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the POS Be With Us: POS 시스템의 사회기술사

신희선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rebecca20@kaist.ac.kr


“사장님! 오늘 3시 현재 전체업무현황을 보고드립니다. 아직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십니까? 정확하지도 않은 영업현황을 분석하며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습니까?”

1985년 10월 17일 자 매일경제 신문 1면에 실린 럭키금성의 POS 시스템[1] 광고 문구다. 이 광고는 POS(판매시점관리, point-of-sales) 시스템이 ‘유통관리의 핵심두뇌’라며 금성 POS 시스템으로 ‘합리적인 선진경영관리’를 실현하여 ‘이윤의 극대화’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선전한다. 광고 오른쪽 상단에는 럭키금성의 당시 슬로건(1984~1989) ‘人間 × 技術 × 未來’(인간 × 기술 × 미래)가 적혀있다. POS 시스템 기술은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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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럭키금성의 POS 시스템 광고[2]


럭키금성의 이 광고가 신문에 등장한 것은 1985년으로, 1972년 미국에서 POS 시스템이 개발된 후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던 시기다. 이 광고가 지적한 기존 경영방식의 문제점은 사장님들이 ‘정확하지 않은 영업현황’으로 ‘주먹구구식 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POS 시스템으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광고가 정확히 지적하듯, POS 시스템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소매업을 정보화하였고, 따라서 소비자의 수요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평가된다. 유통 정보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3] 당시 셀프서비스가 제1차 유통혁명을, POS 시스템이 제2차 유통혁명을, 그리고 바코드를 통한 스캔 시스템이 제3차 유통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POS 시스템의 도입은 그렇게 매끄럽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세원 노출 문제와 비싼 비용이었다. 경영인들은 대체로 기업의 판매현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꺼렸다. 또, 대형업체가 중심을 이룬 초기 보급 지형이 보이듯  소규모 업체들은 POS 시스템을 들일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선뜻 구매하기에는 초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설령 POS 시스템을 설치했더라도, 업체들은 여러 매체에서 광고하던 ‘매장관리의 합리화’를 바로 성취할 수는 없었다. 성공적인 POS 시스템 운영은 기계를 언제,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비물질적 환경이 함께 마련되어 있는가하는 시스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품별 바코드가 확립되어 있지 않아 어떤 고객이 언제, 어떤 상품을 어느 만큼 구매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POS 기기는 계산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하기도 했다.[4] 이런 문제는 심지어 199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 또한 바코드 부착과 같은 사내외 시스템이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POS 시스템 도입은 전광헌(1991)이 지적하듯 영업주를 비롯한 판매원이 적극적인 태도로 이 새로운 기계와 시스템을 배우고 그로부터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 활용하려는 ‘의식혁명’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POS시스템을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는, 소스마킹(Source Marking)문제이다. … 대체적으로 POS 도입을 먼저 시작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소스마킹(Source Marking)율이 90%이상이다. … 둘째는, 사내 여러가지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다. … 세째는, 판매원, 바이어(Buyer), 판매담당 등의 구시스템에서 POS에 의한 신시스템으로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의식혁명이며, POS시스템 실행에 대한 성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5]

의식혁명과 관련해서는 진로그룹을 성공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1989년 1월 POS 시스템을 도입한 진로도매센터는 개장 후 첫 한 달 간은 계산원, 판매원, 매장담당자 등에게 POS 시스템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반복적으로 실시했다.[6] 물론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 활용은 꿈도 못 꿀 이야기였다. 효율적으로 POS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서 직원들은 상품들에 정확한 바코드를 부착하고, 계산원은 (반드시) 바코드를 이용하여 계산과정을 거치고, 관리자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잘 수행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신식 IT기기의 도입으로 직원들은 손에 익숙한 일들을 애써 외면하고 대신 새로운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POS 시스템을 자연스럽게 운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제 되어야 할 일들이었다. 상품 뒤에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것들은 소비(자) 데이터로 재생산되었다. 경영전략에 반영될 숫자와 그래프를 얻기 위해 직원들의 그림자 노동이 수반되어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데이터 활용에 있었다. 1989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출력리포트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가 POS 제도 운용상의 문제점으로 가장 높게(50%) 꼽혔다.[7] ‘POS 시스템만 시행하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고 매출도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는 이유였다.

POS 시스템의 이상적인 시나리오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분석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했다. 즉, 기존 직원들에게 POS 시스템에 대해 교육을 하거나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새로 채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POS 시스템을 통해 재고 파악을 쉽고 빠르게 하여 궁극적으로 부족한 재고를 즉각 보충하는 것인데, 그래서 대형 백화점 혹은 체인 슈퍼마켓들은 각 점포의 POS 터미널을 모니터하며 재고가 떨어질 경우 본부 혹은 가까운 다른 점포로부터 부족한 상품을 보충하는 식으로 POS 데이터를 활용했다. 요즘 편의점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본사에서 POS 기기를 통해 하루에 2~4번씩 지역별 날씨 정보를 비롯한 각종 소비 정보를 각 영업점으로 전송하여 수요 증가가 예측되는 물품을 미리 갖춰 놓는다.[8] 그래서 언제 찾아가도 모든 게 늘 구비되어 있는 이상적인 편의점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규모가 작은 중소형 업체에겐 다른 이야기다. 중소형 소매업체들은 POS 시스템을 갖추고도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당시 업계와 학계가 POS 시스템을 두고 일컬었던 ‘효율적인’ 경영방식과 ‘협업화의 실현’은 대형업체만이 전유할 수 있었다. POS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대형업체와 체인점의 확장에 일조한 셈이다. 따라서 체인점의 확장 추세가 POS 시스템 보급의 기회요소라는 기존 해석보다 오히려 POS 시스템으로 인해 체인점이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매일경제 1984년 11월 27일 자 신문 1면에 게재된 광고는 이런 ‘체인점 청사진’을 잘 보여준다. 서울로 추정되는 중심부에 POS 기기가 있고, 그곳을 거점으로 대전,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 곳곳의 영업점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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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POS 기기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체인점이 뻗어있는 광고[9]


대형업체의 확장은 중소상인들에게는 위협요소였다. 여러 업체가 POS 시스템 사용으로 매출이 올랐으니 하루빨리 사용을 권고한다는 내용은 신문의 단골손님이었으나, 사실 그것은 대부분 백화점, 대형 슈퍼마켓 등 대형업체의 이야기였다. IMF 위기로 이러한 내러티브는 더욱 힘을 얻었다. 어떤 기사에선 ‘중소 유통업체 POS 도입해야 생존’한다며 POS 도입이 생존과 연관된 문제라는 어조까지 풍겼다.[10] 정보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에 일렁이던 1990년대 중반, 정보화에 뒤처진다는 것은 생계를 위협받는 일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POS 데이터를 대신 분석해주는 대행사가 등장했다. IT 기기가 유통과 경영의 영역—특히 대형업체가 아닌—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새로운 매개(intermediary) 조직이 생겨난 것이다. 다이코통신이 그중 하나인데, 이 회사는 POS  시스템 판매와 함께 매달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매출기록을 수집, 분석한 후 매장 경영에 필요한 각종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다이코통신의 이부경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들은 POS시스템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나 단독점포를 운영하는 개인들의 경우는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용량과 분석능력의 한계가 있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창업 취지를 설명했다.[11] 이런 신규업종은 인기가 좋았는데, 다이코통신은 2개월 만에 12개 점포를 확보할 정도였다. 이런 방식이라면 중소업체 업주들은 돈을 들여 POS시스템을 구입하고, 약 1년에 걸쳐 사용방법을 익히고, 웃돈을 줘서 대행업체에 데이터 분석을 맡기고, 그 결과를 경영에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는 마케팅 회사도 등장했다. POS 데이터 분석뿐만 아니라 경쟁회사를 분석하거나 브랜드 홍보물 제작 등 총체적인 마케팅을 대행하는 회사였다. 이런 회사들은 종종 매장에서 데이터를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강연을 열기도 했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의 소비형태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상품 제조와 개발에 반영하기 위해 슈퍼마켓 등의 상품 판매정보를 돈을 지불하고 구매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일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은 또 존재했다. 직원들은 POS 시스템 사용으로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일은 더는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여전히 상품을 나르고, 물건 숫자를 세고, 상품대에 진열해야 했다. 상품이 제조단계에서부터 판매단계까지 이르기에는 발주, 납품, 검품, 가공, 진열, 판매 등을 거쳐야 했고 이것은 모두 여전히 직원들의 몫이었다.[12]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숫자에는 변화가 없었다.[13] 상점자동화는 매장관리, 매출, 재고 파악 등의 경영업무를 효율화했지만, 근무자들은 인적, 정신적 피로를 더 느꼈다.[14] 게다가 직원들은 POS 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이론적으로는) 남는 시간만큼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기계는 계산대 근무자들이 강요받았던 감정노동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했다.[15] 당시 신문 속 POS 기사와 광고에 숱하게 등장하던 문구—‘사회자동화’로 컴퓨터가 어렵고 힘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줄 것이라는—는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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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사회자동화 사례들을 소개하는 기사[16]


대부분의 점주는 데이터 활용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POS 시스템 도입으로 얻을 수 있는 활용효과(soft merit)는 바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금전등록기 입력 실수 감소, 계산 시간 감축, 계산 실수 감소 등의 직접효과(hard merit)는 즉각 나타났다. 계산대에서의 계산 실수가 많이 감소했고 정확하게 그날그날의 매출현황을 기록, 관리할 수 있었다. 종종 발생하던 직원의 계산 실수가 더는 일어나지 않게 되었고, POS 시스템은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첨단 장비”로 여겨졌다. 점주와 직원들은 기계를 믿었고, 고객들 역시 기계를 믿었다. 종업원이 계산을 정확하게 하는지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고객들은 바코드가 읽는 값대로, POS 기기에 뜨는 값대로 지불을 하면 그만이었다. 고객이 간혹 가격에 대한 의심을 품으면, 직원들은 POS 기기를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물건값을 놓고 간혹 붙던 시비도 현저히 줄었다.[17] 그래서인지 POS 시스템 도입 후 고객반응은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POS 시스템은 직원-고객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직원 간에 생길 수 있는 불신을 잠식시키기도 했다. 사람이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인간통유의 결함’을 POS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었고, 숙련도나 경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산성으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8] 또, 점주들은 그날그날의 영업현황을 더이상 직원들로부터 직접 전달받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잘 팔렸는지, 언제 매출이 가장 많이 발생했는지 POS 기기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를 체인업체로 확장하여 생각해볼 때 본사-가맹점 사이의 관계 역시 유추 가능하다. POS 시스템이 갖춰진 현대 매장은 표준화와 효율화의 공간으로 서서히 변모했다.[19]

계산방법의 변화는 곧 인간관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점주-직원, 직원-직원, 직원-고객 사이에 형성되었던 이런 방식의 믿음 관계에는 POS 시스템이 있었고, 이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를 기계화했다.  편의점은 이런 모습이 극대화되는 장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근무를 마치고 교대를 할 때 반드시 거치는 ‘시재점검’은  POS 시스템에 입력된 판매금액과 계산대 금액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직원들이 일을 주고받는 방식이 극도로 효율화된 것인데, 이 장면에도 역시 POS 기기가 등장한다. 직원-고객 사이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요즘 편의점 POS 기기는 직원이 상품의 바코드 스캔을 완료하고 고객이 계산을 하려는 시점에서 “할인이나 적립카드 있으세요?”라는 말을 (직원 대신) 하기도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 <와라! 편의점> 16화(지강민 작)에는 POS 기기가 매개하는 직원-고객 간의 관계가 잘 드러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고객이 시비가 붙은 상황인데, 여기서 아르바이트생은 “포스기화면에도 찍혀있잖아요.”라며, 포스기(POS기)에 찍힌 재고와 진열대에 남아있는 재고를 비교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고객은 “할려면 빨리 해.”라고 대답한다. 직원과 고객 사이에는 “POS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는 것이다. POS 시스템이 제공하는 신뢰감은 낯선 장소에서 특히 극대화된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에 방문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다. ‘POS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가게 주인이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할 것인가, 편의점에 들어가서 POS 시스템에 뜨는 값을 지불할 것인가? POS 시스템이 매개하는 이런 인간관계는 우리가 일하고 소비하고 살아가는 공간의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간관계의 비인간화는 한편으로 기계 앞에 있는 인간의 존재가 점점 투명해짐을 뜻한다. 우리는 종종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짜인 알고리즘에 의해 “예측된 대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계산대 앞의 사람들을 목격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매장의 목적에 아주 충실한 이러한 모습은 POS 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기계가 매개하는 이런 건조한 관계를 선호하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일상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무관심의 배려”를 원하기도 한다.[20] 아예 사람이 없는 셀프계산대를 선호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로써 점원이 담당했던 (계산대 앞에서 바코드 찍고 키를 누르는 등의) 육체적 노동마저 고객이 떠맡게 된다.[21] 그런데 셀프계산대가 운영될 수 있는 것도 사실 POS 시스템이 정확한 계산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매장 점원들은 고객에게 계산을 위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고객을 믿는다기 보다는 POS 시스템을 믿기 때문에 계산을 맡길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9월 LG U+는 “창업팩(PACK)”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 전화, 카드결제기, CCTV 등 창업에 필요한 핵심적인 IT 상품을 모아 묶어 판매하는 패키지상품이다. 그리고 여기엔 POS 시스템도 있다. POS 시스템이 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럭키금성이 1985년 슬로건 ‘人間 × 技術 × 未來’를 내걸고 광고를 하며 상상했던 미래는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럭키금성의 1985년 광고를 비롯한 여러 광고에서는 마치 POS  기계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사장님께 보고할 수 있을 것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POS 시스템은 그렇게 자율적이지 않았다. 경영효율화로 매출상승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처음의 기대는 대형업체들에만 약속된 것이었다. POS 시스템 설치 후 많은 중소업체 경영자들은 POS 시스템을 ‘매장을 운영하는 소도구’ 정도로만 취급했으며, 실제 매장 운영비용이나 종업원 고용 숫자, 심지어 매출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22]

그렇다면 POS 시스템은 실패한 기술인가? 그것이 실패했다면 POS 시스템은 어떻게 유지됐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POS 시스템이 선진경영관리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에 확산되었다는 대형업체 중심, 혹은 혁신 중심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체인업계와 대형업체는 경영전략을 짜기 위해 반드시 POS 시스템을 사용해야 했지만, 구멍가게가 POS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은 달랐다. POS 시스템은, 효율적인 경영보다는, 투명성과 객관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점주들은 이를테면 “우리 가게는 탈세하지 않는다” 혹은 “우리 가게는 정확하게 계산한다” 등의 이야기를 이 작은 기계를 통해 암묵적으로, 그러나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POS 기기로 인해 신뢰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의 감시 시스템은 간수가 중앙탑에서 죄수들을 감시했던 벤담의 파놉티콘의 메커니즘과는 달리 중앙이 명확하지 않다.[23] 다른 ‘전자 파놉티콘’들이 그렇듯, POS 시스템과 기기는 감시의 주체와 역할을 분산시킨다. 감시의 분산은 그러나 감시의 느슨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감시 행위를 가능하게 한다.[24] 기계의 존재는 현대 매장을 오가는 사람들—고객, 다른 매장 점주, 점원 등—의 시선을 통해 유지된다.

POS 시스템은 매장의 풍경을 바꿨다. 점원들은 더이상 눈대중과 어림잡음으로 계산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한 상품 진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계산대에 선 점원들은 바코드 스캐너와 POS 기기를 이용해 손쉽게 계산을 한다. 계산방법과 함께 POS 시스템이 바꾼 것은 매장 안을 메우는 분위기다. 점주, 직원, 고객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이 모여 생산, 제조, 판매, 소비 등 다양한 층위의 경제활동을 하는 상업 공간에서 POS 기기는 믿음의 상징물이다.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POS 시스템은 해결한다. 그리고 POS 시스템의 확산과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어쩌면 이 분위기 때문이다.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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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편의점 사회학>, 민음사, 2014.

대한민국은 인구대비 편의점 수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근래에는 상품 판매 뿐만 아니라 은행, 우편, 약국 등의 업무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 전상인은 <편의점 사회학>은 소비주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사회 양극화 등 우리나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현장으로써 편의점을 관찰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많게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락거리는 편의점이 새로운 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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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그 램버트, 이현주 역, <그림자 노동의 역습>, 민음사, 2016.

‘그림자 노동’이란 이 책의 저자 크레이그 램버트가 만든 단어로 보수를 받지 않고 기업이나 조직을 위해 행하는일을 가리킨다. 크레이그 램버트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림자 노동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노동이 사실은 (예전에는 할 필요가 없었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새로 생겨난 ‘무보수’ 그림자 노동이며, 그것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빡빡하게 만들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1] 보통 포스, 포스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나, 이 글에서는 ‘POS 시스템’으로, 특히 기기를 가리킬 때는 ‘POS 기기’로  통일하여 쓴다. POS 시스템은 상품이 팔리는 시점에 판매 정보를 즉시 기록하는 시스템으로, 판매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상품 판매 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요즘에는 바코드 스캐너, 전자서명장치, 모니터, 영수증 프린터, 카드리더기 등 계산에 필요한 기기들이 하나로 묶여 판매되고, 바코드 리더기를 통해 상품에 붙어있는 바코드를 읽으면 자동으로 상품 정보가 기록된다.

[2] 럭키금성 광고, 매일경제, 1985년 10월 17일, 1면.

[3] 임채운 (2005), 『POS 데이터의 활용을 통한 소매업 활성화 방안』, 경제연구총서 제381호, 대한상공회의소, p. 46.

[4] “유통업체 POS제구실 못한다”, 매일경제, 1991년 9월 18일, 11면.

[5] 전광헌 (1991), “우리나라 百貨店의 P.O.S.시스템 使用現況 및 導入×運營上의 問題點 改善에 관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6] 한국식품공업협회 (1989), 「POS 制度導入 運營事例」, 『食品工業』, 제 101권, p. 79.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유통코드센타 (1989), 『POS制度 導入實態 및 展望』, p. 40.

[7]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유통코드센타 (1989), 『POS制度 導入實態 및 展望』, p. 11.

[8] 전상인 (2014), 『편의점 사회학』, p. 77-78.

[9] 럭키금성 광고, 매일경제, 1984년 11월  27일, 1면.

[10] “중소 유통업체 POS 도입해야 생존”, 매일경제, 1999년 6월 29일, 19면; “POS는 슈퍼영업에 필수죠.”, 매일경제, 1998년 7월 2일, 14면.

[11] “POS운영 대행社 등장”, 매일경제, 1995년 9월 23일, 9면.

[12] 아키야마 테쓰요, 번역 (주)키스크 유통정보 기술연구소 (1994), 『POS의 전략적 활용법 』, 도서출판 한나래,  p. 162.

[13] 배채순 (1998), “POS 시스템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우리나라 슈퍼마켓의 利用實態分析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 29-31.

[14] 신영균 (1991), 「효율적인 백화점 POS SYSTEM활용에 관한 연구」, 『논문집』, 제5권, p. 294-307.

[15] 김용혁 (1999), 「POS시스템의 전략적 활용에 관한 연구」, 『食品流通硏究』, 제16권 제2호, p. 128.

[16] “어렵고 힘든 일 알아서 척척”, 매일경제,  1988년 10월  21일, 24면.

[17] 배채순 (1998), “POS 시스템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우리나라 슈퍼마켓의 利用實態分析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 29.

[18] 김기일 (1993), 「마아케팅 戰略으로서의 POS에 관한 硏究」, 『慶北大學校論文集(社會學科)』, 제12권, p. 112.

[19] 전상인 (2014), 『편의점 사회학』, p. 83. 이것은 또한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e Ritzer)가 주장한 “사회의 맥도널드화”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George Ritzer,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 The Journal of American Culture 6, no. 1 (1983): 100-107. 리처는 효율성(efficiency), 계산성(calculability),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통제성(control)을 추구하는 맥도널드의 관료주의적이고 과학적인 경영 시스템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으며, 20세기 후반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사회의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 of Society)”라고 명명했다.

[20] 전상인 (2014), 『편의점 사회학』, p. 83.

[21] 크레이그 램버트, 번역 이현주 (2016), 『그림자 노동의 역설』, p. 232.

[22] 배채순 (1998), “POS 시스템 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 우리나라 슈퍼마켓의 利用實態分析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 30-31.

[23] 홍성욱 (2002),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p. 98.

[24] 홍성욱 (2002),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p. 9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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