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증빙을 위해 출장지에서 제일 싼 생수 한 병을 살 때나, 연구 도중 영수증 처리에 문제가 생겨 몇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연구자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자괴감을 자주 경험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본 보고서의 제목처럼 행정과 부담을 한 단어로 붙여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연구개발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연구행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항상 언급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행정적 요인에 의한 연구 비효율성 문제에 대한 인식은 꽤나 오래된 것인데, 그만큼 정부에서 제도개선 노력을 해왔고, 과학분야 전문 언론사인 대덕넷에서는 관련해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태 체계적인 방법으로 그 비용을 측정하고 실태를 파악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본 보고서는 매우 시의적절하게, 아니 오히려 너무 늦게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연구개발투자 비효율과 4차 산업혁명
패러독스는 규모와 성과의 측면에서 엄밀하지 않다. 그렇지만 “비효율”은 “문제”와 떨어트려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산업계는 1993년부터 나라 전체 연구개발금액의 73-75%정도를 투자했다. 이 중 전체 금액의 약 85%는 제조업계의 투자이다. 그 돈이 적당한 만큼의 성장을 가져왔더라도, 문제는 유효하다. 스웨덴은 역설의 시간 동안 발전했지만, 결과가 최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 정책 결정자들은 비효율을 문제 삼았다. 한국은 스웨덴처럼 다양한 비교대상이 없어 최선을 정의하기 어렵다. 투입-산출의 관점으로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유효한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물음을 돌릴 수도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정교하게 짜인 투입-산출의 관점이 있고 잘 실행되고 있는가? 정부가 혁신 시스템 내에서 제 역할을 확고히 잡으려면 투입-산출의 관점이 필요하지 않은가? 시스템과 시장의 실패를 진단하고 적절히 개입할 지점을 찾으면, 동시에 개입하지 않을 지점이 남겨지는지 묻는다.
논문학기에 원격지도 받기
S(24)는 2016년 12월 15일 석사학위 논문심사를 끝내고 석사학위 소지자가 되었다. 매년 1,000여명이 넘는 학생이 석사학위를 받는 KAIST에서 굳이 S의 석사학위가 왜 특별하냐 하면, 하필 논문 작성을 시작할 6월 말쯤 지도교수님이 독일 뮌헨으로 연구년을 보내러 가시게 되면서 그들 사이에는 약 8,700km의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진짜 거리. 이 글은 2016년 6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약 6개월 간 S가 어떻게 “원격지도”를 받고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글이다.
“니들이 독일 맥주 맛을 알아?” 맥주 한 잔에 담긴 일주일의 해외 활동 프로그램 기록
결국 독일 맥주의 빼어난 맛은, 전통과 변화 사이의 고민 위에 드러나는 독일인들의 가치관과 그들이 걷는 거리, 그리고 그들이 맥주를 즐기는 양조장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우리의 맥주, 우리의 과학기술정책 역시 그럴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 5인의 대학원생이 대한민국의 대전에서 다시 모였다. 뮌헨을 재현해보겠다며 족발을 배달시키고, 현지에서 맛있게 먹었던 굴라시 수프를 끓이고, 작은 프레즐 과자를 사고, 각자 뮌헨에서 사 온 귀한 맥주도 한 병씩 꺼내 들었다. 그럴 듯하게 흉내는 냈으나, 결국 이곳이 그곳일 수는 없었다.
삼천원으로 혁명하기
IT기술의 발달과 함께 매체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평등한 지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화된 매체에 비해 생산되는 정보는 비대칭적이다. 정보의 생산 대부분은 상위 몇 퍼센트조차 되지 않는 콘텐츠에 집중된다. 어제 개봉한 블록버스터라던가, 공중파의 아이돌 이야기라던가 하는 정보들이 매체를 잠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머지 대부분의 콘텐츠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정보는 유통되지 못한다. 그 사이의 물꼬를 트는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굳이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본 없이도, 인맥 없이도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해나갈 수 있고 이들에 대한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어 소비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는 일, 그것이 이루고 싶은 변화가 되었다.
“아이언 맨”과 엘론 머스크 : 기술 실천과 기술자본의 신화
만약 기술이 당연하게 자본과 결합하고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고 발전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비산업적-상업적인 방식으로 다루거나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기술과 자본의 결합의 결과물인 산업을 통해 대규모의 수요와 결합하고 자본이익을 내는 모든 것들은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도 정당화되어 실로 유의미한 것인지, 혹시 허섭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면제받게 된다. 이미 과학기술정책은 높은 정도로 산학 협력을 지향하고 있고, 주요 대학의 공과대학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함께 가르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기술과 자본(산업)은 분리불가능한 통합적 일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창업 열풍을 통해 바라본 KAIST의 미래
KAIST의 설립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그리고 앞으로는 가늠해보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국의 엔지니어란 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최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과거 헝그리정신으로, 밤낮없이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한국의 과학기술자들과 달리, 오늘날의 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가치의 충돌을 KAIST의 창업 관련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더는 조국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산업 역군’의 영광을 누렸던 오늘날 엔지니어는 어떤 가치를 바라보고 나아갈 것인가?
업(業)을 만들라, KAIST의 새로운 시도
배운다는 것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닌데, 우리는 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언젠가부터 학교가 업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전사(戰士)들을 키우는 전장(戰場)의 역할을 공동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업의 시대는 냉혹하다. 뒤처지면 낙오한다. 교육과 업의 만남을 주제로 한 KAIST K-School의 탄생과 발전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Long Policy Review: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시스템』 리뷰 (vol. 1)
이 글은 근 1년간 꾸준히 진행되어 온 이른바 ‘전환기(transition)’ 논의에 대해 리뷰한다. 홍성주 연구위원과 이정원 부원장이 책임연구자로, 엄미정 외 3명의 STEPI 내부 연구자와 박상욱 외 3명의 외부 교수진이 참여한 STEPI 정책연구 보고서 『전환기의 한국형 과학기술혁신시스템』(2015.12, 이하 보고서)을 중심으로 필자가 관련 주제를 다룬 여러 토론회와 관련 인사들의 언론 인터뷰를 종합하여 보다 심도 있게 해당 문제를 검토했다.
Short Policy Review: 경기도 혁신클러스터 성과지표 개발 연구/ 기초연구 지원 동향 및 시사점 (II): 주요 강소국 사례/ 과학기술인력 양성 을 위한 교육 및 R&D 연계 촉진방안 리뷰 (vol. 1)
며칠 사이에도 수많이 열리는 정책토론회, 쏟아져 나오는 정책 보고서 및 연구결과… 결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나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지는 않다. 다만 그 자리들과 자료들이 충분히 피드백을 받아 선순환적 정책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깊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