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으로, 글 쓰는 사람이 글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는 하는데, 과학기술인이 세부 전공 영역의 업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과학과 공학 지식체계 고유의 속성 탓으로 돌리기에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 정책과 제도들이—특히,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부터 충당한다는 현실—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종속된 정체성으로 생각해왔다면, 목소리를 듣는 입장의 누군가에게 있어 ‘연구실 뒤켠의 연구자’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문학에서나 허용되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연구소와 연구실, 랩코트와 논문이 과학기술인의 전부가 아니라면 이들은 연구실 밖에서도 오롯이 과학기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라이프 오브 유알피
아득한 수평선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 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마치 URP라는 작은 배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문득 언젠가 보았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처럼 작은 배 안에는 제대로 놀지 못해 말라 죽어가는 나와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벵갈 호랑이같은 연구 주제만이 남겨져 있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내게 URP연구 그 자체이자 동시에 소셜벤처였다. 멍하게 빛나는 구글 스칼라 검색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연구가 끝났을 때 살아있을 수 없을 것만 같다. 어쨌거나 리차드 파커, 아니 URP연구는 앙상한 뼈만 남긴 채 나를 뭍에 닿게 할 것이라고.
절대빈곤상태 체험: 72시간, 칼로리, 그리고 식의주(食衣住)에 대하여
실험은 10월 20일(목) 00시에 개시되어 22일(토) 23시 59분에 종료되어, 정확히 72시간이 소요되었다. 실험은 72시간 동안 연속되기만 하면 어떤 날을 택해도 상관없었으나, 2일의 평일과 1일의 주말을 넣음으로써 실제 주5일제와 비슷한 상황을 조성하였다. 현금과 체크카드를 동시에 사용하였지만, 모든 지출에서 즉시 금액을 기록하였기에 72시간 동안 계산 실수는 없었다. 또한 실험 전에 구입한 커피믹스와 비타민의 가격도 개당 단가를 따져 합산하였고, 하루에 4,000원 이하의 소비를 원칙으로 하여 첫날의 충동구매로 인해 2일차, 3일차에 굶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구성된 침묵: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본 대학원생 정책
정책이란,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힘 없는 대학원생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겐 이 세 가지 모두 참 어려운 과정이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서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잘 들리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학교와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사람을 만나도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카이스트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대학원생들, 즉 미래 과학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단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공부 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시력을 잃었다.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비롯하여,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 사고 등 크고 작은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화학 물질 사고는 어느 특정한 공간과 계층에 한정하여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의 화학 물질에 대한 의존성에서 기인한다. 화학 물질은 그 용도의 다양함으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발전해왔고, 근래에 들어와서 더욱 넓은 범위에서, 더욱 많은 숫자가 유용되고 있다.
Deus Ex Cultura
“이 문제들은 다 문화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회의장이나 토론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토론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동의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어 보이는 말. “이것은 모두 문화 때문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수리공은 왜 선로 안쪽에 들어가야만 했나?
사고에 대한 해석은 내러티브를 요구한다. 내러티브는 사고를 어쩌다 마주친 불행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배경 때문에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으로 틀짓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해석의 창이 있기에 우리는 사고를 이해할 수 있고, 재발을 위한 계획도 세울 수 있으며, 슬픔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 그릇 없이는 어떤 물도 담아낼 수 없는 것처럼, 납득할만한 내러티브가 없는 사건 해석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할지라도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스크린도어 수리공 고 김 군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과학문화’를 찾아서: Mapping Science Culture
우리들은 대부분 한 때 ‘호기심 천국’을 보고, 과학관에 가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어린아이였다. 더 커서는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간단한 실험을 해 보기도 하고, 영화관에 가서 ‘인터스텔라’를 보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고객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중 무엇을 “과학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May the POS Be With Us: POS 시스템의 사회기술사
“사장님! 오늘 3시 현재 전체업무현황을 보고드립니다. 아직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십니까? 정확하지도 않은 영업현황을 분석하며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1985년 10월 17일 자 매일경제 신문 1면에 실린 럭키금성의 POS 시스템광고 문구다. 광고 오른쪽 상단에는 럭키금성의 당시 슬로건(1984~1989) ‘人間 × 技術 × 未來’(인간 × 기술 × 미래)가 적혀있다. POS 시스템 기술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