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QR. U: 전문연구요원, 출석, 그리고 신뢰 시스템

박사과정 야시마작전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개근상을 받았다. 3년간 학교에서 요구하는 수업을 모두 들었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감사 인사를 받는 기분은 꽤나 얼떨떨했다. 엄밀히 말하면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칭찬을 받았다고 해야 한다. 학교가 개근상을 수여한 근거는 나의 출석부 기록일 뿐, 학교 생활 동안의 수업 집중도 측정 기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후자를 측정할 수 있었다면 개근상은커녕 졸업장도 못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진학하니 상황이 달랐다. 초, 중, 고등학교처럼 출석 기록 양식이 표준화 되어있지 않았고 출석이 어떻게 성적에 반영되는지 또한 교수님마다, 과목마다 멋대로 였다. 심지어 출석을 체크하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름을 부르며 출석부에 기록하는 전통적인 방식도 여전히 존재했지만, 조금 더 복잡한 방법을 동원해서 출석을 체크하는 수업들이 많아졌다.

의무교육 기간에 비해 대학의 수업 환경은 강의실도 크고, 학생들도 많고, 교수님들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즉, 반드시 본인이 아니어도 출석을 기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했다. 대리출석(대출)은 간간히, 아마도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일어났고 실제로 꽤 잡아내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출석을 두 번 부르는 수업도 있었고, 어떤 수업에서는 과목 조교가 교실 사진을 찍어 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카카오톡을 활용한 즉석 출석체크를 해 본 기억도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과정을 밟으며 전문연구요원(전문연)에 편입되자 상황은 다시금 달라졌다. 출석이라는 행위는 여전히 내 일상을 따라다녔지만 더 이상 그 누구도 내게 출석을 모두의 앞에서 매일매일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굉장히 주체적이며 자율적으로 내 출석을 신고해야 했다. 출석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전처럼 누군가가 나의 학업적 성실성이나 평가에 대해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경우에 따라 복무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안내문 한 줄의 효과가 더욱 대단했다. 대학원생 겸 전문연의 언어로 말해보자면, 나는 출근을 찍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을 찍으며 하루를 마쳤다.

출퇴근은 “찍어야” 하는 것이었다. 혹은, 나의 출퇴근은 지정된 시간에 찍혀야만 했다. 내가 복무했던 기관은 전문연의 출퇴근을 QR코드를 통해 관리했고, 전문연들은 이를 찍는다고 표현했다. 돌이켜보면 물리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너무나 적합한 단어였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편, 시스템 밖에서 보기에는 굉장히 신기하고 이상해 보였던 것 같다. 복무기간 중 출근이나 퇴근 찍는 모습을 본 친구, 선배, 후배들로부터 “정말 그렇게 하면 출퇴근이 되는 거냐” 라는 질문을 자주 받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시스템은 보기보다 매우 복잡하게 굴러간다. 겉보기에는 1)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대개는 건물 출입구 옆 기둥에 있는) 단말기를 찾아 2) 앞에 선 뒤 3) 화면을 터치해 단말을 활성화시키고 4) 스마트폰을 들어 5) 무언가 클릭을 반복한 뒤 6) 단말에 폰 화면을 내민다는 별 것 아닌 과정을 거친다. 각각의 절차는 아주 단순하고, 실제로 1) 에서 6)을 수행하는 데에는 다 합쳐도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허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무려 1분여씩이나 걸릴 수 있는 작업이다. 게다가 여섯 가지 미션을 수행하던 도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결과적으로는 출퇴근을 체크 할 수 없는 취약한 구조이다. 2000년대 초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99초 스탠바이 큐>라는 예능 코너처럼 말이다.[1]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더 복잡하다. QR 코드는 전문연 개개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관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마트폰 앱을 통해 관리 시스템에 접속해 학생 개인 계정으로 접속을 해야만 출퇴근용 QR코드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리고 계정을 스마트폰 한 대에만 귀속시켜 여러 스마트 기기를 옮겨가며 가상 대리출석을 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했다. 물리적으로는 터치스크린에 클릭하는 손가락질의 연속이다. 기관에서 설치를 요구한 인증 앱을 스마트폰에서 작동시키고 QR코드 생성을 누른다. 그러면 기관 내 학사시스템과 연동된 로그인을 요구 받고, 여기에 로그인 함으로써 지금 이 스마트폰에 인증된 사용자 A가 학사시스템에도 사용자 A의 아이디를 통해 로그인했다는 입증 기록이 완성된다. 이렇게 빡빡한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QR 코드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로그인 후 생성된 코드는 15초간만 유효하다. 해당 QR코드를 인증한 사람이 단말 앞에 서 있다는 증거로서 15초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다행히도 15초가 지났다고 해서 모든 과정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새로 고침을 눌러야 하는데, 대개의 경우 단말 앞에 서기 전부터 QR 코드 생성 과정을 시작하기 때문에 한 손으로는 새로 고침을 누르며 다른 손으로는 단말의 QR 코드 인식 버튼을 누르는 멀티 태스킹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스마트폰은 내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QR코드를 생성하고 이를 단말기에 찍는 전문연”만이 시스템에 기록되는 존재가 될 수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특수한 조건 덕에 전문연 집단은 나름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얻었다. 출근 시간이 마감될 무렵 단말 앞에 줄을 서 있는 20대 중후반의 남정네 무리 라든지, 마찬가지 시간에 아무 이유 없이 엄청나게 숨을 헐떡이며그리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열심히 조작하며건물 1층 문을 향해 달려가는 남정네 같은 조금은 이상한 묘사가 필요한 집단이 되었다. 과학기술이 일상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는 식상한 멘트는 복무기간만큼은 현실 그 자체였다.

인간의 시스템(장부에 사인하는 출퇴근 관리 체계)에서 인간과 기계의 시스템(특정인이 인증한 QR코드를 주어진 시간 안에 인식시키는 출퇴근 관리 체계)으로의 전환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예능과 같은 릴레이 미션을 하루에 두 번씩 소화해야 하며, 이에 실패한 날은 시스템 전체의 신뢰를 저해하는 오류(error)가 되었다. 전자식 인증 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출퇴근 시에 매번 학과 사무실에 들러 종이로 출력된 장부에 시간을 적고 사인을 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수기 방식의 경우,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기에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자식 시스템과 같은 릴레이 미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인을 하다가 살짝 미끄러졌다고 해서 다시 학과사무실 문을 여는 과정부터 시작했어야 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디버깅(debugging) 당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어째서 출퇴근을 찍지 않았는지”에 대한 사유를 작성하라는 요청은 정말로 이유를 적으라는 것인지 혹은 반성문을 적으라는 것인지 나를 헷갈리게 했다. 이유 없는 오류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복무 초기에는 단말 앞에 서서 QR코드를 찍는다는 행동 자체가 일상과 너무나 괴리되어 있어 익숙해지기 힘들었고, 이후에도 딱히 대단한 이유 없이 그저 까먹고는 했다. 허나 사유서에 대놓고 “까먹었습니다” 라고 적지는 못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전산 시스템을 대상으로 까먹었다고 말하기에는 무언가 변명 같았고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2]

복무 관리 규정은 아마도 지속적으로 바뀌어 왔을 테지만, 최근 몇 년간 변화의 핵심은 전산화에 있다. 모든 기관이 QR코드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QR코드가 하나의 옵션이 된 이유는 결국 복무관리 전산화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전문연의 복무관리를 다루는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의 관리규정>의 32조와 33조에 따르면 관할지방병무청장이 개인별 복무기록을 전산화면에 입력해야 하고, 특히 대학원 박사과정의 경우 2013년 8월 신설된 조항에 따라 “연구요원의 출·퇴근 관리는 전자식 출입관리시스템을 활용하여 관리하여야 한다. 다만, 복무 인원 등 규모가 적어 전자식 출입관리시스템 관리의 실효성이 낮은 경우 관할 지방병무청장과 협의하여 별도의 방식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3] 즉, 수기는 허용하지 않으며 전산 기록을 통해 관리하라는 것이다.

전산화를 통해 기록은 정교해졌다. 이전과는 달리 출퇴근은 초단위로 체크되었고, 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미에서 무의미한 일이 되었다. 처음에는 최근 사회 각계에서 보이는 데이터 하이프(data hype)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단 기록이 촘촘해지고 많이 모여 전산화되면 지금보다는 무언가 좋아질 수 있으리라는 일방적인 기대에 편승한 듯 보였다. 어쩌면 처음에는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난 3년간 운영해온 시스템을 보면 일이 그런 방식으로 풀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전산화의 초기 도입 의도에 복무관리 강화라는 맥락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결국 더 많고 자세한 데이터가 있으면 관리가 쉬워질 것이라는 믿음의 존재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굳이 개개인이 복무 관리의 틈을 노리는 노력을 들일 정도의 상황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온전히 QR코드의 기술적 특성 덕분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복무관리 시스템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꼭 기술적인 일만은 아니었다. 물론 3년간 자잘한 기술적 문제들을 겪었고, 결과적으로는 대부분 기술의 영역 에서 개선되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어떤 의사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고, 개입할 수도 없었다. QR코드를 통해 나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입증했지만, QR코드가 나에게 시스템의 상황을 보고해 줄 의무는 없었다. 기술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혹은 신경 쓰지 못한 자잘한 문제들은 대개 전문연들이 스스로의 기록을 책임지는 형태로 해결해야 했다. 계속해서 고장 나는 단말은 아예 머릿속에서 존재를 지우고 없는 셈 치기로 했고, 간혹 일어나는 단말 인식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출퇴근 기록에 접속해 내역을 체크했으며, 앱 관련 문제나 단말 관리와 배치에 대해 의견을 써서 출퇴근 시스템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나는 시스템의 관리대상이면서 유지보수 센서(sensor)이기도 했던 것이다.

인간과 기계의 시스템은 인간만의 시스템보다 비싸고 복잡하며 손이 많이 간다. “전자식 출입관리시스템을 활용”하라는 결정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세부 질문이 필요하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어떤 투자를 할 것이며, 단말을 어떻게 배치하며, 앱은 어느정도 사양으로 구축하고, 학교는 어느 정도 수준의 유지보수 투자를 할 것이며, 데이터는 어떤 규정을 통해 누가 관리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이는 한정된 리소스의 지속적 분배에 대한 의사결정 문제로서, 지극히 정치적(political)인 질문들이다. QR코드는 이 질문들에 대해 현재로서는 가장 실현 가능한 답을 줄 수 있는 합의점이었을 것이다.

QR코드로의 전환은 그 누구를 자유롭게 해 주지도,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해 주지도 않았다. 럭키 금성의 1985년 광고가 POS 기계를 통해 업주들을 자유롭게 해주리라는 기대를 심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QR코드를 통한 복무관리는 실패했는가라는 식상한 질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 빡빡하고 정확한 관리라는 서사에서 한 발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고 답을 할 수밖에 없다. POS기가 선진경영관리/경영혁신 이라는 서사를 벗어나야 의미를 찾을 수 있듯이, 다양한 서사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기회를 제공한다.[4]

한 발 밖에서 보면 QR코드는 전문연 제도가 내포한 다층적 논의를 복무 관리의 신뢰도라는 지엽적 논의로 환원시켰다. 어느새 복무 관리가 잘 이루어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문연 제도 전체의 신뢰를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되었다. QR코드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전문연구요원의 “출석”이라는 개념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대신, QR코드가 잘 작동하는지, 이것을 통해 전문연구요원의 존재를 증명해낼 수 있는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산화 이후의 전문연 시스템 경험은 마치 동사가 없는 문장을 하루에 두 번씩 읽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QR한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행위인지 복무기간이 끝날때까지도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과연 그 QR코드는 정말로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 여전히 시스템을 속이는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구멍이 존재하는데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QR코드를 믿을 것인지 확실한 것은 없다. 심지어, 수기로 관리하던 시절보다 의심할 부분이 늘어난 기분이 들기도 한다. QR코드의 도입이 아무런 성과 없는 시도는 아니겠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피하기 위한 기제로 작동한다면 복무 관리가 진일보한다 해도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알 수 없게 된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QR함으로써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확인하지 못할 영역을 더욱 확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읽을거리

읽을거리1. 컨트롤 레벌루션

제임스 R. 베니거, 윤원화 번역 (2009),「컨트롤 레벌루션: 현대 자본주의의 또 다른 기원」, 현실문화연구.

많은 저작들은 인류의 역사를 다루며 다양한 시대 구분을 시도하지만, 대개의 경우 약간의 시기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인다. 제임스 베니거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통제해왔는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조금은 다른 역사적 시각을 제공한다. 책을 읽고 나면 ‘더 많은, 더 자세한 데이터’와 ‘신뢰’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다.

 

읽을거리2. 관료제 유토피아

 

데이비드 그레이버, 김영배 번역 (2016),「관료제 유토피아: 정부, 기업, 일상에 만연한 제도와 규제에 관하여」, 메디치미디어.

일견 당연하게 여겨지는, 정부의 작동 원리인 ‘관료제’에 대한 낯설게 보기를 제공한다.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관료적 규칙이 사회 전반에서 적용/변용되고 있음을 주장한다. 우리가 왜 “신청서와 결재서류에 파묻혀” 끊임없는 증명을 요구 받는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1] <슈퍼 TV 일요일은 즐거워>의 인기 코너. 출연진들이 99초 안에 8개 혹은 9개 정도의 작은 미션을 연달아 수행하며 광고를 찍어내는 포맷이었다. 중간에 하나라도 미션이 실패하면 사실상 전체 미션을 실패하는 구조였다.

[2] 허나 이리저리 돌려 작성하기는 해도 결국은 까먹었다는 말을 써서 낼 수밖에 없었다.

[3]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전문연구요원 및 산업기능요원의 관리규정”을 검색한 뒤, 제 5장 복무관리 항목을 읽어보면 전문연의 실질적인 복무 규정 전반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4] 신희선 (2017), 「May the POS be With US: POS 시스템의 사회기술사」 『과학뒤켠』 2호, pp.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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