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과 세계의 부조화는 무엇을 하는가?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 과정

강민경

mk.kang@kaist.ac.kr

*이 글은 2024년 가을학기에 전치형 교수님께서 진행하신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Disability and Technology’ 수업의 과제로 제출했던 서평을 각색한 것이다. 

“아!”

책상 서랍 모서리에 무릎이 부딪혔다. 벌써 몇 번째인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책상 서랍 모서리에 가끔 무릎이 부딪히고 부딪힌 자리에는 멍이 남는다. 그것을 까먹고 있다가 문득 아파서 무릎을 보면 멍이 남아있고 그제야 다시 책상 서랍 모서리를 떠올린다. 결국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모서리 보호 패드를 구매하고 책상에 부착했다. 여기서 나는 고통을 통해 무릎과 책상 서랍 모서리 사이의 거리를 인식한다. 잊고 있다가 가끔 눌리면 아픈 멍은 그것을 상기시킨다. 

페미니즘, 퀴어, 감정 연구 등 다분야 연구자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겪을 때 나는 내가 세계에서 머무는 장소로서 몸의 경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통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살아내는지, 우리가 세계에서 머무는 장소를 구성하는 표면, 몸, 대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지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1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고통은 무엇을 하는가? 또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다. 고통을 통해 비로소 인식하게 된 나의 몸과 세계의 부조화는 무엇을 하는가?

장애를 갖거나 질병을 가진 몸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한다(knowing). 그리고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세계를 바꾸거나 세계에 맞지 않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바꾸어낸다(making). 그렇게 바뀐 것들, 건축물이나 기술 말고도 창의적으로 발현된 몸짓들은 이전과는 또 다른 인식을 만들어낼 것이다(knowing). 장애인 디자이너이자 장애 디자인 연구를 하는 햄레이(Hamraie)는 이러한 상호 관계를 “knowing-making”2이라 일컫었고, 본 서평에서는 이 상호 관계를 기본 틀로하여 에이미 햄레이(Aimi Hamraie)의 Building Access라는 책을 소개할 것이다. 나아가 미디어 제작자이자 장애 및 인류학을 연구하는 아르셀리 도쿠마지(Arseli Dokumaci)의 책 Activists Affordances가 Building Accesss에 대해 어떠한 보충을 해줄 수 있는지도 함께 소개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나의 몸과 세계의 부조화는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좌 <그림 1> Building Access cover image (Aimi Hamraie, Building Access, 2017), 우  <그림 2> Activist Affordances cover image (Arseli Dokumaci, Activist Affordances, 2023)

무엇을 인식하는가?

햄레이의 Building Access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사용자(user)라는 개념이 어떻게 인식되고, 그것이 건축과 기술의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1960-1970년대에 접근성 보장에 관한 여러 법률이 제정된 것은 인권운동과 동시에 장애 인권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지만, 이보다 앞선 1940-1960년대에 장애인을 사용자에 포함하여 인식하게 된 것은 국가적 이유가 지배적이었다. 미국은 세계대전 중 장애를 갖게 된 상이군인의 사회 복귀를 위해  장애인을 고려한 건축물과 일자리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재활을 통한 상이군인의 사회로의 복귀를 목표로 건축물이나 산업의 사용자에 장애인을 포함시켰고, 이는 재활을 통한 국가의 인적 자원 확보와도 연관이 있었다.

또한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라는 개인이 접근성 디자인에 미친 영향도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된다. 메이스는 미국 중산층 백인 소년이었으며, 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를 갖게 되었다. 그는 휠체어 사용자였는데, 어려서부터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은 여러 공간 속에서 자라왔으나 가족의 도움을 통해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대학시절 접근성 건축 연구를 했던 메이스는, 1960-1970년대 장애인권 법제화 흐름에 맞춰 접근성 디자인 업무를 하다가 Barrier Free Design이라는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접근성 연구나 정책에 참여하며 접근성 디자인을 촉진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가 인종(race)과 성별(gender)을 고려하게 된 계기도 흥미로운데, 장애 여성이고 활동가이자 사회학자인 Lockhart Follin을 만나고 결혼하게 되며 그녀가 관심을 갖던 여성주의운동과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듯 장애 당사자 개인이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을 만나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했고, 이는 접근성 디자인과 관련 정책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미국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상이군인에 대한 재활 지원이 이루어졌고 메이스가 미국 중산층에서 태어난 백인이라 가족들의 지원 하에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을 짚어보면, 장애인의 권리 확장은 (인종과 빈부격차를 포함한) 모든 권력관계를 한 번에 완전히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즉 일정 부분은 기존의 권력에 기대어 다른 부분의 불평등을 허무는 방식이었다. 이는 다른 인권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일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사례에 기반해 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책에는 국가나 개인에 의해 ‘누가 사용자로 인식될 지’ 정해지는 방식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자신을 사용자로 인식시키고자 한 시도 역시 소개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인도(人道)의 경계석3을 직접 부수고 시멘트로 메워 거친 경사로를 만들었다는 “curb-cutting express(경계석 절단 표현)”이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가 “장애의 위치를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장애를 인식하는 방식을 재구성한다”4고 강조한다. 경사로를 통해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인 위치가 바뀐 것 뿐만이 아니라, 제도화나 지자체의 공사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장애인)자신을 인도의 사용자로 세계에 인식시키는 그 ‘방식’이 매우 급진적이고, 그것이 장애를 인식하는 방식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좌 <그림 3> Inaceessible curb5 , 우 <그림 4> 부순 경계석 일부6

이렇듯 Building Access에서는 장애인이 어떻게 사용자로 인식되고 디자인의 고려 대상에 포함되는 지를 보여주지만, 여기에서 드러나지 않는 인식 과정이 하나 있다. 바로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제한된 접근성을 인식하는 부분이다. Hamraie는 이 책에서 주로 공공장소의 제한된 접근성을 말하고 있고, 이때 접근성이 제한된다는 것을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로 환원하고 있지만, 나는 도쿠마지의 책  Activist Affordances가 햄레이의 접근성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보충해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Activist Affordances는 류마티스 관절염(rheumatoid arthritis)을 가진 환자들이 몸의 한계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 안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행동, 즉 어포던스(affordance)7를 발휘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이 접근성의 한계를 인식(perception)하는 과정을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개체가 해내는 일”8이라고 말하고,  이는 “수동적 주입이 아니라 성취(achievement)의 과정”9임을 강조한다. 자신과 세계를 이리저리 바꾸어 보는 과정(dynamic interplay10)을 통해 “변하는 것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는”11 적극적이고 섬세한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affordance(행동가능성)이 구성된다. 특히 저자는 제한(constraint) 안에서 발생하는 창의적인 즉흥성(improvisation)을 퍼포먼스12에 비유한다. Activists affordances는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미묘하고(micro), 순간적이고(ephemeral), 수행적인(performative)”13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행동이다.

이것도 투쟁인가?

바로 앞 섹션에서 언급된 것처럼 장애인을 단순히 관리의 대상자가 아닌, 건축과 기술의 사용자로 인식하는 것(knowing)에 따라 건축이나 기술 디자인(making14)이 바뀌었다. 따라서 투쟁의 목표도 이러한 장애 인식-생성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는 주로 신체장애인의 시위와 Mace와 같은 전문가 집단에서의 인식론적 투쟁(epstemic activism)을 통해 최종 목표인 ‘법제화’를 달성 해내는 방식이 있었지만 저자가 책에서 “계속해서 넓혀가야 하는 인간 범주”라고 언급한 것처럼, 법은 모든 장애인과 인간 범주15를 완벽히 보장하지 못한다. 법제화에 포함될 수 있는 인간 범주의 한계는 곧 법제화라는 달성 목표 자체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이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가 범주를 넓혀가야 하는 것에 주목하지만, 이 넓힌 범주가 법제화 또는 규제에 속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했을 때의 한계를 짚어보아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학자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취약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16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버틀러는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변하지 않는 취약성만 강조하는 방식을 취하면, 이런 주장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보호 즉 남성의 권력을 지지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17 해당 논리와 비교해보자면, 법적으로 명시된 장애인 권리의 범위를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건 ‘법제화’의 권력을 지지하고 그것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법에 명시되어 보장된 권리를 갖는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지며, 이를 위해 다양한 입법과 개정안을 요구하는 운동은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법제화라는 방식에만 기대게 되면 법제화 또는 권력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려워지고, 제도권 밖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보호를 말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Building Access에 나온 운동과 활동이 제도에 대한(제도 변화를 목표로 하는) 투쟁이라면, Activist Affordances는 제도 자체에 대한(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투쟁이라고 본다. 도쿠마지18는 책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이 시위 현장이 아닌 본인의 집에서 창의적인 몸짓을 통해 affordance를 생성하는 과정을 투쟁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투쟁(activism)의 뜻은 세상을 구성하는 것(world-making)”19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세상이 잘 구성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 (또는 그럴 수가 없다). 이들은 “세계를 바꾸기보다(change the world) 자기 자신을 바꾼다(change their actions).”20 자신 역시 세계의 일부이므로, 이러한 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성한다(build the world).21 

기술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햄레이의 Building Access에서는 연구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를 포함시키는 사례 또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기술을 만드는 사례를 소개한다.22 개인이 사용하는 향상된 기술을 강조하는 것은 종종 이러한 기술만 있다면 접근성에 문제가 없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재활(rehabilitation)” 담론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지향하는 크립 테크노사이언스(crip technoscience)는 기술을 통한 독립성(independency)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몸과 세계 사이의 “마찰(friction), 혼란(disorientation), 부적합(nonconformity)”23을 전략으로 삼아, “직접 디자인하고, 자신만의 도구를 만들고, 용도를 변경하는”24 과정을 말한다. 그리하여 “정치적이고 세계를 바꾸는 방식의 실천”으로 구체화된다. 

그렇다면 Activist Affordances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도구와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빗질을 할 때 손으로 빗을 들어 머리에 갖다대기에 한계가 있는 몸은, 머리를 숙여 손과 머리를 가까이 닿게 만든 후 빗질을 한다. 좀 더 창의적인 방식의 사용도 있다. 욕실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슬리퍼를 신고 샤워를 하고, 얼마간 사용한 슬리퍼가 자신의 발에 맞게 모양이 형성되면 그것을 운동화 깔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기술이 세계에 어떤 마찰을 드러내고 혼란을 주지는 않는가? 끝내는 세계를 바꾸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기술은 crip technoscience라고 부를 수 없는가?

햄레이의 Crip technoscience의 적극적인 기술 사용 방식과 비교하여 도쿠마지의 activist affordances를 보면, affordances는 기술에 몸을 맞춰내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방식의 기술 사용처럼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작가가 개체와 세계가 서로를 인식하는 과정을 적극적인 행위로 표현한 것처럼, 나는 기술에 몸을 맞춰내는 것 역시, 수동적 행위가 아닌 자신이 바꿀 수 있는/없는 기술과 자신이 바꿀 수 있는/없는 몸을 인식하고 균형을 잡아가는 적극적 과정으로 인식하기를 제안한다. 이는 마찰을 일으키고 실천을 만드는 방식의 기술만이 적극적인 기술 사용 방식임을 거부하려는 시도이다.

앞서 제시된 깔창을 다시 예시로 가져와보자. 우리는 수제화를 만드는 가게나 공장에 가서 발 모양을 본 뜨고, 그에 맞는 신발 또는 깔창을 제작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수반되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작업을 잘하는 또는 잘 맞는 수제화 가게를 찾기 위한 시행착오, 가게로 찾아가기 위한 이동, 수제화 제작에 드는 높은 가격 등은 신발의 개수가 많거나 교체 시기가 짧을수록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에서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가 이러한 옵션을 고려했는지 자세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용자는 이러한 방법과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비교하여 자신을 덜 힘들게 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주친 기술•사물과 자신이 완벽히 매끄럽게 맞지 않더라도 기술을 개조하는데 드는 시간, 돈, 노력 등이 버겁다면, 무조건 기술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방식으로 기술을 사용해 내는 것(affordance), 기술에 몸을 이리저리 맞춰보는 것이 더 적합하고 이 역시 다른 방식의 적극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crip technoscience는 매우 제한된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의심을 남겨볼 수 있다. 

다시 질문으로

다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나(우리)의 몸과 세계의 부조화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글 전반에 걸쳐 ‘부조화를 이용해 생산적인 방식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부조화로 존재하는 것 자체의 정치적 의미’ 사이의 긴장감을 느낀다. 현재 페미니스트 장애 담론에서 지배적인 전자의 입장을 Building Access에서 발췌해 왔고, 후자의 입장을 Activist Affordances를 통해 말하고자 했다. 하지만 부조화로 존재하는 것 자체의 정치적 의미를 말하다 보면, 추상적인 의미 부여 앞에 번번이 힘을 잃을 때가 있다. 결국 자위하는 방식의 정신승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부조화로 존재하는 것 자체에 머무르기보다, 부조화로 존재하는 것을 가시화하는 것을 통해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가시화는 제도적•물질적 결과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산적인 방식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과 구분된다. 다만 “살아가는 행위는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옹호하는 것”25이 되려면, 우리는 서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존재하기’와 ‘가시화’라는 두 행위의 경계를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두 가지 행동이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을 짚어두고 싶다. 존재하기 때문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도 맞지만, 드러내고(가시화되고) 인식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지점도 있다. 우리는 서로를 드러내고 인식하며 서로의 존재를 가능케 할 수 있다.

References

  • Dokumaci, A. (2023). Activist affordances: How disabled people improvise more habitable worlds. Duke University Press.
  • Hamraie, A. (2017). Building access: Universal design and the politics of disability. U of Minnesota Press.
  • 레거시 러셀. (2022). 글리치 페미니즘 선언. 미디어버스.
  • 사라 아메드. (2023). 감정의 문화정치: 감정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오월의 봄
  • 주디스 버틀러. (2020).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창비.

읽을거리

레거시 러셀. (2022). 글리치 페미니즘 선언. (다연, 역). 미디어버스. (원본 출판 2007년).

나의 몸과 세계의 부조화를 본 책에서는 “글리치”로 표현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의 “글리치” 존재들에 주목하고 이러한 존재들이 갖는 특성과 가능성에 주목한다. 글리치는 거부한다. 글리치는 우주적이다. 글리치는 디스한다. 글리치는 잠수탄다. 글리치는 오류다. 글리치는 암호화한다. 글리치는 반신체다. 글리치는 살갗이다. 글리치는 바이러스다. 글리치는 동원한다. 글리치는 리믹스다. 글리치는 살아남는다.


References

Dokumaci, A. (2023). Activist affordances: How disabled people improvise more habitable worlds. Duke University Press.

Hamraie, A. (2017). Building access: Universal design and the politics of disability. U of Minnesota Press.

레거시 러셀. (2022). 글리치 페미니즘 선언. 미디어버스.

사라 아메드. (2023). 감정의 문화정치: 감정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오월의 봄

주디스 버틀러. (2020).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집회의 수행성 이론을 위한 노트. 창비.


Notes

1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2023, pp. 72-73.

2  Aimi Hamraie는 접근성 디자인이 특정한 의미를 만들고(meaning-making) 세계를 만들어내는(world-building) 지점이라는 것에 주목하였다. 디자인은 이러한 “knowing-making” 과정을 통해 점차 많은 사용자를 포괄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Aimi Hamraie, Building access, 2017, p. 5). 책 전반을 걸쳐 ‘무엇을 아는가’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가 상호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3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서 턱을 만드는 돌이나 구조물

4  ibid, 101.

5  Inaccessible curb, late 20th century. (Courtesy of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Smithsonian Institution, Division of Medicine and Science)

6  In the late 1970s and early 1980s, the organization ADAPT in Denver, Colorado, broke apart sidewalks to protest the lack of accessibility features. This Denver curb cut made in 1978 is in the museum’s collection. (Courtesy of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Smithsonian Institution, Division of Medicine and Science)

7  Affordance는 한국어로 ‘행동유도성’ 또는 ‘행동가능성’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듯 하여, 본문에는 영어 발음 그대로 적었다. 작가는 본문에서는 해당 단어를 창시한 Glibson의 정의를 빌려와 “Affordance란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적인 속성에 의해 형성되는 행동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Arseli Dokumaci, Activist Affordances, 2023, p. 5). 

8  ibid, p. 40.

9 ibid

10  ibid, p. 100.

11  ibid, p. 40.

12  도쿠마지는” 퍼포먼스”를 자신의 이론에 결합하며, 장애인의 이동 반경으로의 축소된 환경과 극장에서 무대로의 축소된 장소를 비교한다. 이 둘 모두 축소된 환경에서 창의적인 작업이 촉진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어포던스들이 생겨나고 현실화된다고 주장한다. (ibid, p. 104.)

13  ibid.

14  특정한 의미를 만들고(meaning-making) 세계를 만들어내는(world-building) 형태로 (미주 3 참고)

15  Aimi Hamraie, Building Access, 2017, p. 10.

16  주디스 버틀러,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2020, p. 207.

17  ibid, p. 204.

18  Arseli Dokumaci, Activist Affordances, 2023

19 ibid, p. 5.

20 ibid.

21 ibid.

22  Aimi Hamraie, Building Access, 2017, pp. 104, 111.

23  ibid, 16.

24 ibid.

25 레거시 러셀, 글리치 페미니즘 선언, 2022,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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