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정말로 ‘새로운 세상’일까?: SF로 살펴본 메타버스의 가능성

토끼한마리
서바이벌SF키트
feel88free@gmail.com

공상주의자
서바이벌SF키트
yooj1215@gmail.com

팟캐스트 <서바이벌SF키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SF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120회가 넘는 방송을 통해 가능한 넓은 스펙트럼의 SF 소설,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을 다뤘다. 나아가 각 매체의 특성이 SF라는 장르의 특징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경험하게 하는지 탐구하고 있다. SF(Science Fiction)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신 과학 뉴스를 다루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도 SF적으로 바라본다.

SF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과감한 상상을 펼쳐 보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왜곡되어 오히려 적나라한 현실 세계의 거울상을 보기도 하고, 미래 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읽어 내기도 한다. 또 SF는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가능성을 가장 다채로운 시선으로 탐색하는 장르다. <서바이벌SF키트>는 과학이 세상의 방향을 크게 결정짓는 지금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SF를 소개한다.이 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에 대해 <서바이벌SF키트>의 두 진행자 ‘토끼한마리(이하 토끼)’와 ‘공상주의자(이하 공상)’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메타버스의 정의가 무엇인지, 어떤 매체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지, 메타버스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SF 작품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왜 하필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메타버스는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메타버스를 통해 열리는 세계는 진정으로 ‘새로울’ 수 있을까?

도대체 메타버스가 뭔데?

토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가 더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4차 산업혁명 대란 때 처럼 대세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일단 ‘메타버스’라는 용어의 기원이 SF 소설이라는 것이 저희 같은 SF 팬에게는 인상적이네요.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 크래시(1992)>에는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가 등장하는데, 3차원 영상과 소리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도시를 건설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등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에 제약을 받지 않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요.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메타버스’는 어떤 의미일까요?

공상> 메타버스의 정의는 아직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업계, 학계 등에서 메타버스를 다르게 정의하고 있는데요. 미국전기전자학회에서는 2012 국제 사이버세계 학회에서 메타버스를 ‘모든 콘텐츠가 사용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집단적이고 지속적인 온라인 3차원 가상세계’[1]로 정의했습니다. 그 외에도 “모든 사람들이 아바타를 이용하여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게 되는 가상의 세계[2]”, “실생활과 같이 사회, 경제적 기회가 주어지는 가상현실 공간(류철민)[3]” 등 여러 서로 다른 정의들이 있는 것 같아요.

또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에서는 메타버스를 ‘가상 차원으로 증강된 물리적 현실과 물리적으로 고정된 가상공간의 융합’[4]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나아가 두 축을 기준으로 메타버스를 네 가지로 분류한 정의도 흥미로워 소개합니다.

증강(Augmentation)과 시뮬레이션(Simulation): 물리 세계를 기능적으로 확장하고, 인지능력을 향상하는 기술, 또는 현실 세계를 모방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술
내적인 것(Intimate)과 외적인 것(External): 개인의 정체성이나 대상을 표현하고 확장하는 기술, 또는 외부 세계의 구현에 집중하는 기술

1사분면부터 차례로 ‘라이프 로깅’,‘ 증강 현실’, ‘거울세계’, ‘가상 세계’인데요. 이 정의대로라면, 가상 디지털 세계의 무언가가 현실과 융합되어 있기만 하면 다 메타버스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림 1> ASF의 정의에 따른 메타버스의 네 가지 분류 [4]

토끼> 예를 들면 Fitbit, 스마트 워치 등으로 자신의 생활을 수치화 하고 기록하는 라이프 로깅, 구글 어스, 네이버/다음 지도 처럼 정보적으로 확장된 거울세계, 싸이월드 미니홈피부터 시작해서 요즘 유행인 ZEPETO까지, 가상의 아바타를 활용하는 게임과 커뮤니티도 모두 메타버스로 볼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 코로나19 전자출입명부에 QR코드로 체크인하는 행위도 내 삶의 궤적을 디지털 세계에 기록하는 라이프 로깅이죠. 열화상 카메라가 오가는 사람의 체온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모습도 현실의 장소에 부가적인 정보 데이터를 쌓아 올리는 증강현실적, 거울세계적 확장인 것 같아요.

공상> 제가 어릴 때 자주 했던 팝플도 기억나네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서비스한 게임인데, 커다란 여객선 안에서 자기만의 선실을 꾸미거나 다른 사람의 선실을 구경하고, 낯선 사람과 미니게임도 즐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이었어요. 특히 아바타를 열심히 꾸몄던 기억이 있네요. <스노우 크래시>에서 영감을 받은 온라인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 라이프>도 2003년에 출시되었죠.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최근에 유행하고 있지만, 그 개념은 꽤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것 같아요.

토끼>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로 점철된 생활을 하고 있죠.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앞으로 도래할 메타버스’의 의미는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상세계 속 제2의 현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새로운 메타버스는 어떤 형태로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될까요?

메타버스는 어떤 매체를 통해 구현될까?

공상> 우선 머리에 쓰는 고글형 디스플레이와 VR 컨트롤러를 통해 경험하게 될 것 같아요. 두 기기를 함께 묶어 ‘VR 기기’로 부르겠습니다.

<그림 2> 헤드업 디스플레이 + VR 컨트롤러 ©Oculus VR

작년까지만 해도 VR 기기의 전망이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VR 기기의 가격이 너무 비싼 데다가, 기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 없어서 어떤 회사도 콘텐츠를 만드려고 시도하지 않았어요. 비싸기만 하면 다행인데, 성능이나 무게도 만족스럽지 않았고요. 마치 벽돌폰이라고 불리던 1980년대 핸드폰이 생각나죠. 그런데 2020년 3월에 유명 게임회사 밸브가 VR 기기 전용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출시했습니다. 게임 속의 물건과의 풍부한 물리적인 상호작용, 3차원적인 퍼즐의 활용, 멀미와 피로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게임 설계 등, VR 게임이 갖춰야 할 요소와 기준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게임도 크게 흥행하면서 VR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줬어요. 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VR 기기를 구매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5] 더불어 작년 10월에 페이스북 자회사인 오큘러스에서 출시한 VR 기기 ‘오큘러스 퀘스트 2’는 비교적 싼 가격에도 적정 성능을 갖춘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덕분에 VR 기기가 더 널리 보급되었습니다.[6]

그렇다고 VR 기기의 전망이 과연 밝은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요. 일단 VR 기기의 주요 용도가 게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페이스북에서 3차원 VR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호라이즌’, 가상 사무실 공간 ‘인피니트 오피스’ 등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널리 보급되기 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가정용 컴퓨터의 사례를 보면, 컴퓨터 게임이 발전하면서 컴퓨터도 함께 발전했거든요. VR 기기도 언젠가 컴퓨터, 스마트폰과 함께 가정용 필수 전자기기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대신, VR 기기로 메타버스에 접속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토끼> VR 기기 외에 다른 기술을 이용한 메타버스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20년 전 일본에서 처음 고안된 이후로 계속 발전하고 있는 ‘전자혀’나 ‘전자코’ 기술을 통해 미각, 후각을 디지털화 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 나올 지도 모르겠어요. 김보영 작가의 단편 <고요한 시대>에도 혀로 호로록 빨아들인 미역국의 맛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업로드 하는 장면이 나오죠. 또,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 영화 <매트릭스> 등 많은 SF 작품에는 헤드기어 형으로 뇌 신경에 직접 접속해 가상현실을 실제 세계처럼 느끼게 하는 장치가 등장합니다. 아직 VR 기기조차 무겁고 불편한 지금은 조금 먼 이야기인 것 같지만, 일론 머스크의 벤처회사 ‘뉴럴링크’가 뇌 속에 직접 심는 칩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겠네요.

공상> 정말 그러네요. 이렇게 차세대 메타버스가 더 광범위하게, 밀접하게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영향을 주게 되면 사회상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한데요.

SF에서 메타버스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나?

토끼> SF 작품들 중에는 메타버스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아서, 힌트를 좀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썸머 워즈(2009)>인데요. 그야말로 메타버스를 구현한 가상세계 OZ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아바타를 이용해 접속하고, 쇼핑, 게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즐길 수 있음은 물론, 교통, 경제, 행정 등 현실 세상의 모든 시스템이 OZ라는 플랫폼 속에서 운영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OZ가 해킹당하면서 사회 시스템이 마비되고, 응급 상황 알림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사상자까지 발생합니다. 주인공 일행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죠. 실제 세계에서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음침한 인물이 OZ 세계 속에서는 유명한 인기인이 되기도 합니다. 물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가상세계에서는 순식간에 힘과 의지를 모아 강력한 적을 쓰러트리기도 하죠. 가상세계의 특징을 잘 보여준 작품인 듯합니다.

공상> 인터넷이 3차원 가상세계처럼 묘사되고, 인터넷 세계에서 자신의 가상 신체를 생성해 날아다니는 장면은 SF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죠.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후지이 다이요 작가의 소설 <진매퍼 풀빌드>,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에 비슷한 묘사가 나오고요. 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엔딩 중 하나에도 그런 연출이 등장합니다.

토끼>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도 떠오르네요. 소설은 2011년에, 영화는 2018년에 나왔죠. 작중의 가상현실 게임 ‘오아시스’는 처음에는 MMOSG(다중접속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개발되었지만, 점점 전 세계 인류가 일상적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을 하는 메타버스로 성장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 아무리 깊이 빠져들더라도 현실 세계에 우위를 두지만, 작품 속 세상에서는 가상세계를 현실 세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현실을 ‘리얼’, 즉 ‘진짜’가 아닌 ‘물리’ 세계라고 칭하는 부분에서도 이런 역전된 위계관계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작품도 결국은 현실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엔딩을 맞이합니다. 애니메이션 <낙원추방>도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리얼’로 여겨지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서버 디지털 세계에 머무르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신체를 합성하고 지구로 내려가는데요. 그러나 결국 현실 세계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전개가 이어집니다. 현실과 가상의 전복은 SF 작품에서조차 아직 너무 급진적인 설정인 듯 하네요.  언젠가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실재성’이라는 권력을 더 갖게 되는 날이 올까요? 그렇다면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가상세계가 현실세계만큼의 무게를 가질까?

공상> 우선 요즘 뜨거운 가상화폐는 실재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유명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2021년 6월 17일 기준 시가총액 800조 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어요. 가상화폐는 메타버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예를 들어 <디센트럴랜드>라는 메타버스 서비스에서는 가상의 공간이나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를 가상화폐로 사고팝니다. 가상화폐가 실제 화폐 만큼의 가치를 가지면서 가상세계 또한 실물경제적인 가치를 부여받고 있고요, 반대로도 작용합니다. 에너지 낭비와 환경 파괴, 가짜 코인, 범죄에 연루 될 가능성 등 가상화폐를 둘러싸고 아직 많은 논란이 있지만, 가상화폐가 이미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획득했다는 것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아요.

요즘 크게 유행하고 있는 ‘게임판타지’ 장르도 그런 경우를 종종 다루는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이 대표적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가상현실형 게임에서 ‘로그아웃’할 수 없게 되고, 게임 세계에서의 죽음이 실제 세계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게임 세계가 실제 세계 만큼의 중요성, 또는 ‘실재성’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죽음’, 또는 ‘유한성’이 가상세계가 ‘실재성’을 획득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네요.

토끼> 조금 결이 다르지만, 게임 속에서 고인이 된 가족의 옛 기록이나 편지를 만나고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도 생각 나네요. 한 게이머 커플은 코로나19로 결혼식이 취소된 것이 아쉬운 나머지 게임 <검은사막> 속 명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요. 샌드박스형 게임 <마인크래프트>에는 실제 세계에서 당국에 의해 검열되어 볼 수 없게 된 문서들을 아카이빙 하는 ‘검열 없는 도서관’도 지어졌습니다. 권력 우위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섞임은 이미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림 3> 마인크래프트 게임 속 구현된 ‘Uncensored Library’ [9]

증강현실에서의 메타버스는 어떤 형태일까?

공상> 혹시 증강현실을 주제로 다룬 SF도 있나요? 대다수의 작품들이 풀-다이브 해야 하는 가상세계를 소재로 삼고 있는 것 같지만, 증강현실에 대한 상상도 궁금하네요. 의외일 수도 있는데, 안경 형태의 AR 기기는 VR 기기보다 개발하기가 더 힘들거든요. 구글에서 만든 구글 글래스 시리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는 500만 원에 육박할 정도로 비싸요. 일상생활에서 착용해야 하니 작고 가벼워야 하고, 전력 효율도 좋아야 하는데, 투명한 고화질 디스플레이를 만들기도 정말 어려우니까요.

토끼> 증강현실은 어떻게 보면 현실 세계를 ‘가상현실화’ 시키는 기술이 아닐까 합니다. 몇 년 전 게임 <포켓몬 고>가 유행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감이 오죠. 우선 애니메이션 <전뇌코일(2007)>이 증강현실과 가상세계를 아주 실감 나게 그린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안경’을 쓰고 있는데요. 이 ‘안경’을 통해 현실 세계에 겹쳐진 증강현실 세계, 일명 ‘전뇌 공간’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구글 글래스가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경으로만 볼 수 있는 전뇌 애완동물이 등장하는가 하면, 전뇌 공간의 버그가 작품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실제 몸과 전뇌 몸이 어긋나버리기도 하고, 전뇌 공간의 버전이 업데이트 되지 않아 실제 물질세계와 괴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메타버스를 다룬 작품들은 AR보다는 VR 기술을 차용한 경우가 많은데, 증강현실을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룬 몇 안 되는 작품이에요. 애니메이션 자체의 완성도(이야기, 작화, 연출 등)도 아주 높아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그림 4> 애니메이션 <전뇌코일> ©磯 光雄/徳間書店・電脳コイル製作委員会 [10]

‘메타버스’의 정의를 좀 더 넓게 잡는다면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애니메이션 <싸이코패스(PSYCHO-PASS)(2012)>입니다. 시스템이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모든 인간의 심리 상태나 성향을 측정해 수치화하고, 실시간으로 감시하는데요. 이 수치를 기반으로 사회활동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직업 선택까지 이 수치에 따라 제한되기도, 추천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총 형태의 ‘도미네이터’를 사람에게 겨누면 ‘범죄 계수’라는 수치가 측정되는데, 이 수치에 근거해 예비 범죄자를 걸러내고 미리 구속, 처벌합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닮은 설정이기도 하죠. 중앙 시스템과 연결을 끊거나 가짜 데이터를 씌우는 식으로 범죄 계수를 해킹해, 법의 감시망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건도 나옵니다. 현실에서 범죄를 저지를 때 홀로그램 아바타를 입어서 신원을 위장하기도 합니다. 가상세계가 존재감 있게 등장하기 보다는, 현실 세계가 가상세계의 성격(익명성, 수치화, 온라인)을 띄게 된 사회를 잘 묘사하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왜 지금 메타버스에 주목하는가?

공상> 그럼 이미 우리에게 익숙했던 메타버스 개념이 최근에 갑자기 화제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토끼> 아무래도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이 아닐까요? 기존에도 우리는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제반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지만, 팬데믹이 언택트 사무 환경 구축을 강제하고, 촉진시켰죠. 덕분에 Zoom 같은 화상 회의 플랫폼을 통한 언택트 모임, 온라인 학회 등이 보편화 되었고요. 실제 거리에 상관 없이 온라인 회의를 하다 보니 해외 연구자와의 협동 연구도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랜선 콘서트도 열렸죠. 방탄소년단이 2020년 개최한 <방방콘> 온라인 공연은 전 세계 동시 송출해 107개 지역 75만여 명이 관람했다고 합니다.[7] 

공상>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척 시대 이후 미지의 공간을 발견하거나 확장하는 경험은 드물어졌잖아요. 우주 개발도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행성에 인간이 정착하는 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일 것 같고요.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는 가상세계에는 재미 외에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황모과 작가의 <모멘트 아케이드>에서는 가상 현실에 접속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다운로드한 뒤 그 사람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체험하는 서비스가 등장합니다. 김보영 작가의 <고요한 시대>에도 비슷한 플랫폼이 등장하는데요. 젊은 대통령 후보가 후보 본인의 마음의 심상을 거짓과 왜곡 없이 보여주며 유권자들의 신뢰를 얻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토끼>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사람들이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한국 영화감독 8명이 연출한 SF 드라마 앤솔로지 ‘SF8’의 한 에피소드인 <증강콩깍지>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VR 데이팅 앱이 등장해요. 자신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어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죠. 3차원 가상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채팅을 나누는 VRChat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캐릭터로 바꿀 수 있어요. 요즘 MZ 세대에게 인기 있는 ZEPETO도, 자신의 아바타를 마음대로 꾸미고 AR 기술로 아바타를 조종하는 메타버스 기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죠. 이제는 온라인 세상의 가능성을 더 극한까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어요.

공상> 우리나라에 PC 통신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사람들은 PC 통신을 통해서 성차별에서 자유로운 완전히 평등한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 공간에서 젠더 벤딩(자신의 성별이나 기존의 성역할에 반하도록 행동하는 것)처럼 성역할을 전복시키는 실험적인 시도도 있었고요.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온라인 세계도 우리 세계와 다를 바 없이,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차별적인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8] 우리가 메타버스에 대해 여러 가지 장밋빛 예측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가상 세계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단순히 현실 세계의 복사판이나, 사회적 격차가 더 심화된 곳이 될 수도 있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메타버스라는 기술만을 낙관하기 보다는, 이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끊임 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SF 옴니버스 드라마 <블랙미러>도 가상현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도래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려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가상 세계에 빠져서 현실 세계에서 끊임 없이 착취 당하는 사회를 묘사한 에피소드 ‘핫 샷’, 소셜 네트워킹 앱이 현실 깊숙이 침투해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감시하는 사회를 묘사한 에피소드 ‘추락’ 등이 있습니다.

토끼>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그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이냐도 고민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네요.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목전에 둔 것일지도 몰라요. 결국 지금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어떻게 보완할 지, 정말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E. Ayiter, (2012), “Further Dimensions: Text, Typography and Play in the Metaverse,” 2012 International Conference on Cyberworlds, pp. 296-303, 원문: “Metaverse are collective, online, persistent, three dimensional virtual worlds in which all content is user-created…”

[2] 손강민, 이범렬, 심광현, 양광호 (2006), 「웹 2.0과 온라인 게임이 만드는 매트릭스 월드 메타버스」, 『ETRI CEO Information』, 제47호, p. 4.

[3] 류철균, 안진경 (2007), 「가상세계의 디지털 스토리텔링 연구」,  『게임산업저널』, 제1호, p. 33.

[4] Smart, J.M., Cascio, J. and Paffendorf, J. (2007), Metaverse roadmap overview,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 원문: “The Metaverse is the convergence of 1) virtually-enhanced physical reality and 2) physically persistent virtual space…”

[5] 「VR은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https://it.donga.com/31017/

[6] 「”지난해 VR 헤드셋 절반은 오큘러스”」, https://zdnet.co.kr/view/?no=20210311145606&from=pc

[7] 「방탄소년단이 또…107개 지역, 75만 명 함께 ‘방방콘’」, https://www.hankyung.com/entertainment/article/2020061560994

[8] 이민영, 권김현영 (2017), 「대한민국 넷페미사」, 나무연필.

[9] 「Building The Uncensored Library」, https://www.youtube.com/watch?v=vFKvjEV6muc

[10] 「電脳コイル」, https://www6.nhk.or.jp/anime/program/detail.html?i=c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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