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166.5km, 여행길 삼 년.

박준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wingofsnake@gmail.com


 

대전에서 166.5km. 유성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두 시간 십오 분, 지하철로 다시 이십 분.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십 분. 지난 학기,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녔던 등굣길이다. 이번 학기 동안 나는 학점 교류 제도를 통해 서울대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기회를 얻었다. 카이스트에서는 듣기 어려운 인류학과의 전공 수업을 수강하기 위해서였다. 수강한 과목은 의료인류학으로 의료 행위, 질병, 고통 등의 주제를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연구하는지 공부하는 수업이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낯선 분위기. 지난 삼 년간 같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과 지내온 것과는 전혀 다른 공기 속에서 수업을 듣는 일은 익숙함에 젖어있던 대학원 생활에서 새로운 자극을 주는 일이었다.

처음 내가 매주 서울에 수업을 듣기 위해 방문한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그나마도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 학교에서는 이 학과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없으니까.”라는 내 변명에 그러려니 납득하곤 했지만, 학업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그 먼 거리를 왕복하는 것이 비합리적이라고 여기곤 했다. 개중에는 내가 공부를 아주 좋아한다는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운 이 말에 나는 어중간한 웃음으로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매주 대전과 서울을 왕복하며 다니는 것은 고단한 일이었고, 어떤 특별한 목적 없이 다니기엔 부담스러운 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서울로 수업을 들으러 갔던 걸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지도교수님의 추천을 꼽을 수 있겠다. 인류학적 방법론을 주요 연구 방법으로 삼고자 한다면, 인류학과의 전공 수업을 들어보는 게 앞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은 이제 막 박사과정을 시작한 입장에서, 더욱이 지난 석사 논문 작성 과정에서 아쉬움과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을 반추해볼 때 분명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융합 학과 특성상 인류학이라는 분야의 수업을 둘 이상 수강하기 어렵다는 점은 불만족스러운 지점이었으니 그걸 충족시킬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연구 방법론을 배운다는 측면 이외에도, 내게는 조금 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이는 일종의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경구는 단순히 수업을 듣는 것으로 실천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질문은 아니다. 하물며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경험을 수업을 통해서 하겠다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체성은 학문적 정체성을 의미한다. 나는 어떠한 분야의 연구자가 될 것인가? 내가 사고하는 방식은 어떤 학문적 전통의 영향 아래에서 이루어지는가? 나는 어떠한 태도로 연구 대상을 설정하고 그들을 바라볼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대학원에 들어온 이래로 계속해서 고민해왔지만, 여전히 명확한 대답을 내리기 힘들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걸어갈 방향을 결정함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나의 고민은 내 학술적 궤적을 통해 구성되어 왔다. 나는 카이스트에서 학부를 마친 후 현재의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이는 학문적으로 큰 전환이었다. 이전까지 자연과학과 공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해왔던 내가 급작스럽게 사회과학으로 학문의 영역을 옮겨간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인식의 격차가 존재했고, 그에 적응하는데 대학원의 첫 일 년을 써야만 하기도 했다. 허지만 여전히 나는 과학과 공학을 전공했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내 연구 주제 선정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융합 학과에 재학 중인 것도 영향이 있었다. 우리 학과는 일반적인 행정학이나 정치학 기반의 정책학과와는 달리, 조금 더 다양한 인문, 사회과학적 배경을 가지고 정책을 구상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역사, 과학기술학, 인류학, 정책학, 그리고 철학 등 다양한 분과의 수업을 이수하게 된다. 융합 학과에는 분명히 장점이 있다. 다양한 학문적 사유를 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사물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서로 다른 영역을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견해를 습득할 수 있고 이를 자신의 연구에 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영역을 살펴보는 만큼, 어느 정도 확고한 중심을 잡을 필요성이 필요하며 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구축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의료인류학 수업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번 수업에서 읽은 논문과 책의 저자 중에는 의료인류학자이면서 의사인 경우가 제법 섞여 있었다. 이들의 논지는 자신의 의사로서의 경험과 가치관이 강하게 묻어났고, 이는 다른 인류학자와는 차별화된 느낌을 주곤 했다. 또한 몇몇 저자들은 의사로서의 자신과 인류학자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주곤 했다. 물론 이들은 정형화된 학과의 트랙 위에서 자신의 학술적 기반을 구축해온 사람들이며, 내가 처한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균형 잡기와 이질적 경험이 투영된 결과물을 접해보는 것은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을 어렴풋이 비춰주는 듯했다. 중심으로 삼은 학문 분과 위에서 서로 다른 영역의 경험과 시선을 녹여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의료인류학 수업에서의 대화가 마냥 편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사회과학과 관련된 내용을 삼 년가량 공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아직도 낯선 영역이 훨씬 더 많이 있다. 내가 그간 맛본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며, 그 거대한 얼음덩이가 수면 아래 감추고 있을 두꺼운 뿌리를 여전히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학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사회과학은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담화의 결과물이다. 반면 내가 본 것은 비교적 근래의 논의들 중심으로, 아무래도 많은 연구가 인용하고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론과 관점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이는 수업 시간에 전공을 계속 이수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더욱 두드러지는 감정이었다. 간간이 언급되었던 막스 베버나 부르디외 같은 굵직한 사회과학자들의 이름이 내게는 마치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는 팔촌 친척쯤의 이름과 같이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했던 논의와 주장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짧게 언급만 되는 학생들의 인용을 영문 모르고 들어야 했다. 수업 방식의 익숙함과는 달리,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무척이나 먼 공간으로 왔구나 하는 실감을 느끼곤 했다. 세 시간 걸리는 등굣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축적된 거리가, 그 자리에는 있었다.

내가 이번 사 개월간, 서울을 매주 왕복하며 얼마나 이 거리를 좁혔을지는 잘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학문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앞으로도 이 거리를 계속 줄여가야만 할 것이다. 비록 당장 급한 공부는 내 연구 주제와 관련된 글들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내가 느꼈던 거리감을 좁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연구 주제에 관한 공부 이외에 추가로 내가 여태껏 접하지 못했던 이론적 논의들을 알아가는 일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이론들을 내 연구 주제 그리고 내 이공계 배경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내가 어떤 학술적 위치에 서고자 하는지 확실히 결정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 대학원에 있으면서 나는 인류학적 연구 과정을 중심으로 정책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 나는 인류학자 워너비에 지나지 않기에, 어떤 확고한 중심을 잡지는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는 결국 내가 앞으로 박사 과정을 수행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연구 활동을 이어가면서 확립해 나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 고민을 안고 대학원 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 발걸음의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 나보다 앞서나간 이들 간의 먼 거리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남긴 발자취가 내 이후에도 여행을 시작할 이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읽을거리

읽을거리_폴 파머 논문

Farmer, P. (1996), “On Suffering and Structural Violence: A View from Below” Daedalus Vol. 125,No. 1, pp. 261-183.

의사이자 활동가로서의 경험이 어떻게 인류학적 연구에 반영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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