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화학 실험, 이젠 더 나아가 시뮬레이션으로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박사과정

박안성

anseong@snu.ac.kr

어느 과학 분야나 그러하였듯이, 과학의 발전은 실험 과정을 관찰하며 결과물을 분석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왔다. 물질 자체의 특성을 정립하는 것이 하나의 발견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시대가 흐를수록 소위 ‘발견’이라고 불릴 만한 업적은 더 난해하고 복잡해져 왔다. 그리고 현재는 새로운 물질의 개발, 혹은 색다른 조합을 통한 물성의 향상만으로는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불리기 힘들어진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화학반응 자체를 직접 관찰하여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기법이다. 2010년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화학 시뮬레이션 분야는 사실 1900년대 중후반에 이미 창안된 개념이다. 시뮬레이션을 진행함에 있어 단순히 뉴턴역학을 반복하여 계산하면 되었지만, 해당 시기에는 시뮬레이션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이론들만 존재했을 뿐, 이를 실제로 실험할 수 있는 GPU는커녕 제대로 된 컴퓨터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 물리학자들이 여러가지 이론들을 제시하지만, 이를 검증할 실험장비가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현대에 들어서 CPU, GPU 그리고 각종 컴퓨터 부품들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화학 시뮬레이션 분야가 더욱 많이 연구되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사건 때문에 GPU 가격이 올라서 매우 슬펐다. 비유하자면 실험 자재와 시약들의 가격이 갑자기 2배 이상 뛰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글에서는, 화학 시뮬레이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적용 분야, 그리고 전망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

우린 상대적인 속도에 따라, 서로가 인지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평상시에, 예를 들어 투수가 야구공을 던질 때, 혹은 자동차 경주에서 차량의 속도를 측정할 때 상대성이론 방정식을 대입하여 구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이는, 우리가 평상시 생활하면서 경험하는 범위에서는 뉴턴역학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물론 더 정확한 값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결과값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적용하여 수식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화학 시뮬레이션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을 하려는 대상이 mm, μm, nm, 혹은 Å 단위인지에 따라 그 엄밀성이 달라지고, 적용되는 수식이 달라진다.

-Å 단위: Density Functional Theory (DFT) 시뮬레이션-

우선 Å 단위의 화학 시뮬레이션은 ‘DFT 시뮬레이션’이라 부른다. 전자를 고려한 양자역학적 계산을 통해 촉매의 반응 에너지, 반응할 때 분자들의 방향, 산화 환원 에너지, 그리고 안정한 분자구조 형태 파악 등 최대한 정확한 계산 값을 도출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해당 분야에서 진행하는 양자역학적 계산은 참값이 존재하는 결과값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어떠한 값을 반복계산을 통해 수렴 값을 구하는 계산이다 (존재 여부는 일반상식을 통해 사전에 추론이 가능하긴 하다). 요약하자면, DFT 시뮬레이션은 Å 범위의 시스템을 femto sec ~ pico sec 시간동안 관측하는 분석 기법이다.

<그림 1> 대략적인 DFT 시뮬레이션 시스템 크기

-nm 단위: MD 시뮬레이션-

계산이 많이 필요한 전자를 모두 없앤 다음, 마치 공으로 표현한 원자들을 뉴턴역학을 통해 시뮬레이션 하는 기법을 Molecular Dynamics (MD) 시뮬레이션이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MD 시뮬레이션은 앞선 DFT 시뮬레이션에서 얻은 안정적인 분자 구조, 반데르발스 힘, 결합 각, 결합 길이 등 여러 결과값을 사용한다. MD 시뮬레이션에서 분자들은 속도를 가지고 다른 분자들과 충돌하며 움직이게 되고, 이를 통해 동적 물성과 구조적 성질을 파악할 수 있다. DFT 시뮬레이션과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DFT 시뮬레이션은 실시간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반면, MD 시뮬레이션은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 분석하게 된다. 분석 가능한 물성들로는 diffusion coefficient, conductivity, viscosity, solubility parameter, structure factor, 그리고 미시 구조 파악이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DFT 시뮬레이션보다는 부정확하지만, nm 범위의 시스템을 nano sec ~ micro sec 시간 동안 관측하여 동적 물성을 분석하는 기법이다.

<그림2> 대략적인 MD 시뮬레이션 시스템 크기

-mm 단위 이상: 화학공정 시뮬레이션 & continuum Model

해당 분야는 본인이 전공으로 하지 않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회분반응기 (Batch Reactor), 연속교반탱크반응기 (CSTR), 관형반응기 (Tubular Reactor) 및 여러 반응기들과 장치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안정적이며 최고의 수율을 얻어낼 수 있는 공장을 설계하는 것에 관련이 있다. 따라서 분자의 모양이나 자세한 상호작용은 무시하고, 유체역학과 반응기간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게 된다.

본론

본인은 MD 시뮬레이션을 전공으로 박사학위 재학중에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대해 더 포괄적인 소개를 하고자 한다. 설명의 순서는 DFT 시뮬레이션, MD 시뮬레이션, 분극 MD 시뮬레이션, ReaxFF 시뮬레이션, AIMD, 그리고 coarse-grain 순으로 진행하려 한다.

공대 계열에서 돈이 (혹은 지원금이 많은) 되는 분야는 개발자, 특허, 혹은 의료계와의 협업일 것이다. 의료계에서 필요로 하는 계산은 주로 활성화 에너지, 정확한 protein folding, 그리고 reaction pathway 등과 같고 이를 분석하는 기법으로는 DFT 시뮬레이션이 적합하다. 따라서 DFT 시뮬레이션은 의료계 쪽으로도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고, 최근 코로나 백신 개발에 시뮬레이션 기법을 통한 작용기 구조 해석이 이루어졌다. MD 시뮬레이션도 큰 시스템을 다루기 어려웠던 DFT 분석의 한계점을 뛰어넘고자 단백질 모델링에서부터 (protein folding) 시작되었지만, 정확한 에너지 값을 구할 때에는 MD 시뮬레이션 보다 정확한 결과값을 도출할 수 있는 DFT 분석이 적합했다. 요약하자면 DFT 시뮬레이션은 protein folding, 촉매 활성화 에너지, 촉매 표면에 따른 반응성, 활성화 부위 및 구조 파악과 같은 분석에 적합한 분석에 사용된다.

동적 물성과 시스템 전체적 구조분석을 목표로 하는 MD 시뮬레이션은 고분자, 물, 유기용매, 그리고 이온 등 여러 종류의 분자들로 분석 대상을 확장하였다. 이를 통해 실험실에서 유추하던 현상에 대한 원인을 nm 단위에서 분자들이 이루고 있는 구조체의 형태와 동적 물성을 직접 관측함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해석을 가능케 했다.

MD 시뮬레이션에서 계산하는 힘은 크게 두 가지, 반데르발스 힘과 정전기적 힘이다. 정전기적 힘의 경우, 유기물질을 시뮬레이션 할 때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대상이 전하를 띄는 분자들의 비율이 높을 경우 (이온성 액체), 정전기적 힘을 너무 과도하게 크게 계산하여 실제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부정확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낳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계산상의 기법들과 분극 MD 시뮬레이션이 등장하였다. 분극 MD 시뮬레이션은 기존 MD 시뮬레이션에 원자들의 분극 현상과 관련된 수식을 추가한 방법으로, 이를 통해 소위 ‘딱딱’하던 분자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실제 현상과 더 부합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현재에는 분극 MD 시뮬레이션을 통해 리튬-이온 배터리 시뮬레이션 분야가 이론 분석에 있어 크게 발전되고 있다 (사실 본인이 해당 분야에 전공을 두고 있는 건 비밀이다). 하지만, 기존 MD 시뮬레이션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10배 이상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DFT 계산보다는 훨씬 빠르다).

분극 MD 시뮬레이션도 MD 시뮬레이션과 마찬가지로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뮬레이션 쪽 대가가 반응이 일어나는, 그리고 그 반응을 정확히 모사할 수 있는 새로운 유료 MD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해당 프로그램의 이름은 ReaxFF이다 (사실 대가이기 때문에 발언권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어서 그렇지, 극히 일부에서만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DFT 시뮬레이션보다 훨씬 빠른 MD 시뮬레이션에서 분자들의 화학반응과 동적 물성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인 장점이다. 하지만 한 개의 시스템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초기에 들여야 하는 노동량이 무시하기에는 상당히 크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기법이 AIMD, ab initio MD 기법이다. 앞서 MD 시뮬레이션은 DFT 시뮬레이션에서 미리 계산하여 얻은 값을 바탕으로 진행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AIMD의 경우, DFT와 MD 시뮬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된다. MD 시뮬레이션의 경우, 반데르발스 힘과 정전기적 힘을 미리 계산하여 얻은 값을 통해 계산하고, 시스템 전체 에너지를 계산한다. 여기서 생기는 단점으로는, DFT 계산이 선행되어야 하고, 값을 얻어내기까지 상당량의 노동이 들어간다는 점이 있다 (그래서 보통 다른 사람이 계산한 값을 가져다 사용한다). 그리고 값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여러 가정과 생략이 포함되어 필연적으로 힘을 계산하는데 있어 오차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AIMD의 경우, 힘 자체를 DFT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하여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힘을 계산하고, 해당 힘을 머신 러닝을 통해 학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이 3차원적으로 이룰 수 있는 구조체들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그 힘을 계산하여 머신 러닝을 통해 학습시키고, 그 결과를 이용하여 MD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AIMD이다. 2022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시뮬레이션 기법이고 아직 자세한 부분들에 대해서 수정해 나가야 할 점들이 있긴 하지만, 분명 더욱 발전하여 미래 화학 시뮬레이션의 주 축이 될 분석기법이다.

MD 시뮬레이션보다 더 큰 범위를 관측하고자 한다면 coarse-grain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고분자들은 한 개의 고분자 길이만 하더라도 수십, 수백 nm 길이의 중합도로 합성된다. 따라서 nm 단위의 MD 시뮬레이션은 (최대 20 nm) 실제 실험에서 사용되는 고분자의 중합도의 1/100도 제대로 모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분자 시뮬레이션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따라서 새로운 시뮬레이션 기법이 필요했고, 등장한 방법이 3개 ~ 5개의 원자를 한 개의 큰 bead로 치환하여 계산해야 하는 대상 자체를 줄이는 coarse-grain 시뮬레이션 기법이다. 단점으로는 원자들을 큰 bead로 치환함에 따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미시 화학적 성질을 잃어버린다는 점이 있지만 (예시로 수소결합), 거시적인 관점에서 MD 시뮬레이션에서는 불가능하던 거대한 고분자의 동적 물성을 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마무리하며

실험기구와 관측기기가 점점 더 좋아짐에 따라 새로운 발견과 현상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 확연히 알지 못하는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존재하고, 최근까지 우린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가능성 높은 추측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화학 시뮬레이션의 등장으로,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고, 분석을 통해 새로운 결과와 해석을 도출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시뮬레이션 분야는 Dry lab이라는 점, 그리고 컴퓨터를 통해 실험과 분석이 진행되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큰 장점이 있다 (사실, 언제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다-라고도 해석 가능하다). 화학과 관련된 선행지식은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으면 되지만, 파이썬을 통한 코딩과 수치해석이 주된 업무이자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리눅스 바탕이기 때문에 리눅스 프로그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시뮬레이션 분야가 아직 발전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미래에 비전이 어떻게 될지는 저자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 시뮬레이션이 가지는 매력적인 장점이 존재하며, 근 미래에도 실험팀과 같이 협업하며 새로운 해석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읽을 거리

Molecular Dynamics Simulations of Ionic Liquids and Electrolytes Using Polarizable Force Fields (2019), Dmitry Bedrov, Jean-Philip Piquemal, Oleg Borodin, Alexander D. MacKerell Jr., Benoît Roux, and Christian Schröder, Chemical Reviews.
https://pubs.acs.org/doi/10.1021/acs.chemrev.8b00763

Ionic liquid electrolytes are one of the critical components composing lithium-ion batteries. Through molecular dynamics simulations, we can analyze the electric and mechanical properties of target systems.

Molecular Dynamics Simulation for All (2018), Scott A.Hollingsworth and Ron O. Dror, Neuron.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896627318306846

This paper provides an overview of the molecular dynamics sim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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