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데이팅 앱, 그 이후의 삶

김민환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석사과정)

minhwan.kim.114@gmail.com


 

“우리끼리 알아볼 수 있도록 왼쪽 팔목에 노란 고무줄을 차고 다니는 건 어때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내가 가입되어 있던 온라인 성소수자 모임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해외 LGBT 커뮤니티에서 기원한 행커치프 코드[1]의 한국 버전처럼 보이는 이 귀여운 발상은 예상외로 큰 반향을 불러왔고, 그 후 한동안 어느 역에서 고무줄을 하고 있는 친구를 봤다더라 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게시판에서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지하철을 타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사람들의 손목을 유심히 관찰하곤 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때면 넌지시 왼쪽 손목에 고무줄을 두어 개 끼고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지 못할 이야기이지만, 이는 당시 성소수자들이 어떠한 형태의 욕망을 지니고 있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017년의 오늘,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노란 고무줄’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스마트폰을 켜고 화면을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내 주변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다른 게이들이 화면에 주르륵 나타난다. 필터를 이용해 원하는 사람을 골라낼 수도 있다. 그야말로 기술적 진보다. 이처럼 스마트폰의 GPS 신호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데이팅 앱은 현재 성 소수자-특히 남성 동성애자-커뮤니티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장 대표적인 앱 Grindr의 경우 2009년 개발된 이래 현재 전 세계 234개국에 걸쳐 1000만 명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일 3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앱을 이용하고 있다.[2]

 

Screen Shot 2017-11-12 at 11.33.54 PM

[이미지 1]

 

성소수자에게 데이팅 앱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성 소수자의 정체성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은 그러한 섹슈얼리티가 형성되기 위하여 특정 공간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공간적이라 할 수 있는데[3], 인터넷을 통해 매개되는 데이팅 앱과 같은 가상 공간은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하나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며[4], 그들이 조금 더 안전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다시 말해 데이팅 앱은 현재 성소수자들이 그 정체성을 수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인 것이다. 따라서 성소수자와 데이팅 앱의 관계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 서비스와 사용자와 같이 단편적으로 독해될 수 없다.

나는 아래의 글에서 데이팅 앱을 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을 순차적으로 기술하며, 데이팅 앱이 게이로서의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나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게이 세계로 통하는 첫 번째 창문, 그리고 첫 번째 커밍아웃

내가 처음 데이팅 앱을 접한 것은 2013년 가을이었다. 당시 나는 게이로 온전히 정체화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중학생일 때부터 내가 이쪽이 아닐까 고민을 했고, 그로 인해 성 소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은 되어 있었지만 가끔 접속만 했을 뿐, 이렇다 할 커뮤니티 활동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한 친구를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 첫 사랑이 저 무렵 무참히 실패로 돌아간 덕에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한 긴 탐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쪽 세계’에 대해 정말 많이 모르고 있었다. 종로나 이태원에 게이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곳에 갈 용기는 나지 않았고, 또 가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몇몇 책들을 빌려보곤 했지만, 정말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가장 사적인 매체, 스마트폰에 몇 가지 검색어, 이를테면 게이 같은 것들을 몰래 검색하는 것뿐이었고, 그 검색의 결과는 나를 데이팅 앱으로 이끌었다.

데이팅 앱을 사용하기 이전 내 세계에 존재하는 게이는 나, 그리고 TV나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몇몇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내게 데이팅 앱이 보여준 것은 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 그 자체였다. 빨간색 아이콘을 클릭하자 화면 가득 다른 이들의 사진이 떠올랐는데,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내 주위에도 나와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 있겠거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의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온라인 카페에도 이와 비슷하게 사진을 곁들인 자기소개 글들이 올라오곤 했는데, 데이팅 앱은 내가 서 있는 곳 주변에 나와 같은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날 밤새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혹은 우습게도 데이팅 앱은 내게 그 어떤 위안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막연히 멀게만 느껴졌던 게이 세계가 실은 내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라는 감각, 보이지 않는 어떤 공동체가 있으며 나도 그 일부라는 생각이 뒤섞여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이는 비단 나만의 개인적인 경험이 아닌데, 선행 연구는 데이팅 앱이 사용자들로 하여금 서로의 존재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함으로써 어떤 것의 일부라는 감정, 소속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5]. 이에 대해 가장 대표적인 데이팅 앱 Grindr 의 개발자 Joel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With Grindr, ‘0 Feet Away’ isn’t just a cute slogan we print on our T– shirts.
It’s a state of mind, a way of life”[6]

데이팅 앱을 설치한 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때 사용이라 함은 어플리케이션 상에 내 사진을 올리고 나를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팅 앱을 설치하고 둘러보는 것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데이팅 앱을 실행하고 주변에 누가 있는지 구경하는 데에는 아무런 위협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부가 되어 사진을 올리고 나를 드러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일종의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다. 나는 앱을 설치한 지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처음 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마저도 늦은 새벽, 내가 흐릿하게 나온 사진 한 장과 짧은 소개글일 뿐이었지만, 나는 밤새 누가 내 프로필을 보고 갔는지 체크하고, 혹시나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오지 않은 일들을 불안해하고 또 동시에 기대했다. 비록 데이팅 앱에 존재하는 것은 (아마도) 나와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고 따로 어떤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내 정체성을 드러낸 행위였으며, 일종의 커밍아웃이었던 것이다.

 

LTR과 NSA, 불가능한 낭만

처음 사진을 올린 이후 나는 점차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져 갔다. 쪽지도 간혹 받았고, 몇 번의 짧은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데이팅 앱에서의 거의 모든 활동은 1대1 메시지를 통해 이루어 지는데 대화는 대부분 뻔한 루틴의 반복이었다. 몇 번의 어색한 인사가 오간 뒤 어느 한 사람이 예컨대 이런 말을 묻는 식이었다. “어떤 분 찾으세요?”

데이팅 앱을 사용하다 보면 사람들의 프로필에서 LTR, NSA 등의 약어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LTR은 Long-term Relationship 의 약어, 즉 오래 볼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고, NSA는 No String Attached, 즉 편하게 볼 사람 –대개 빠른 성적 욕구의 해소를 위한-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단어는 그 사용자가 이 데이팅 앱에서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굳이 어떤 분을 찾는지 물어보지 말라는 암묵적인 경고이기도 하다.

데이팅 앱은 목적성이 뚜렷한 매체이다. 이미 이름부터가 이 앱의 존재 이유를 말해 주고 있다. 2014년 공개된 데이팅 앱 Grindr의 홍보 영상을 보면 이 앱이 어떠한 형태의 사용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영상은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남자가 도심을 활보하며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등장인물은 앱을 통해 매시간 각각의 장소에서 근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즉석 만남을 가진다.

눈여겨 볼 것은 데이팅 앱의 인터페이스가 이러한 목적을 쉽고 빠르게 달성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개인의 정보는 사진이 최대한 크고 잘 보일 수 있도록 거리, 접속 여부와 같은 최소한의 정보를 제외하고 모두 생략되어 있으며, 이러한 개개인을 격자 형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에 배치함으로써 사용자로 하여금 빠르게 화면 속 사람을 비교하여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Grindr 뿐만 아니라 Jack’D, Scruff등 다른 성소수자-특히 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데이팅 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디자인이다. 이에 대해 Grindr의 대표 Joel Simkhai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한 바 있다.

 

“Grindr is a very, very visual experience. I’m not really a big believer in words.”.[7]

 

Joel이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시각적 경험은 데이팅 앱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만남의 시작은 사용자가 올린 작은 썸네일 사진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 사진이 다른 사용자의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그리드 형태의 인터페이스는 화면에 보이는 사용자 간 필연적인 위계 질서를 생성하고, 이러한 평가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마치 온라인 쇼핑몰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한 방식이다.

이러한 위계질서는 단순히 그래픽적 요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데이팅 앱을 통해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역시 나타난다. 현재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에서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이다. 하나는 직접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즐겨찾기’와 같은 기능을 통해, 자신의 호감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인터랙션은 모두 데이팅 앱 내부에서 일어나며, 매체의 특성상 자연히 비동시성(asynchronous)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먼저 상대방의 호감을 인지한 사용자는 자신이 이 관계를 지속시킬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 사용자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고, 혹은 메시지에 답장을 하지 않거나 차단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의 불평등에 대해 사르트르는, ‘시선의 싸움’이라는 명제를 통해 완벽한 평등과 이로 인한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현재 데이팅 앱은 이러한 시선의 싸움이 내재된 형태의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다. 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먼저 호감을 표시하는 순간 시선의 싸움에서 패배하게 되는 것이고, 관계의 출발점인 시선의 교환에서부터 만들어진 불평등한 관계는 추후 연인 관계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어 놓는 것이다.

데이팅 앱이 목적지향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 데이팅 앱이 성소수자와 이성애자의 삶 속에서 가지는 위치가 다르다는 데에 있다. 이성애자에게 데이팅 앱이란 잠재적 연애 대상을 찾을 수 있는 대안적 방법에 불과하지만, 성소수자에게는 타인과의 관계를 매개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연애 관계는 데이팅 앱을 통해 실제 세계에 재현되는데, 이 과정에서 데이팅 앱에 내재된 구조와 질서가 그 관계의 형성에 깊게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의 설렘도 잠시, 데이팅 앱은 이내 커다란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넘치는 시각적 자극 속에서 나 역시 시선의 주체가 되기 위해, 다시 말해 데이팅 앱 속에서 버티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어떤 분을 찾느냐”는 질문에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많은 단어를 얹어가며 설명하기 바빴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 또한 금방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연애가 하고 싶었다. 내 주변 이성애자 친구들처럼 특정한 목적을 지니지 않고 만나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그런 연애가 하고 싶었다. 이 것은 LTR로도 NSA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었다. 몇 번의 건조한 대화들이 반복되었고, 나는 데이팅 앱에서 이러한 평범함을 바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데이팅 앱 그 너머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팅 앱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데이팅 앱의 가장 큰 장점은, 데이팅 앱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데에 있다. 이는 게이로서의 삶과도 크게 연결되어 있는데, 단순히 같은 성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궤적이 전혀 겹치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 쉽게 공감하고 관계할 수 있다는 점은 퍽 매력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과거에는 이러한 만남이 주로 게이 클럽, 게이 바와 같은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데이팅 앱은 이러한 장벽을 완전히 허물고, 사람들이 굳이 이러한 장소에 가지 않고도 쉽고 안전한 방법으로 잠재적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8], 혹자는 이에 대해 주머니 속에 늘 게이바를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9]. 이는 비단 개개인이 만나는 방법 자체만을 바꾸어 놓은 것뿐만 아니라 많은 성소수자들이 이쪽 세계로 나오게 되는 그 진입 장벽을 크게 낮추어 놓았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나 역시 데이팅 앱이 아니었다면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이쪽 세계로의 데뷔를 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데이팅 앱이 그 자체로 완결적인 세계로 기능하기 쉽기 때문에 많은 이들을 그 너머의 삶으로 연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팅 앱을 통해 매개되는 만남은 지극히 사적이고 그 공간은 ‘타인의 시선’이 부재한 곳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데이팅 앱은 어떠한 소속감을 제공 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 가상의 공동체는 실제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데이팅 앱을 통해 개개인을 만나는 것은 더 쉬워졌을지 몰라도 커다란 공동체로서의 게이 커뮤니티는 파편화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게이 커뮤니티의 중심이 게이 바와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인터넷과 같은 가상 공간으로 이동하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인데, 과거 PC통신을 통한 만남이 새롭게 등장하던 당시 한 LGBT 운동가는 “설령 그 만남이 지속적인 것이 되어서 커뮤니티의 공간들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보다 사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교감을 형성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로부터 그리고 공적인 삶으로부터 후퇴”[10]한다는 점을 들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PC 통신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여기에 데이팅 앱을 대입하여도 이는 여전히 유효한 지적으로 보인다.

성소수자에게 ‘공동체’, ‘커뮤니티’라는 것은 단순히 개개인이 모인 하나의 덩어리, 물리적 집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성애 하위 문화는 공동체 기반으로 이해되어 왔다. 즉, 공동체를 통해 ‘동성애’라는 삶의 방식은 세상 속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하나의 실존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형성에는 커뮤니티의 공간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몰리의 집’은 18세기와 19세기 영국 남성 동성애자들이 만남을 가지던 공간인데, 이에 대해 역사학자 Alan Bray는 ‘몰리의 집’이 초기 동성애 하위 문화를 만들면서 동성애 정체성과 동성애 공동체에 문화적인 맥락을 제공했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를 통해 동성애가 성적 행동이나 성적 취향 이상의 것이 되었으며, 그 결과 동성애가 근대적 감성에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11]

데이팅 앱은 이러한 커뮤니티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학자 Roderic은 데이팅 앱이 게이 커뮤니티를 스톤월 항쟁 이전 몇몇 자신들만의 코드-예를 들어 행커치프 코드-를 통해 크루징을 하던 시기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하며 이는 커뮤니티의 대안적 공동체 역할과 그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이야기하였다.[12] 물론 데이팅 앱 그 자체가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는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목적과 존재이유에 부합하지 않다. 다만 이로 인하여 야기된 공동체의 파편화가 성소수자 담론 형성에 미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데이팅 앱과 개인의 관계, 데이팅 앱과 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한 LGBT운동가는 한국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이유로 가시적 억압의 부재를 들었다. 동성애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등 몇몇 PC 하지 않은 농담과 타인의 무례함에 침묵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2017년의 우리는 실제적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최근 A 대위 사건과 수년째 해결되지 않는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 곳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단순한 성적 취향 그 이상의 의미를 자연히 지닐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는 데이팅 앱 이후의 데이팅 앱, 그 이후의 세계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 너머의 세계로 더 많은 이들이 모여야 한다.

 


읽을 거리

Screen Shot 2017-11-12 at 11.34.54 PMMowlabocus, S. (2016). Gaydar culture: Gay men, technology and embodiment in the digital age. Routledge.

인터넷을 위시로 한 기술의 발전이 남성 동성애자 하위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 책이다. 지난 10년간 웹 기반 플랫폼이 발전하고 그 발전에 발 맞추어 게이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매체가 변화하는 동안, 이 변화의 바탕에 어떠한 형태의 남성 동성애자 문화가 상정되어 왔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 Blackwell, C., Birnholtz, J., & Abbott, C. (2015), “Seeing and being seen: Co-situation and impression formation using Grindr, a location-aware gay dating app”, New media & society, Vol. 17(7), pp. 1117-1136.
  • Van De Wiele, C., & Tong, S. T. (2014), “Breaking Boundaries: The uses & gratifications of Grindr”, In Proceedings of the 2014 ACM international joint conference on pervasive and ubiquitous computing, pp. 619-630.
  • Hardy, J., & Lindtner, S. (2017), “Constructing a Desiring User: Discourse, Rurality, and Design in Location-Based Social Networks”, In CSCW, pp. 13-25.

위의 세 논문은 HCI 분야에서 데이팅 앱과 동성애자 개인, 커뮤니티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첫 번째 논문에서 저자는 Grindr와 같은 데이팅 앱의 특성을 ‘Co-situation Technology’라고 개념화 하며 이 경험이 개개인에게 어떠한 형태로 경험되는지 인터뷰를 기반으로한 정성연구를 진행하였으며, 두 번째 논문에서는 이러한 데이팅 앱의 사용 목적을 ‘이용과 충족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마지막 논문에서는 데이팅 앱이 특정 형태의 사용자를 상정하여 디자인 되었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해, 이로 인해 배제되는 사용자-이를 테면 시골과 같이 낙후된 지역-들은 어떻게 데이팅 앱을 경험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1] 「Handkerchief code」, https://en.wikipedia.org/wiki/Handkerchief_code

[2] 「About Grindr」, https://www.grindr.com/

[3] Mitchell, D. (2000), Cultural geography: A critical introduction. Blackwell.

[4] Hillier, L., Mitchell, K. J., & Ybarra, M. L. (2012), “The Internet as a safety net: Findings from a series of online focus groups with LGB and non-LGB young people in the United States”, Journal of LGBT Youth, Vol. 9(3), pp. 225-246.

[5] Batiste, D. P. (2013), “’0 Feet Away’: The Queer Cartography of French Gay Men’s Geo-social Media Use”, Anthropological Journal of European Cultures, Vol. 22(2), pp. 111-132.

[6] Crooks, R. N. (2013), “The rainbow flag and the green carnation: Grindr in the gay village”, First Monday, Vol. 18(11).

[7] The New York Times(2014. 12. 12), 「 The Sex Education of Grindr’s Joel Simkhai 」.

[8] Campbell, J.E. (2004), Getting It on Online: Cyberspace, Gay Male Sexuality, and Embodied Identity, New York: Harrington Park Press.

[9] Blackwell, C., Birnholtz, J., & Abbott, C. (2015), “Seeing and being seen: Co-situation and impression formation using Grindr, a location-aware gay dating app”, New media & society, Vol. 17(7), pp. 1117-1136.

[10] 「 한국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불가능한 다섯 가지 이유 – 이송희일 」, https://chingusai.net/xe/webzine/125009

[11] 애너매리 야고스, 박이은실 번역 (2012), 『퀴어이론 입문』 (1판), 여이연. [Jagose, A. (1996). Queer theory: An introduction. NYU Press.]

[12] Crooks, R. N. (2013), “The rainbow flag and the green carnation: Grindr in the gay village”, First Monday, Vol.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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