수업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영재고 여학생으로서 경쟁하는 경험에 관해 이야기해보겠다. 미리 언급해둬야 할 점이 있는데, 여성의 성취에 관해 잘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 당사자여야 하고, 의식적으로 성취를 좇은 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첫 번째 기준만 만족한다. 고등학교에서 나는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주변에는 시험을 본다 치면 교과서 문제 n회독은 물론이고 족보에 기출문제 답지까지 어디선가 찾아내서 원하는 성적을 받아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그럴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늘 궁금했다. 물론 내가 의지를 잃은 근본적인 원인을 구조적 문제에서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일단 제쳐두고, 높은 의지와 성취도를 가진 여학생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뛰어난 여성의 이야기는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부분은 아마 직접 경험한 일보다는 친구에게 듣거나 주변에서 관찰한 일들로 이뤄질 예정이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수/과학을 못한다는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입 밖으로 내는 걸 본 적은 없다. ‘요즘은 그놈의 페미니즘 때문에 뭔 말만 하면 욕먹는다’는 인식도 있었거니와, 객관적으로 뛰어난 여학생이 많기도 했다. 물론 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스멀스멀 드러나는 면이 많았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제일 잘 하는 애’ 목록에는 절대 여학생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명시적인 리스트는 아니지만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과목별 ‘잘하는 애들’이 정해져 있었다. 실제 성적과는 별개였다. 보통 소문이나 추상적인 이미지로 결정되는 거였다. ‘수학 모르는 거 있으면 OO이한테 한 번 물어봐’ ‘그런 올림피아드는 OOO 같은 애들이나 나가는 대회 아냐?’ 같은 말이 오갔다. 물론 그 목록 속 애들은 실제로 우수했다. 관심도 많았고 공부도 많이 했고 해당 과목 선생님과 친했다. 하지만 잘하고 관심이 많다고 해서 아이들이 무조건 알아주는 건 아니었다. 특히 잘하는 아이가 여학생이라면 더 쉽게 배제됐다.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탁월하고 성취도 뛰어난 여학생을 수없이 봤지만 절대 다른 남학생의 입에서 ‘솔직히 걔는 그 과목 진짜 잘하지’라는 말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학생들은 늘 실력과 비교해 자신이 없었다. 허세를 부리는 여학생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늘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실력에 알맞은 인정을 갈구하지 못했다. 반대로 남학생의 성적 부풀리기나 능력 자랑을 본 경험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대학 원서를 쓰면서 TO를 가늠할 때도 여학생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서울대는 매년 학과별 뽑는 학생의 수가 비슷해서 우리 학교에서 누가 이 과를 쓰는지 잘 살펴야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여학생들은 마치 대학에 지원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배제됐다. 그 학생이 전교 5등 안에 드는 수재라도 소용없었다. 특히 수학, 물리, 공학, 정보는 유난히 철저했다. 수학 문제 동아리나 공학동아리에 가면 여자는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남학생과 끊임없이 교류하지 않으면 뭔가를 해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 결국 자기가 공부 열심히 해서 성적만 잘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여러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말이다. 아무리 영재학교라 해도 고등학생 때 전문적인 지식을 깊게 공부할 수는 없다. 과목별로 조금씩 맛을 보며 내가 이 분야를 좋아하는지, 계속 공부해도 될지 가늠하는 시기다. 따라서 마음가짐이 중요한 시기다. 청소년기에는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에 민감하다. 그러니까 누가 누가 잘하고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듣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리고 심리적인 영향뿐 아니라 실질적 기회 제공에도 소문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회를 나갈 때나 조별 활동을 할 때도 같이 나갈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떠도는 말들에 일정 부분 의존한다. 학생 사이 인지도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기회도 많아진다.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원래도 그다지 성실한 축에 들지는 못했으나 고등학교에 와서 유독 더 성취도가 떨어졌던 이유가 뭘까? 3년간 스스로 공부하는 경험을 하면서 느낀 점은 정보를 아는 만큼 기회가 보인다는 것이다. 원하는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무얼 얼마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나는 거의 몰랐다. 핑계로 들릴 수 있지만 교내 주류 그룹에서의 배제가 여기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여학생 커뮤니티에서도 그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분명 사실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실천하고 부족한 부분은 노력으로 자급자족한 탁월한 여성 친구들도 수없이 만났다. 그러나 나 정도의 박약한 의지를 가진 남학생이 비슷한 정도의 사회성을 가졌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를 추측해 보면 내 성취가 낮았던 게 단지 내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학영재학교 확장판, 카이스트

카이스트 합격증을 받았을 때 분명 기뻤지만 설레는 기분은 느낄 수 없었던 것도 아마 3년간 남초 – 이공계 – 고학벌 집단에 질려버렸기 때문일 듯하다. 가까운 여자 선배들이 ‘카이스트는 한과영 확장판이야’라며 종종 한탄한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다. 성비가 그나마 고등학교 때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학생이 배제되지 않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몇몇은 차라리 재수해서 종합대에 갈 걸 그랬다는 말도 농담처럼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러지는 못했다. 그런 사람도 드물게 있었으나, 광적인 대학교 입시를 거친 대부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카이스트 합격증은 아주 소중하다. 카이스트에서 제공하는 우수한 연구/교육 환경과 저렴한 학비, 장학금(그리고 좋은 학벌)을 마냥 포기할 만큼의 대담함은 가지기 어렵다. 배고픈 사람에게 아주 맛있는 패스트푸드를 줬을 때 먹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안 좋은 점을 뻔히 알고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카이스트에서 지낸 시간이 1년이 채 안 되므로 그 무엇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문화가 여기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입학 시기와 겹쳐서 아직 모르는 면이 많다고는 해도, 대나무숲과 같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드러나는 생각들을 보면 고등학교 때 거쳤던 일들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다. 다행히 대학교에는 사람의 수 자체가 많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오히려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둔 채로 잘 살아갈 수 있어서 비교적 편안하다. 하지만 종종 주류 문화에 쉽게 녹아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는 전공을 선택했다. 우선은 가장 관심 있는 산업디자인학과로 등록을 마쳤다.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여자여서 논리적 사고가 부족하니까 자연과학이랑 먼 과를 선택하는 거 아니냐’는, 아무도 내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왜인지 자꾸만 떠오르는 머릿속의 말을 반복적으로 반박해야 했다. 여자가 자연과학을 못 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은 논리적 사고만으로 하는 게 아니며, 논리적 사고를 잘한다고 해서 똑똑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곱씹으면서.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중요한 결정과, 그때마다 나를 새로운 방식으로 가로막을 편견들을 떠올리면서.

누구에게라도 닿길 바라며

‘과학기술과 여성’을 주제로 글을 써 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받았을 때 걱정이 앞섰다. 영재고에서 카이스트에 온 여학생인 건 맞지만 내 경험이 뭐라고 이걸 나눌까 싶었다. 재미는 둘째치고 어느 정도 과학기술계 여성을 대변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주변 여성 친구들과도 다른 면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이게 누구에게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직접 겪은 것을 바탕으로 여성 차별을 이야기하다 보면 회의감이 많이 든다. 사실 여성이라서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여성 중에서도 나만 이런 일을 겪었던 건 아닌지, 모르는 곳에서 예외가 있는 건 아닐지, 너무 성급하게 해석해버린 건 아닌지 반추하게 된다.

 2021년 출간된 인터뷰집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에는 이 시대 여성들이 사랑하는 10명의 여성을 만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황소윤도 인터뷰이로 참여했다. 그가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대답이 좋다. 늘 머릿속 한구석에서 울린다.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물론 저는 여성 팬들이 많고, 그중에서도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하고 싶은 건 비단 여성으로서의 것만은 아니에요. 제 존재가 여성이고, 황소윤이 보여주는 것들이 곧 여성이 하는 일인 거예요. (…) 저는 존재이고 싶거든요. 의미부여를 해서 여자가 이런 일을 했다라고 크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 저는 누군가를 대변하는 가사는 쓰지 않아요. 내가 느끼고 살아가는 바에 대하 가사를 써요. 다만 저의 말이 곧 여성의 말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우리는 모두 최선을 다해 삶을 살기 때문에 한 가지 정체성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여성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만 또 가끔은 과학기술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 자신의 퀴어성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어떤 집단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나와 완전히 동일한 환경에 놓인 사람은 없으니까. 다시 말해 과학기술을 공부하는 모든 여성의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과학기술계 여성은 ~하다’는 문장을 성립시킬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유형화는 중요치 않다. 오직 몇 명의 여성이라도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그 경험은 여성이라서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이든 연대감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과학영재고 여학생의 증언”에 대한 답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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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저와 비슷한 경험이 들어있을 것 같아 쭉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퀴어이자, 페미니스트이자, 좋은 학교에서 자연과학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글쓴이 분께서 쓰신 일들이 멀게 느껴지지가 않네요. 제가 좋아하는 공부이기에 계속 할테지만 그 집단, 남초집단이자 대부분 출신이 비슷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확연히 다른 정체성으로 살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무력감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고,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 대한민국에서 이공계열 여성이 위치한 환경, 그 속에서 저는 동료 여성들과, 또 친구들과 함께하며 서로의 존재를 알고 또 그 속에서 나의 존재도 의심하지 않고 나아갔던 것 같아요. 글쓴이 분도, 아직 대학에서 경험하고 얻을게 정말 많으실텐데 하나도 아끼지 않고 누리며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응원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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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얼굴 모르는 후배님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크사 0n학번인데 아직 이 학교는 바뀐 게 없네요. ㄱㅈㅇ선생님은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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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파란 플랫폼을 통해 보고 왔습니다 용기 내서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과영은 아니지만 세곽을 나와 같은 루트를 겪은 여학우라 공감할 수밖에 없는 글이었습니다 나중에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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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녕하세요. 영재고 졸업하고 카이스트 다니고 있는 한 명의 새내기입니다.
    저도 남초 사회의 그 미묘한 분위기… 그게 싫었습니다. 남초의 그게 싫다, 이야기 해보았자 여학생들만 동의할 뿐 웬만한 친한 남학생들은 공감하지 못하더라고요.
    여자 수가 적어서 동아리 지원하면 무조건 뽑아준다고는 하지만 정작 동아리 임원은 역대 한번도 여자가 된적이 없는 것도, 반에서 성차별 이야기를 하면 남기숙사에서 죽어라 뒷담까이고 앞에서도 공격받는데 일베/디씨 이야기는 오히려 환호 받는 것도, 남학생이 한 성희롱성 발언을 참아주는 것도 그걸 또 고발하면 학교 내 남학생들에게 또 뒷담 당할까봐 고발조차 못하는 것도 싫었어요.
    카이스트에 와서 그래도 대학은 다르겠지 했는데 에타랑 보면 여전히 똑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이름을 밝히셔서 깜짝 놀랐어요. 영재고나 카이 커뮤니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것도 실명으로.

    처음 보았을 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동안 너무 답답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정말… 용기내주셔서 감사하단 말 밖에 못드리겠어요. 덕분에 더 버틸 용기가 났어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이름은 못 밝히지만, 항상 응원합니다.

    말이 조금 두서없었죠? 글 보고 감동먹어서 그래요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요! 나중에 학교에서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갰네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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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원입니다. 학교의 구성원 다수가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담론에 관심이 없다는 글쓴이님의 지적이 매우 뼈아픕니다. 용기 내어 발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여성이나 다양한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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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기고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디자인에는 논리적인 프로세스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득력 없는 디자인이 되거든요.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죠. 모쪼록 학우님의 행복한 캠퍼스 생활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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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여성이라고 잘한다고 여겨지는 학생들 명단에 없다는 건 전혀 신빙성 없는 주장으로 생각됩니다. 오히려 글쓴이께서 이를 직접 증명해주시고 계시군요. 서울과학고 재학생이라 한과영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남녀 성비가 4:1이라고 대충 가정해봅시다. 수과학 분야 다 합쳐도 6과목(수물화생지정)입니다. 이 중에서 여성이 안 속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인가요? 그 기수의 남녀 성비로 봤을 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싶다 생각됩니다. 저희 학교도 남녀 성비가 10:1 가까이 되는데 특정 과목에서 “잘한다” 할 수 있는 학생 중 여자가 있습니다. 이번에 국대 후보까지 된 걸로 알고 있고요. 영재학교에서 여자를 배척한다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반쯤 과장해서 말하자면 오히려 애들이 여자를 찾는 입장이고, 선생님들도 별 대수롭지 않게 똑같이 대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성희롱 관련 건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가 대다수인 집단이다보니 성 관련 문제에는 둔감한 것이 사실이며, 이에 대해서는 저도 문제가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교육, 상담, 징계 등을 통해 엄격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본 글과는 무관하니 말은 줄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자를 배제한다는 입장은 타당하지 않다 봅니다. 오히려 자신의 선입견이 그릇된 판단을 야기한 것이 아닌 지에 대해 잠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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