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물리학과 석박통합과정
임찬
imchan@postech.ac.kr
<그림 1> 조르주 르메트르와 알버트 아인슈타인1
“과학은 아름답습니다. 과학은 신의 창조적인 생각을 반영하기에 과학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아야 합니다. (La Science est belle, elle mérite d être aimée pour elle-même, puisqu elle est un reflet de la pensée créatrice de Dieu)” – 조르주 르메트르2
- 들어가며
‘허블의 법칙’. 멀리 있는 은하가 더 빨리 멀어진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당연히 허블(풀네임)이라는 과학자가 발견했습니다. 1929년에 나왔으니 벌써 10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런데 5년 전에 이 법칙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허블–르메트르의 법칙’(Hubble–Lemaître’s Law)으로 바뀌었다는 걸 아시나요? 2018년 10월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에서 이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자는 안이 78%의 찬성표를 받아 통과된 겁니다3.
그런데 혹시 르메트르가 누구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Henry Joseph Édouard Lemaître, 1894~1966)는 허블의 발표보다 2년이 앞선 1927년에 은하의 후퇴속도가 은하까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법칙을 도출해낸 천문학자입니다. 그러니까 ‘허블의 법칙’을 허블보다 먼저 발견한 셈이죠. 그리고 팽창하는 우주 이론을 통해 은하의 후퇴속도를 설명해냈으며, 오늘날 빅뱅이론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루뱅 가톨릭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이자 사제 서품을 받은 신실한 가톨릭 사제였습니다. 이론물리학의 상징 같은 아인슈타인과 종교의 상징인 사제 복장을 입은 르메트르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그림 1>)은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르메트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르메트르가 허블보다 2년이나 앞서 ‘허블의 법칙’을 발견했음에도 그 법칙의 이름에 르메트르의 이름이 들어가기까지 무려 90년이나 걸렸다는 점, 빅뱅이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론물리학자가 실은 성직자라는 점 등 이런저런 흥미로운 사실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 특이한 인물의 일생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 우주에 대한 20세기 초까지의 지식
르메트르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19세기와 20세기에는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발견들이 여럿 있었고,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분광학(Spectroscopy)입니다. 1814년 독일의 물리학자, 프라운호퍼(Joseph Ritter von Fraunhofer, 1787~1826)가 분광기를 발명한 이후, 다양한 물질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분광학은 양자역학과 천체물리학을 태동시켰습니다. 대표적으로 수소의 스펙트럼은 보어의 원자모형을 낳고 초기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습니다. 또 1861년 키르히호프(Gustav Robert Kirchhoff, 1824~1887)가 햇빛 스펙트럼을 분석해 태양 대기의 조성을 밝힌 이후, 멀리 떨어진 천체의 물리적 및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이 시작됐습니다.
그 후 천체의 스펙트럼에 대한 여러 연구들이 진행됐습니다. 1912년 슬리퍼(Vesto M. Slipher, 1875~1969)는 대다수의 나선형 성운의 스펙트럼 패턴에서 적색편이가 관찰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4. 천체의 스펙트럼이 적색편이를 보인 것은 그 천체가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건 아마 다들 이미 아시겠죠? 이후 천문학자들이 쌓은 수많은 관측자료를 통해 거의 대부분의 별과 은하들의 스펙트럼이 적색편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거기까지 였을 뿐, 1920년대까지 아무도 천체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중력과 우주를 다루는 이론물리학 분야에도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은 뉴턴의 1687년 만유인력의 법칙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죠. 그러던 1915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중력을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합니다5. 이 이론에서 복잡한 방정식을 통해 시공간을 기술했는데, 이 방정식을 오늘날에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질량을 가진 물체에 의해 시공간 자체가 휘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빛 또한 큰 질량을 가진 물체 근처에서는 휘어져 진행하게 됩니다.
<그림 2> 왼쪽부터 아인슈타인6→9, 에딩턴의 실험 결과를 보도한 뉴욕타임즈 기사7, 그리고 에딩턴8→10.
1919년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1882~1944)은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고자 개기일식이 일어날 때 주변의 천체를 관측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태양과 같이 질량이 큰 천체는 주변을 지나는 별빛을 휘게 만드는데, 평소에는 태양빛이 워낙 밝아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 현상을 관측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태양 주변을 지나 휘어지는 빛을 관측하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가서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일반상대성 이론의 예상과 일치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밝힙니다9→6. 이 실험을 계기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포괄하는 상위 이론으로 자리매김했고,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7. 에딩턴은 오늘의 주인공 르메트르와도 좋은 인연이 있는 인물인데, 그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도록 합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정말 혁명적인 이론이었죠. 하지만 그가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은 고전적인 뉴턴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10→8. 그는 우주가 영원불멸하며 정적이라고 하는 정적우주론(Static Universe)을 고수합니다. 정적우주론은 우주는 처음부터, 아니 ‘처음’이라는 특정 시점을 정의하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원래부터 늘 존재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우주가 탄생하게 되었는가를 고민하는 건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여겼죠.
정적우주론이 지배적이던 그 시절,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팽창하는 우주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러시아의 물리학자 프리드만(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Фри́дман, 1888~1925)입니다. 프리드만은 1922년에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풀어, 팽창하는 우주를 의미하는 해를 얻습니다11.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발견이 수학적 차원의 문제일 뿐, 물리학의 영역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프리드만이 팽창하는 우주를 암시하는 적색편이 관측 자료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프리드만의 이론을 접한 아인슈타인도 팽창하는 우주는 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하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1925년 프리드만이 36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요절하며,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그의 연구는 끝이 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상황에서 조르주 르메트르가 등장합니다.
- 르메트르가 과학자이자 성직자가 되기까지
르메트르는 1894년 벨기에의 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이 수학에 두각을 드러냈고 신학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10살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과학자이자 신부였던 베뢰(P. Ernest Verreux)를 만납니다. 베뢰는 르메트르가 훗날 신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르메트르가 성경의 한 구절과 과학적인 사실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흥분했을 때, 베뢰는 이와 같은 연관성이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으니 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12. 이 무렵부터 르메트르는 진리에 도달하는 데는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보았고, 그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걸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7살이 된 르메트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데 용이하다는 아버지의 추천을 따라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합니다. 하지만 20살 때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학업을 중지했고, 전후에는 전공을 바꿔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1920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걸 보면, 아주 열성적이고 재능도 넘치는 학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일찍이 종교에 귀의하기로 마음먹었던 대로 성 롬바우트 신학교의 신학생이 됐고, 1923년 정식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해에 르메르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에딩턴(앞서 일반상대성이론을 개기일식시 천체 관측으로 검증했던 인물)의 밑에서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일반상대성이론을 공부하고 다양한 천체 관측자료를 접했으며, 1924년에는 MIT에서 과학 박사과정에 등록합니다. 그러다 1925년 벨기에로 돌아와 루뱅 가톨릭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박사과정을 계속합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훗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줄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합니다13 .
- 팽창하는 우주 모형과 허블–르메트르의 법칙
드디어 르메트르는 벨기에에서 프리드만의 연구(1922년)와 독립적으로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 팽창하는 우주 모델을 세웁니다. 그리고 수학적 접근에 그쳤던 프리드만과 다르게 그는 은하의 적색편이 관측결과를 미국 유학 시절 알게 됐기 때문에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죠. 그는 적색편이 관측 데이터로부터 은하의 후퇴속도가 은하까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관계식(훗날의 ‘허블의 법칙’)을 세계 최초로 찾았습니다. 이 연구는 팽창하는 우주 모델과 이를 뒷받침하는 관측 결과를 동시에 제시하는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결과를 유명 학술지가 아니라 벨기에의 「브뤼셀 과학회 연보(Annales de la Société Scientifique de Bruxelles)」라고 하는 작은 학술지에 프랑스어로 게재했습니다14. 그리고 이 선택으로 인해 이 혁신적인 연구성과는 이후 2년 가까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묻혀 있게 됩니다.
당시 르메트르가 왜 유명 학술지가 아니라 작은 학술지에 연구결과를 싣는 선택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한 가지 설로는, 연구 성과를 가능한 한 빨리 알리고자 작은 학술지를 골랐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팽창하는 우주모형이 학계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지나친 주목을 피하고자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12. 실제로 당시에 연구 결과를 접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던 아인슈타인이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르메트르에게 “당신의 수학적인 계산은 정확하지만, 당신의 물리는 형편없군요”라고 말했을 정도라니, 유명세를 피하고 싶었다고 해도 영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15.
<그림 3> 왼쪽부터 1929년 논문의 허블의 법칙16, 에드윈 허블17, 그리고 조르주 르메트르18.
르메트르의 연구 결과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습니다.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허블은 수년간 모은 46개의 은하의 적색편이 데이터로부터 은하로부터의 거리와 은하의 후퇴속도가 비례관계에 있다(바로 그 ‘허블의 법칙’)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16. 허블은 이미 셰퍼드 변광성 관측을 통해 우주 크기를 측정한 업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였기 때문에, 그의 논문은 당대 학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그림 4> 왼쪽부터 르메트르의 1927년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1931년 논문19, 그리고 에딩턴과 르메트르20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허블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정적인 우주 모델을 수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알게 된 르메트르는 자신의 1927년 논문의 사본을 에딩턴에게 보내면서 자신이 이미 2년 전에 이 문제를 풀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제서야 르메트르의 연구의 중요성을 알아본 에딩턴은 프랑스어로 된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1931년에 영문 번역본을 학술지에 게재했습니다19. 그 덕에 팽창하는 우주 모델은 널리 알려졌고, 조금 늦어졌지만 르메트르 또한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르메트르의 연구가 1931년에 알려졌는데, 왜 ‘허블의 법칙’이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바뀌는 데는 9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을까요? 우선 1927년 프랑스어 논문에는 담겨 있었던 허블 상수 추정(물론 그때는 ‘허블 상수’라는 이름을 가지기 전이지만)에 대해 논의한 부분이 1931년 영문 논문에서는 누락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힙니다. 이 때문에 1931년 영문 논문에서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풀어 팽창하는 우주 모델을 얻고, 그 결과로 1929년 허블의 결과를 단순히 설명하기만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누락된 부분이 허블을 법칙의 최초발견자로 만들고자 하는 허블의 추종자들에 의해 검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오랫동안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2011년에 발견된 르메트르의 편지에서 논문을 번역한 게 르메트르 본인이라는 내용이 확인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었습니다21. 1931년 당시 르메트르는 학술지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번역하는 시점에 이미 자신의 것보다 더 정확한 허블의 결과가 있기에 같은 내용을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허블의 법칙’의 최초 발견자라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으며 동료 학자들이 그 법칙을 ‘허블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불만을 표하지도 않았죠. 따라서 자연스럽게 ‘허블의 법칙’이라는 이름이 자리잡게 되었고, 그 후 89년간 그 이름이 유지된 겁니다. (글을 쓰고 있는 2023년까지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아직 ‘허블의 법칙’이라는 이름이 쓰이고 있습니다22.)
- 빅뱅우주론과 정상우주론
팽창하는 우주 모델로 명성을 얻은 르메트르는 계속해서 모델을 발전시켰습니다. 1927년의 팽창하는 우주 모델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르메트르가 얻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더 살펴보면(<그림 5> 중앙),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갈 때 언젠가 우주의 크기가 0이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의 과거를 논의할 수 없는 지점,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의 시작점이 되는 지점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1931년 르메트르는 「네이처」지를 통한 에딩턴과의 교신에서, 이 시작점을 “원시원자”(primeval atom)라고 지칭하고 원시원자의 양자적 요동에서부터 비롯된 팽창을 통해 우주가 시작되었다고 제안했습니다23. 이 원시원자모델은 훗날 빅뱅이론(Big Bang theory) 혹은 빅뱅우주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될 새로운 이론의 원형이 되었죠.
<그림 5> 왼쪽부터 원시원자를 다룬 1931년 논문23, 르메트르가 직접 그린 시간에 대한 우주 반지름의 크기 그래프24, 그리고 1933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르메트르와 대화하고 있는 아인슈타인25
우주의 시작점이 존재한다고 하는 르메트르의 원시원자모델은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1933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르메트르의 강연을 듣고 “내가 들어본 우주의 탄생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웠다”라고 평했습니다 24. 맨 처음 보여드린 사진 기억하시나요? 아니, 책장을 앞으로 넘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귀찮을 줄 알고 다시 가져왔거든요(<그림5> 우측). (사실 같은 날의 사진일 뿐 완전히 똑 같은 사진은 아닙니다. 둘을 번갈아 보면서 다른 그림 찾기를 해보 셔도 좋겠네요.) 이 사진들은 강연 뒤에 같이 있는 르메트르와 아인슈타인을 찍은 것입니다.
하지만 원시원자모델은 지나치게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르메트르와 원시원자모델에 대한 편지를 주고받았던 에딩턴조차 “과학자로서 우주가 어느 순간 대폭발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정도죠. 또한, 원시원자모델에서 말하는 우주의 시작이라는 개념은 성경에 나오는 창조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원시원자이론은 무신론자인 과학자들의 강한 반발과 비판을 마주했습니다. 르메트르가 가톨릭 사제라는 점도 이러한 비판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빅뱅우주론이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던 1948년, 호일(Fred Hoyle, 1915~2001)을 필두로 하는 몇몇 무신론자 물리학자들은 빅뱅우주론에 반대되는 이론인 정상우주론(Steady-state theory)을 내놓습니다,27. 정상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팽창하긴 하지만 그 상태가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창조를 연상케 하는 우주의 시작점을 가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신 팽창하는 우주의 밀도를 일정하게 만들기 위해 그 안에서 끊임없이 수소원자가 창조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정상우주론은 1950년대에 빅뱅우주론과 함께 당대 학계를 양분하며 빅뱅우주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이후 빅뱅의 증거인 우주배경복사의 발견과 함께 사장됐습니다.
본문에 26 인용 없는데 출처에는 26 있습니다
- 빅뱅우주론과 종교
앞서 말했듯 빅뱅우주론은 가톨릭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종교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교황청 과학원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창조에 관한 가톨릭의 교리(비유기물에 대한 신의 창조)가 현대 과학의 빅뱅우주론과 모순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과학적으로 창조의 순간이 밝혀졌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수백만 세기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빛이 있으라’는 태초의 순간을 목격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무에서 빛과 복사의 바다가 퍼져 나가며 원소들이 분리되고 수백만 개의 은하로 결합하는 순간이다,29.” 교황의 발언은 크게 화제가 되며 세계의 언론에 대서특필됐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헤드라인에 “교황이 우주는 50에서 100억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말한다“고 썼습니다30.
<그림 6> 왼쪽부터 교황 비오12세의 발언을 인용한 가모프의 논문 서문31과 가모프 본인32.
과학 이론을 종교적 주장의 근거로 끌어다 쓰려고 했던 교황의 연설은 물리학자들의 비판과 조롱으로 이어졌습니다. 르메트르 이후에 빅뱅우주론을 발전시켰던 가모프(George Gamow, 1904~1968)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무신론자였던 가모프는 독특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사람답게, 물리 학술지에 투고한 자신의 논문 서문에 교황의 연설문 일부를 그대로 인용하며 조롱하는 기행을 보여줍니다31.
그렇다면 르메트르는 어땠을 것 같나요? 르메트르도 과학자이자 신학자로서 교황의 연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습니다. 르메트르는 과학과 종교를 진리로 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개입할 수 없지만 모순되지도 않는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12,13.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여러차례 인터뷰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이론이 신앙에 의해 좌지우지되었을 것이라는 많은 과학자나 대중의 편견은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댄 브라운의 유명 소설 「천사와 악마」(2000)에서도 르메트르는 본인의 종교적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빅뱅우주론을 주장한 가톨릭 신부로 묘사됩니다32.
르메트르는 1965년 팬지어스와 윌슨이 빅뱅우주론의 결정적 증거인 우주배경복사를 발견34하면서 자신의 빅뱅우주론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고, 얼마 뒤 1966년 71세의 나이에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합니다.
- 나가며
“과학은 아름답습니다. 과학은 신의 창조적인 생각을 반영하기에 과학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아야 합니다.” 2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 글 맨 첫 부분에 이미 한 번 등장했던 인용구입니다. 실제로 르메트르가 40세 때 한 말인데, 위대한 과학자이면서 신실한 성직자였던 그의 독특하고도 꿋꿋한 일생을 알고 나니 이 문장이 새롭게 읽히는 것도 같습니다.
르메트르는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그의 연구성과는 곧바로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팽창하는 우주에 대한 논문을 주류 학술지에 영어로 투고했다면 처음부터 ‘허블의 법칙’이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이라고 불리면서 그를 일찌감치 훨씬 유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또 그는 박사학위를 두 개나(26세 때 수학, 34세 때 과학) 가진 천재 이론물리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로 폄훼와 조롱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과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과학자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과학자가 항상 과학적인 주장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자도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이 일상의 경험과 개인적 역사를 사고의 재료로 삼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분야에서만큼은 오로지 과학에 기반한 주장을 하는 일에 충실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세상에 약속한 사람을 우리는 과학자라고 부릅니다. 신앙이 과학을 참칭한다며 르메르트를 공격한 과학자들이야말로 기독교적 발상에 대한 반감과 경멸에 누구보다 허망하게 휘둘린 건 아닌지, 동료 과학자의 분별력을 섣불리 과소평가하여 과학과 과학자의 위상에 스스로 먹칠을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연구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정말로 연구자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자신이 ‘믿음’이 없기에 객관적이고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간편하고 속 편한 주장입니다. 하지만 그 선언은 대개 ‘나와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의 주장을 손쉽게 각하하기 위한 게으른 자기기만이 되는 데 그칩니다.
르메트르는 우주의 시작에 관해 얘기하며 어쩌면 내심 기뻤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신앙과 연구 결과가 모순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어쨌든 그건 아무도 알 수 없고, 사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건,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읽을 거리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 존 파렐, 진선미 번역 (2009), 양문
빅뱅이론의 아버지, 조르주 르메트르의 생애와 르메트르 전후의 우주론의 과학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사의 자세한 내용을 보고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H. Kragh (2020), “Cosmology and Religion”, Encyclopedia of the History of Science, https://doi.org/10.34758/pv1n-2q15
우주론에 관한 과학사 전문가 H. Kragh가 기술한 우주론과 종교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사이다. 본 글에서는 빅뱅이론에 주로 포커스를 맞췄지만, 빅뱅 이전과 이후의 우주론과 종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 Georges Lemaître, Albert Einstein et Robert Andrews Millikan », 10 janvier 1933, Archives de l’Université catholique de Louvain, BE A4006 FG LEM-623. Source : UCL Archives | archives.uclouvain.be/ark:/33176/dli000000dGrD
- CAMPUSKRANT (2014.04.30), ”Georges Lemaître, tussen God en de sterren”.
- “Belgian priest recognized in Hubble-law name change” (Nature), https://doi.org/10.1038/d41586-018-07234-y
- V. M. Slipher (1913), “The radial velocity of the Andromeda Nebula”, Lowell Observatory Bulletin, vol. 2, no. 8, pp.56-57
- A. Einstein (1915), “Die Feldgleichungen der Gravitation”, Sitzungsberichte der Preuss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pp. 844-847 (in German)
- Wikipedi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bert_Einstein_Head.jpg
- New York Times (1919.11.10), “LIGHTS ALL ASKEW IN THE HEAVENS”
- Wikipedia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rthur_Stanley_Eddington.jpg
- F. W. Dyson, A. S. Eddington and C. Davidson (1920), “A Determination of the Deflection of Light by the Sun’s Gravitational Field, from Observations Made at the Total Eclipse of May 29, 1919”,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A, Vol. 220, pp. 571-581
- A. Einstein (1917), “Kosmologische Betrachtungen zu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 Sitzungsberichte der Preuss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zu Berlin, pp. 142-152 (in German)
- A. Friedman (1922), “Über die Krümmung des Raumes”, Zeitschrift für Physik, Vol. 10, Issue 1, pp. 377-386 (in German)
- 존 파렐, 진선미 번역 (2009),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 양문. [John Farrell (2005), The day without yesterday: Lemaitre, Einstein, and the Birth of Modern Cosmology,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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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물리학자 임찬님에게 박수와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